1. 책을 읽다, 글을 쓰다.

< 3 장 > 내 안에 꿈이 있습니다.

by 이유진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한껏 뽐낸 자태에서 도도함이 넘쳐난다. 유치원 때 학예 발표회 당시 전체 아이들을 대표하여 사회를 보고 찍은 사진 속의 내 모습. 한 번 씩 볼 때마다 놀라곤 한다. 입을 앙 다문 모습,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이 꽤나 도도해 보인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의 사진 속의 나는 참 빛이 나고 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5살 무렵, 한글을 떼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똑소리 나던 아이였다. 아이가 똘똘해 보이니 엄마는 없는 형편에 이것저것 시키고 책도 많이 사주셨다. 다른 건 몰라도 책은 정말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위인전을 비롯하여 백과사전까지 전집이 한가득이었던 책장에서 초록빛의 커다란 백과사전이 무슨 재미가 있어서였는지 열심히 읽었다. 그렇게 책벌레였던 나는 고학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거짓말처럼 책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중·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아마 당시 만화대여점이라는 것이 봇물처럼 생겨나던 탓에 만화 세상에 빠진 탓도 있을 것이고, 친구들과 노는 것에 재미를 느끼던 시기가 찾아온 탓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친구 관계가 중요해질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서는 공부를 한다는 알 수 없는 핑계로 교과서 이외의 책은 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책을 더 열심히 읽었다면 아마 내 인생이 지금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종종 하게 된다.


그렇게 책과 멀리하던 시절을 보내고 대학교에 가면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니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던 탓이었다. 만나는 사람이든 가던 장소든 늘 일정 테두리를 벗어날 것 없었던 삶 속에서 대학교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나름 재수하는 기간 동안 책을 좀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읽었던 몇 권의 책에 비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독서가였다. 재수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기들이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들이었고, 그래도 내가 한 살 더 먹었으니 그들보다 더 우위에 있을 것이라 은연중에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눌수록 또 학교 생활을 할수록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말투가 독특했던 한 동기가 기억이 난다. 그 친구 기숙사 방에서 ‘철학과 굴뚝 청소부’라는 책을 보았다. 나는 처음 보는 책이었다. 한창 철학에 관심이 있던 지라 무슨 책인지 궁금증이 일어 관심을 표현하니 매우 반갑게 대응했다. ‘언니, 이거 너무 재미있지 않았어? 고등학교 때 다 읽었는데, 다시 한번 읽어 보려고.’ 해맑게 웃으며 답하는 말은 과히 충격이었다. 그래도 재수하면서 몇몇 권의 철학책을 읽었던지라 철학에 대해서 좀 아는 가 싶었다. 그런데 나는 들어보지도 못한 책을 그 친구는 벌써 고등학교 때 읽고 다시 읽는다는 것이다. 친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그 책을 읽었던 것처럼 얼버무리며 그 상황을 모면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부끄러울 일이 아닌데 괜한 자존심에 책을 읽지 않았다는 말을 못 한 것 같다. 물론 그날의 대화 이후 당장 구입해서 읽었는데, 알고 보니 그 책은 ‘소피의 철학’과 더불어 철학 입문서 중의 하나로 유명한 책이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긴 하지만 그날의 대화로 나는 책 읽기에 더욱 열정을 갖게 된 것이다. 그때는 거기 있는 애들에 비해서 수준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나는 여러 권의 책을 돌려 읽는 편이다. 지금도 못 고치는 습관 중의 하나가 이것인데, 한 권을 붙잡고 끝까지 읽지 못하고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다. 아무래도 욕심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은 마음에 지금 당장 읽지도 않을 책을 산다. 하지만 샀으니 한 번 펼쳐보게 되고 그러면서 이 책 저 책 기웃기웃하는 것이다. 한 번 고쳐볼까 마음먹었는데 그것은 뭔가 해야 한다는 기한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읽어야 할 책을 읽게 된다는 것을 경험해서 특별히 고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책을 마구 사대는 나의 이런 습관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작가님 덕분에 이 책 저책 일단 사고 보는 것도 고치지 않기로 했다. (‘읽을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다’고 하신 김영하 작가의 말에 다시 한번 위로를 받는다.) 책을 읽든 안 읽든 책 사는 것을 일종의 취미처럼 여겼다. 빌려서 읽을 수 있었지만 책을 사는 것이 좋았다. 서점에 가는 것, 또 거기서 괜찮아 보이는 책을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엇인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라는 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두 권씩 사면서 모은 책들을 결국 중고서적에 팔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에게 '제정신이었어?' 하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후회되는 일이다.


