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꿈을 찾아서

< 3 장 > 내 안에 꿈이 있습니다.

by 이유진

“니 진짜 안 갈 거가?”

“카면 우야노, 회사에서 휴가를 그만큼 못 낼 것 같은데... 내 껀 취소해 뿌라.”

“흠... 그래, 알았다.”


남동생과 스페인 여행을 가려고 비행기 표를 끊어 두었다. 그런데 돌연 동생이 못 가겠다고 했다. 고민의 날들이 이어졌다. 나도 취소를 해야 할지 아니면 혼자라도 가야 할지. 해외여행은 여러 번 다녔지만 오롯이 혼자서 간 적은 없었다. 게다가 짧은 기간도 아니고 18일 정도로 나름 길게 잡아둔 것이라 심히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동생 표만 취소했다. 훗날 동생에게 그때 스페인 여행 못 간 거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는데, 괜찮단다. 그때 만약 회사를 관뒀으면 지금의 아내를 못 만났을 거라고 하는 동생의 말에 그저 웃음이 났다. 운명이란 게 있긴 있는 건가?


“조심해서 다녀와라, 알았제?”


2012년 1월, 인천공항에서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그렇게 홀로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부모님은 딸내미 혼자서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는데 어찌 그렇게 태연하게 받아들이셨을까 싶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만약 우리 아들들이 혼자서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엄청 걱정부터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리 대학교 시절부터 떨어져 지냈고, 이곳저곳 여행을 다닌 것을 보셨을 지라도 혼자서 해외로 간다는데 걱정되지 않으셨을까? 게다가 딸인데! 아마 나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견고하셨기 때문이라 여기지만 부모님도 대단하시다 싶다. 게다가 그 당시 나는 스페인 어라고는 그 흔한 'Hola' 인사말도 모른 채 영어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심지어 영어 회화도 어정쩡한 주제에!)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이렇게 허점투성이라는 걸 알고는 계셨을지. 사실 나는 여행 전에 철저히 준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미루고 미루다 결국 제대로 된 계획 조차 세우지 못했다. 그래도 혼자라는 것이 무서워서 이동 경로를 정하고 거기에 따른 숙소만 미리 예약해 둔 것이 전부였을 뿐. 스페인어도 하나도 모르고 숙소만 달랑 예약한 채로 그렇게 나는 떠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최고의 여행이었다. 혼자 여행하는 맛이 이런 거구나 느꼈다. 가끔 쓸쓸하기도 했지만 좋은 점이 분명히 있었기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 한 번은 해보라고 꼭 권해보고 싶은 일이 되었다. 특히 두바이에서 스탑오버를 하면서 중동의 분위기도 느껴봤는데, 역시 잊지 못할 경험을 많이 했다.


스페인은 새로웠다. 예전에 호주에 갔을 때는 생각보다 영국이나 다른 유럽과 너무도 비슷한 모습에 약간 실망 아닌 실망을 했었는데, 스페인은 확실히 다른 맛이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가우디라는 예술가에 대해 새로이 보게 됐다. 도시 자체가 가우디며, 브랜드라는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바르셀로나가 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현지인들에게서는 왠지 모를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멋진 곳이었다. 여행 초짜처럼 비행기 표를 마드리드 인 아웃으로 끊었던 것이 참 아쉬웠다. 조금만 더 알아보았으면 마드리드 인 바르셀로나 아웃으로 끊어 바르셀로나의 정취를 좀 더 느껴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덕분에 스페인 고속열차인 ‘렌페’를 경험해 볼 수 있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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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용케 잘 다녔다.


