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장 > 내 안에 꿈이 있습니다.
교대는 따로 전공과목이라는 게 있다. 여러 개의 과목 중에서 나는 미술을 선택했다. 대단히 소질이 있고 잘해서라기 보다는 국영수에는 이미 흥미가 없었고, 체육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고질병이었던 '디스크'탓으로 그럴 수가 없었다. 음악은 사랑했지만 그야말로 넘사벽이라고 느껴졌기에, 그렇다고 미술이 만만해서는 절대 아니었다.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 중에서 동갑으로(그 친구도 재수를 했기 때문에) 모든 일에 의욕적이고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었다. 동기 친구들의 능력에 약간 기가 눌린 상태로 대부분의 수업을 그럭저럭 이수하는 것에 만족했던 나와 달리 그 친구는 모든 수업에서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열정적이었다. 물론 나도 3학년 때 미술을 선택하면서 잘하고 싶은 의욕이 일었고, 나의 관심 분야였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자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 미약한 의욕은 이내 꺾이고야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수업을 들으면서 평소에 하지 못한 경험들을 많이 한 것은 만족스럽다.
수업 중에 외부 강사님이 오셔서 하는 강의가 하나 있었다. 홍대 미대 출신의 교수님이셨는데, 굉장히 젊고 세련되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그분이 강의하셨던 미술사 수업을 그 동기와 함께 수강했었다. 흥미롭게 수업을 듣던 가운데 시험 기간이 찾아왔고, 교수님은 수업 중에 배웠던 작품 중에 2가지를 제시할 텐데 그에 대한 자신의 감상평을 적는 것이 시험문제라고 알려주셨다. 시험에 대한 안내가 되자마자 친구는 당장 도서관에 가야 한다고 나를 재촉했다. 하지만 나는 도서관에 왜 가냐고 했다. 작품에 대한 내 생각을 쓰는 건데 뭐하러 도서관에 가냐고, 시험 당일에 작품을 보고 그 느낌을 잘 적으면 된다고 나름의 이유를 들어 언변을 토했다. 실로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웬일인지 친구는 내 말에 설득당해 우리는 도서관 대신 후문에 있는 맛있는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그리고 시험 날이 되었고 시험이 끝나고 나는 친구로부터 엄청난 원망을 들어야 했다. 당연히 시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작품에 대한 감상평은 곧 해석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해석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을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수능에서 언어영역을 1등급을 받긴 했지만 턱걸이로 받았을 정도로 다른 과목에 비해 언어가 유독 부족했다. 그 이유는 내 생각이 너무 강해서였는데, 그것은 언어영역에 있어 쥐약이었다. (다행히 재수 때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무던히 연습을 해서 턱걸이로나마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예를 들면 문학 작품 문제를 풀 때, 우리는 일단 교과서에 실려 있는 혹은 유명한 문학 작품 해설에 대한 기본 개념이 필요하다. 문제라는 것은 객관성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공공연한 공식적인 해설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데 나의 주관으로만 작품을 해석하고자 했으니 언어 영역 문제가 쉽게 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중, 고등학교 때 책 읽기를 소홀히 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재수를 하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게 되었고, 나름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렀는데, 미술 수업을 들으면서 그 기억은 온 간데 없이 날려버렸다. 미술 작품의 해석 역시 문학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모른 체 했다. 유명한 작품에 대한 공식적인 해설이 있는 법인데, 그 해석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은 채, 그냥 내가 느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큰 오류였다. 문제는 내가 이 방법을 내 친구에게 강요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미안하다. 물론 선택은 본인이 한 것이었지만 내가 그것을 종용한 것은 사실이니.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모른 체 했던 것 같다.
그런 예는 또 있다. 텝스 시험을 봐야겠다고 생각에 시험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은 채 토익 점수만 믿고 시험장에 갔다. 옆 줄에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여학생 몇 명이 시험을 친다고 앉아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난다. 시험 내내 거짓말 안 하고 듣기 빼고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거의 찍고 나왔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사이 중학생으로 추측되는 여학생들은 쓱쓱 넘기면서 답을 체크했다. 충격이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지? 아무리 시험 준비를 안 했다고는 하지만 대학까지 나온 내가 그런 꼬맹이들과 비교도 못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성적을 받았을 때는 예상대로 듣기 영역 빼고 나머지 영역의 점수는 엉망이었다. 시험마다 특징이 있고 그에 따른 유형별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데 전혀 준비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느 정도 영어를 하니까 꽤 높은 점수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나의 완벽한 착오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이상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수강했던 강의를 듣는 과정에서 거실이 서재로 된 사진을 보게 되었다. 거실 한쪽 벽면은 책장으로 채워져 있고, 한가운데에 넓은 책상이 있었다. 그리고 식구 수대로 의자가 놓여 있다. 그런 모습은 처음 본 것이라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사를 가면 꼭 저렇게 거실을 꾸며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사를 하면서 거실을 그렇게 바꾸었다. 물론 아직 TV는 달려있고, 한가운데 책상은 없지만 TV의 역할은 예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었다.
