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답답한 마음

< 3 장 > 내 안에 꿈이 있습니다.

by 이유진

'비디오'라는 용어를 기억하는가? Netflix와 youtube, vod 같은 것으로 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손쉽게 영화나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비디오를 언급하는 것이 조금 웃기게 생각되는데, 나는 비디오로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 6학년 때인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배우를 알게 되면서 영화에 빠지게 됐다. 아파트 상가에 있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봤는데, 단골이 되다 보니 중학교 때에는 청소년 불가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보고 싶은 영화는 죄다 빌려 본 기억이 난다. 최신 영화를 제하고는 500원에서 1000원 사이의 가격으로 빌려볼 수 있는 비디오는 내 최애 취미가 되었다. (아마 책을 읽지 않은 데에는 이 영향도 컸으리라 생각한다.) 어려서는 ‘닥터 슬럼프’ 같은 만화 비디오를 많이 빌려 봤었고, 조금 커서는 외국 영화(미국, 홍콩 영화)를 많이 빌려 봤다.


혹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을 기억하는가? 디카프리오의 리즈시절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알 것이다. 나 역시 그 영화를 보고서 말 그대로 뿅 하고 반해버렸다. 너무 잘생겼는데, 연기도 정말 잘했던 배우.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영화라면 일단 다 빌려서 보았다. 방에는 그의 포스터로 도배되었고, 그야말로 나의 우상이 되었다. 디카프리오를 시작으로 조지 클루니, 브루스 윌리스, 윌 스미스 등 당시에 인기 있었던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는 모조리 빌려다 봤고, 점점 보다 보니 좋아하는 감독도 생기게 돼서 그렇게 보는 영역을 확대했다. 자연스럽게 외국에 대한 동경도 커졌고, 이담에 자라면 꼭 유학을 가야지라는 꿈도 꾸었다. 영어에 대한 동경도 아마 이때부터 생겼났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영화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었다. 영화 리뷰를 쓰는 기자 혹은 영화 잡지사 기자, 시나리오 작가, 촬영기사, 감독 등 배우라는 직업 외에는 무엇이든 영화와 관련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방학 숙제로 내가 직접 봤던 영화들에 대한 리뷰를 쓴 공책을 제출하기도 했다. 제목을 비롯해 관련 사진, 영화에 대한 간단한 정보와 내 생각을 담았는데, 나름 한 권을 만들 정도로 알차게 만들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업을 어떻게든 꾸준하게 이어 나갔다면 지금쯤 영화 잡지사 기자가 되지 않았을까? 혹은 영화 평론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꿈을 이루고 싶다면 늘 그 꿈을 잊지 않고 그 언저리에서 있으면 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숙제 이후로는 어디 써먹을 데는 없었지만 오래도록 보관하고 있던 그 공책을 얼마 전 처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친 기억이 있다. 엄마 집에 일기장과 함께 보관해 두었는데, 집 청소하면서 다 버리셨다고 했다. 이미 쏟아진 물, 진즉 챙겨두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방송부에 들어가게 됐다. 내 고등학교 시절은 방송부가 전부라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방송부 활동에 매진했다. 공부는 자연스럽게 소홀하게 됐고, 이제 내 꿈에는 방송 관계자가 되는 것이 포함되었다. 영화를 비롯해 방송 쪽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방송부에서 엔지니어 담당이었다. PD를 지원했다면 또 어땠을까 싶은데, 당시에는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부담이 있어서 엔지니어에 지원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맡고서 기계에 대한 것들을 많이 배웠다. 원래 손재주가 있던 나였는지라 조명을 만들고 촬영을 하고 녹음을 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당시 우리는 영상물을 만드는 것보다는 주로 음성물을 중심으로 하였던 지라 솔직히 촬영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을 편집하고, PD가 적어준 시나리오에 따라서 출력물을 만드는 등 기계와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을 했기 때문에 기계를 다루는 일, 장비 설치하는 일을 자연스레 배우게 됐다. 일 년에 한 번 방송제를 치르기 위해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 보이고, 나름 의미 있는 경험들을 많이 했다. 당시에 영상물을 만드는 것에 좀 더 중점을 두었더라면 또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그렇게 방송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공부를 많이 못했고, 그로 인해 엄마로부터 아직도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듣곤 하지만 이제와 후회한 들 어찌할 것인가. 그것보다는 그때의 경험을 더 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정말 내가 간절히 원해서 신문방송학과에 가게 되었다면 어땠을지 이따금 상상해 본다. 선생님이 된 것은 만족스러웠지만 무엇인가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은 들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런 후회를 많이 했었다.