그렇게 책을 읽었다. 대학교 때부터 한창 철학에 빠져서 대학원을 철학과로 갈까도 생각할 만큼, 엄청 열심히는 아니지만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재수학원에 붙어있는 유명한 문구 중에 '재수를 하면 인생을 안다'는 말처럼 그 시절에는 철학책을 읽으면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와서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뭔가 늘 허전함이 있었고 책을 읽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컸고. 그러다가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다시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고민들과 쓸데없는 고민들로 나를 잠식하던 시기를 거쳐왔다. 그 당시도 책을 읽으면서 위기를 떨쳐 보내려고 했지만 두 가지를 다 잡을 수는 없는 일이라 그저 공부에 대한 도피로 책을 종종 읽곤 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그 시기를 암흑기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참 우울했다. 그 시절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도 있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던 것도 있다. 그러다 시험에 합격하고 선생님이 되어서는 책 읽기를 또 소홀히 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늘 나의 책 읽기는 그야말로 도피식 책 읽기였다는 것이다. 시험을 준비할 때도 그랬지만 합격하고서도 늘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이 있었다. 합격하면 마냥 행복한 인생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탓도 있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그 이후의 삶 역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처음 합격하고 얼마간은 그동안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니 이제 좀 쉬자라는 생각이 컸다. 직장인으로서 학교 일은 열심히 했지만 그뿐이었다. 나의 일상은 주중에는 학교 생활, 주말에 친구들 혹은 동료 선생님들과의 수다. 그 가운데 종종 연애를 위한 소개팅, 드라마 시청, 웹툰 보기 그런 것이 반복되었다. 누가 보면 무슨 문제 인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삶에서 딱히 만족을 찾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 와중에 책은 늘 읽었다. 그냥 습관처럼 혹은 의무처럼 읽었다.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다는 생각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행위가 책 읽기였기 때문에 그를 방패로 삼은 것이었다. 그 당시 읽기 시작한 <토지>는 아직도 덜 읽었는데, 21권짜리 개정판 <토지>를 이제 14권 읽고 있다. 그렇게 나름 책을 멀리 하지 않았지만 내 삶에 적용시키지는 못했다.


내가 책을 읽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현재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에 대한 도피였다. 늘 무엇인가에 대한 열망은 있었다. 좀 더 꽉 찬 인생을 살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모른 체 했다. 귀찮다는 이유로, 그간 열심히 해왔다는 이유로 그냥 좀 쉬고 싶었다. 대학원을 가야만 했지만 더 이상 공부하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또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도 정확히 잘 몰랐다. 합격하자마자 대학원을 등록하는 후배 선생님들이나 동료 선생님들을 보면서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등록하지는 않았다. 지원서를 한 번 보면서 이걸 어떻게 쓰나 하는 막막함과 과연 지원한다고 합격할 수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이 석사 학위를 받는 것을 보면서 무엇인가 해내는 모습에 부러워만 할 뿐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비하는 삶에 대한 불만을 그나마 책을 읽는 것으로 위안 삼았던 것 같다. 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그래도 책을 읽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정작 내게 남는 책 읽기를 하지 않았다. 읽으면서 재미있었지만 읽고 나서 아무런 것도 남지 않는 무의미한 책 읽기를 하였다. 해석판은 읽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었고, 니체의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어려운 고전을 위주로 읽었다. 지금에 와 생각하면 누구를 위한, 혹은 무엇을 위한 책 읽기였을까 싶다.


그러다가 요즘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바꿔 보자는 강의를 들으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요한 새벽이 주는 기운에 취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뭔가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설레기 시작했다. 절로 적게 되었다.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책을 읽다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옮겨 적었다. 평소 글씨 쓰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던 내가 정성을 들여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벽 시간에 조금씩 읽으며 며칠이 지나고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필사한 부분을 보면서 학창 시절 공부한다고 이렇게 멋지게 정리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내가 한 필기에 깜짝 놀랐다. 책 읽기가 즐거웠고, 그간 내가 했던 책 읽기가 정말 의미 없는 행위였음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면 ‘이런 건 성공한 사람들이나 하는 입 발린 소리야’ 하고 책을 덮었는데, 이제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뭐라도 하고 싶어 졌다. 시간이 아까워졌다. 강의를 들으면서 오래전부터 꿈꾸어 온 ‘동화책 쓰기’가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책을 읽으며 동화책 작가를 꿈꾼 적이 있었다.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아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었다. 바바라 오커너 작가처럼 힘든 이야기를 유쾌하게 써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마음으로 한 줄 쓰다 저장해 둔 한글 파일만 몇 개다. 늘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했지 정작 어떻게 해야겠다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늘 마음에만 두었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동화책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말하고 나니 막막해졌다.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닌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다가 정말 우연히 책 쓰기 강의를 접하게 되었고 거기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나는 매일 쓰고 있다.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렇게 책을 쓰는 경험이 내가 결국 멋진 동화책을 쓰게 될 소중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나의 메시지를 동화책에 담기 위해, 그 방법을 배우기 위해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쓴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쓰고자 하니 쓰게 됐다. 신기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면서 나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지고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늘 내가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무엇인가 늘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않았던 내 삶을, 나 자신을 이제야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늘 아이들에게 책 속에 정답은 없지만 길은 있다고 말했다. 그건 내가 책 속에서 정답을 찾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간 허투루 책을 읽었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이제 그 말은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책 속에 정답이 있다. 책을 읽으면 길도 나오지만 내가 원하는 정답이 바로 책 속에 있다. 어릴 적 이른 나이에 책을 읽기 시작했던 똑순이가 다시 깨어났다. 내 인생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