생각보다 TV를 끊는 것은 간단했다. 남편은 의외로 쉽게 동의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끊을 수는 없었다. 이사를 하고 미리 신청을 못해 5일 정도 집에 인터넷이 끊겼는데, 정말 답답했다.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휴대폰 데이터는 금방 다 써버리고, 블로그며 유튜브며 업로드해야 하는데, 도대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인터넷 의존도가 높았나 싶었다. 어찌 됐든 TV를 끊었다. 드라마를 끊었다는 뜻이다. 이병헌과 김태리가 나오던 드라마를 끝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드라마 시청은 없을 것이다. 그 드라마도 사실 절반밖에 보지 못했다. 나는 요즘 그렇게 좋아 못 살 던 드라마를 안 보게 됐다. 웹툰에 접속한지도 오래됐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웹툰과 드라마가 생각이 안 난다. 그냥 그렇게 됐다.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되도록 TV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나마 첫째는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조카들이나 다른 친구들이 다들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도 그래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뽀로로’와 ‘타요’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게 되었다. 특히나 밥을 안 먹는 첫째에게 TV의 유혹으로 밥을 먹이기는 때때로 굉장히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기에 종종 써먹을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정말 안 보여 줄 수가 없었다. 둘째를 씻겨야만 하는데, 아직 신생아 시절에는 아이를 방에서 씻겨야 해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따뜻한 물이 담겨 있는 욕조 바구니 두 개를 첫째가 그냥 두고 볼 리가 만무했다. 그때는 첫째도 고작 24개월밖에 안 된 아기였을 때니 물이 가득한 욕조를 보면 손을 넣어 휘젓거나 튀기면서 그야말로 난리를 쳤다. 어쩔 수 없이 TV로 아이를 잠시 격리시켜 두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눈치가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동생 목욕시간이 TV를 보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차츰 TV를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심지어 어떤 날은 나도 같이 앉아서 재밌게 시청했다. 아이들 만화인데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밥을 먹으면서 같이 보았다. 하루 한 시간 미만으로 보던 것이 어떤 날은 저녁때 틀어 놓은 게 한두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게다가 둘째도 조금씩 크면서 내 몸도 점점 고단해져 갔고, 얼른 정리하고 자야 하는데 아이들이 주변에서 맴돌며 칭얼대거나 할 때는 TV를 틀어 분산시키며 점점 의존도가 높아지게 됐다.
TV를 보는 것에 관대해지게 된 것은 아마 나 스스로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은 TV를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부모님들은 TV를 보는 것을 크게 규제하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비디오도 자주 빌려 보게 된 걸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가 TV를 많이 봤지만 크게 어긋나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자랐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아이들에게도 뭐 TV 좀 본다고 큰 일 날 일은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특히 내가 이런 생각을 한 데에는 우리 큰 집이 한몫했다. 어릴 때 큰 아버지 댁에 가면 TV를 볼 수가 없었는데, 당시 나의 사촌오빠와 동생은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사촌들은 방학이 되면 우리 집에 와서 실컷 TV를 보며 놀다 갔다. 우리는 신나게 놀고, TV에서 방영하는 만화를 마음껏 봤다. 그 기억 때문일까. 나는 아이들에게 TV를 보여주면서 나와 사촌들을 자연스럽게 비교했다. TV를 많이 봤지만 잘 자라왔다는 나만의 확고한 믿음으로 TV를 보지 않고 자란 사촌들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면서 TV 보는 아이들을 그렇게 방치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 있었다. 단순히 내가 그들보다 학창 시절 성적이 우수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내가 경험한 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들은 현재 본인들이 원하는 직업을 갖고 열심히 살고 있다. 나는 왜 그들이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것은 나의 명백한 오류였다. 내 기준에서만 생각하는 버릇을 쉽게 고치지 못한 탓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그렇게 여러 번 경험을 해 놓고서도 아직도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서 그저 내가 해온 것만으로 내가 옳다고만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을 만들어 냈다. 당연히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편을 보니 남편의 모든 것들이 못마땅하게 여겼다. 남편이 변화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 무엇 하나 바뀌지 않는 채로 제자리걸음이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TV를 끊고서 '내가 정말 큰일 날 짓을 했구나' 하고 깨달았다. TV를 끊고 안 보여주니 아이들은 안 보여주는 대로 찾지 않는 것이었다. 거실에 큰 책장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책을 기웃거렸다. 둘째도 제법 커서 그런지 이제는 둘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놀기도 한다. 책을 보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아니면 둘이 사고를 치거나. 뭐가 됐든 TV를 굳이 찾지는 않더라는 사실이다. 물론 첫째가 종종 뭘 보여달라고 칭얼 대기는 하는데, 잘 설득해서 넘어가거나 밥을 잘 먹으면 보여준다는 단서를 달고 한 번씩 보여주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한두 시간 하염없이 보여주는 일은 사라졌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결국 내가 잘못했구나를 반성한다. 결국 아이들에게 TV를 보여준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내가 좀 편하고자 선택한 술수였다. 조금이라도 나로부터 관심을 분산시켜서 내가 좀 편해지고자 하는 마음. 이런 계기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아이들은 하염없이 TV에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다행이라 여기는 것은 내가 이런 인식의 변화를 느끼고 인지함으로써 앞으로 야기될 심각한 갈등의 꼬리를 끊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그대로였다면 남편과의 갈등에서 더 나아가 아이들과의 갈등으로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나의 기준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맘에 들어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간섭하려 들려했을까. 되도록 나에게 잔소리를 삼가시고 간섭하지 않으려고 애쓰신 부모님의 양육방식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정작 나는 그것을 모른 체하며 무조건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을 닦달했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하다. 아직 완벽한 육아법을 체득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지금, 나는 드디어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길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표지 사진 : Photo by Jakob Owens on Unsplash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