나는 늘 답답했다. 재수를 할 때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리고 선생님이 되어서도 답답했다.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 좋은 공연, 혹은 전시회들을 다니면서 뭔가를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드라마를 보거나 웹툰을 보는 날들로 채워진 것은 사실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영화는 조금 소홀하게 되고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드라마를 엄청 봤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부러웠고, 나는 왜 저들처럼 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 되지 못했나를 생각하면서 부러움과 질투심이 일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즐거워했지만 늘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는데 정작 그것이 반영되었을 당시에는 보지 않았다. 내가 꿈꾸었던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그린 이야기에 질투가 났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출연한 배우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 속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으면서도 내가 그 가운데 속하지 못했다는 것이 속상했다. 그러다 먼 훗날 그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가 너무 좋아서 책으로 출간된 대본까지 사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노희경 작가의 팬이 되었다.


특히 임신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드라마에 빠져 살았다.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너무 피곤하고 힘든 날들이었다. 대부분의 육아맘들이 그러하듯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을 하고서 아이가 잠들고 난 저녁시간은 정말 꿀 보다도 더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는 게 더 현명한 일이었겠지만 잠을 자기에는 왠지 아까웠다.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누워서 드라마를 보노라면 그 시간이 천국과도 같이 느껴졌다. 소위 드라마에 빠져 사는 아줌마들이 이해가 안 됐는데, 내가 그런 아줌마가 된 것이었다. 월화수목드라마부터 주말 드라마까지 안 챙겨보는 드라마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드라마가 재미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방송사 별로 인기 있는 드라마를 모두 챙겨봤다. 끝나고 나면 다음 주에는 어떻게 내용이 전개될지 궁금했다. 보고 재미있었던 드라마는 재방송으로 다시 보고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드라마 폐인이라는 말이 뭔지 이해가 됐다. 어떤 때는 드라마에 너무 빠져서 드라마 남자 주인공을 직접 만나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남편한테 그런 말을 했다가 한 소리 듣기도 하고 그랬다. 그냥 그 당시 드라마를 보는 것은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보면서도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은 늘 한 구석에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즐거운데, 왜 온전히 그 즐거움에만 빠지지 못하는 걸까? 왜 이렇게 불안하고 답답할까?”

“음... 넌 너무 효율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강한 것 같아. 그런 생각에서 좀 벗어나면 좋을 것 같아.”


한창 드라마를 보다가도 남편한테 묻곤 했다. 남편은 나보고 너무 강박에 시달리지 말라고 했다. 애를 보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지금 좀 쉬어도 된다고 했다. 내 친구들도, 그리고 엄마도 그랬다. 애 보는 데 뭘 더 하려고 드느냐.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 애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 특히 둘째를 가지고 낳고 하면서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위안을 삼으며 그렇게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한 번씩 친한 선생님들끼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평생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을 수 있을까? 정년퇴임할 때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현직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교사라는 직업이 점차 서비스 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연수를 듣고 했지만 뭔가 늘 부족했었다. 하지만 학교에 있을 때는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러갔기에 또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나름 학교 일을 열심히 하고 아이들에게 좋은 수업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뭔가 늘 부족했다.


휴직 기간이 늘어날수록 복직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하긴 했지만 학교로 돌아가는 것도 싫었다. 학교로 돌아가면 잘할 수 있을까. 승진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는데, 이대로 계속 교사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동료나 친구들은 대학원을 가고 나름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데, 나는 지금 이렇게 집에서 애나 키우면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한 번씩 찾아왔다. 연수 같은 걸 들을 때마다 그래 뭐든 나만의 무기 하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늘 생각에만 머물렀지 뭐 하나 직접 만들어낸 것은 없었다. 학부모의 요구 사항은 많아지고 아이들은 점점 똑똑해지는데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문제의식만 있었지 해결에 대한 실천은 하나도 하지 않고 괴로워했다.


대학교 때 모든 강의가 결국 어떻게 하면 훌륭한 교사가 될 것인가로 귀결되는 것이 불만이었다. 새로운 강의를 듣고 싶었지만 교양 강의조차 교사와 관련되는 강의였다. 꿈꾸던 대학 시절의 로망은 이미 애초에 사라졌었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어 실습을 하면서 교사라는 직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만나고 실제로 수업을 하면서 이 직업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치 있고 내 적성에 꽤나 일치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현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렇게 어렵게 교사가 되었지만 막상 합격했을 때만 좋았지 교사가 되고도 내 삶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냥 월요일이면 출근하기 싫은 직장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꿈을 가지고 의욕을 가지고 살라 했지만 정작 나는 그저 주말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하루살이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삶에 변화가 왔지만 이 변화가 내 삶에 익숙해질 무렵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길고 긴 터널을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표지 사진 : Photo by Glenn Carstens-Peter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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