여행을 다녀온 뒤로 여행기를 따로 작성해 두지 않은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오래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쓰려고 하니 여행의 장면 장면이 불쑥 떠오른다. 아마 혼자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해서가 아닐까 싶다. 조금씩이지만 그간 여행에 대한 정리도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 여행을 통해서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하루 종일 하릴없이 걸어 다니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곳곳에 성당이 있어서 자주 들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교 유치원 출신의 불교 신자이지만 기독교든 천주교든 미술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학문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었다. 성당에 갈 때면 기도했다. 우선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했고, 또 한 가지는 무엇인가 의미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 여행을 통해서 내가 어떤 성장을 하게 될지 인생의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늘 내 삶에 대해 잘 살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늘 만족스럽지 않았고, 늘 부족하다고 여겼다. 뭔가를 이룬 사람들이 부러웠고, 나 보다 잘 사는 것만 같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연애도 일도 잘해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비교했다. 여행을 다니는 것은 정말 좋은 경험이고 실제로 다니면서 좋았지만 한 편으로는 내 안의 깊은 한 구석에 나도 이런 멋진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도 있었다.


재수 시절 이후로 더 이상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지 않겠다고 늘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시절이 힘들었고 그때를 기점으로 내 성격도 조금 음침하게 혹은 비관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나의 변한 모습에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곤 했다. 우스갯소리로 철학책 좀 그만 읽으라고 핀잔도 주었다. 나 역시 너무 진지한 나의 모습이 싫지만 그것 역시 내 모습의 일부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앞으로 내가 바라는 '유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오빠,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

“나? 잘 모르겠는데?”

“나는 동화책을 꼭 쓰고 싶어. 지금 당장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동화책을 쓰고 싶어.”


남편과 한창 연애할 무렵, 강남역에서 부터 한 참을 걸어 포스코 사거리쯤 왔을 때였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차츰 식어가던 시원하면서도 따스한 바람이 부는 초여름의 밤이었다. 우리 둘 다 차가 없었기 때문에 늘 대중교통과 도보를 함께 했는데, 그날은 유독 걸어가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아마 여름이라 밤에 걷기 딱 기분 좋은 날이라 그랬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동화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연애 초창기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늘 어떤 행위 혹은 발언의 바탕에는 여러 개의 욕망이 존재하는 것 같다.) 뭐가 됐든 그 날의 기억은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쏙 박혀있다.


그 이후, 결혼을 해서도 종종 동화책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는 했다. 실제로 학교 다니면서 줄거리를 구상하기도 하고, 소재를 메모해 두기도 하고, 한 줄 써서 한글파일로 저장해 두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늘 그렇지만 핑계 없는 무덤은 없듯, 진전이 없었던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나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늘 무엇인가 허전했고 공허함을 느낀 삶이어서 그런지 요즘만큼 알차다고 느끼는 시간이 없다. 재수 시절, 그리고 마지막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그 두 번의 시기가 내 인생에서 정말 치열했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을 느낀다. 물론 힘이 든다. 하루하루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뭘 위해서 지금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하는 의심도 든다. 하지만 다시 예전처럼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려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루 늦잠을 자기도 한다. 그래도 다음날이면 다시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 잡는다. 달리기 하러 나가는 것이 싫지만 꾸역꾸역 뛰고 나면 그 무엇에 비할 수 없는 개운함을 느낀다. 늘 유튜브 촬영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만 막상 시작하면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가 힘을 얻는다.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고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일들을 직접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 많아졌다. 결국 나를 인정하고 알아가고 있는 과정에 서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존감'이라는 것에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하고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마치 갓난쟁이처럼 지금 다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다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늘 허황된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꿈'이라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내가 뭔가를 이룰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힘이 들지만 또 힘이 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더 이상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면서 밤을 지새우지 않는다. 대신 눈을 감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내가 바라는 모습, 이루어지길 바라는 미래를 상상하다 보면 금방 골아떨어진다. 불과 몇 달 전에 불면증으로 밤을 꼬박 지새운 적도 있었는데, 그게 언제였나 싶을 만큼 잠자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렇다고 매일이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잠드는 순간이 평온하고 다음 날 아침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된 현재가 행복하다. 힘들지만 이런 노력이 있어야지 내가 바라는 미래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면 또다시 일어서게 된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이지만 하루하루 실천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



*표지 사진 : 톨레도의 풍경(직접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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