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감을 쌓는 것에 대하여
빨래를 개면서 뭐 좀 들어볼까 싶은 생각에 유튜브를 검색했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오은영 박사님이 뜨길래 한 번 들어보자 싶은 마음에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굉장히 유명한 분이라 서점에서도 TV에서도 접할일은 많았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강연을 보는 것은 사실 처음이었다. 박사님의 말투는 독특하다 여겨졌는데 신기하게도 귀에 쏙쏙 박히는 것이 듣기에 좋았다.
말씀을 듣는 내내 뜨끔 뜨끔 했다. 그간 글을 쓰면서 반성의 의미로 적어둔 글들이 꽤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고 있어서였을까, 모든 말씀이 나에게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일단 박사님 말씀의 핵심 포인트이자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든 강력한 메시지는 바로 아이에게 화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실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은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이고 누구나 알지만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박사님의 메시지는 상당히 강력했다. 우리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많은 것을 주려고 애쓴다. 좋은 옷, 좋은 음식, 비싼 장난감 그리고 다양한 경험들. 하지만 박사님은 이것들은 그저 해주면 도움이 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안 해준다고 해서 문제될 일이 아니라고 하시며 대신 화내는 것은 아이게게 해가 되는 것이니 하지 말기를 재차 강조하셨다. 부모로서 도움은 못 될 망정 적어도 아이에게 해는 입히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바로 박사님 말씀의 핵심 포인트였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목적으로 아침부터 클래식을 듣고, 영양소가 골고루 배합된 식사를 제공하며,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책을 읽어주기 위해 애쓰고, 아이들이 원하는 먹거리나 발달 수준에 맞는 장난감을 주문하고, 계절에 맞는 옷을 사고, 좋은 경험을 위해 이곳 저곳을 물색하는 나에게 그런 것들을 해주는 것보다 '화내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말씀하시니 그저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에게 화내는 것도 빼먹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연을 듣는 내내 지금 나의 모습이 어떤지에 대해 자꾸 돌이켜보았다. 박사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 아이들은 내가 사랑하는 가장 연약한 존재인데, 그런 존재에게 나는 얼마나 많은 화를 쏟아붓고 있는 것인지.
아이에게 사랑을 준다는 명목으로 아이를 가르치려 들면서 아이에게 이중적인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말씀에 가슴이 뜨끔했다. 특히나 아이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육아 지침서에 따라 화를 내는 이유에 대한 정당성까지 갖다 붙이기 시작하니 화냄과 가르침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섭기도 한 존재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이중적 존재로서 크게 자리잡기 시작하면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가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는 존재가 돼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라는 이유로 혹은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이유로 나는 얼마나 많은 협박과 비난 속에 아이들을 가두고 있는지 절로 반성이 됐다.
나 같은 경우는 밥을 먹을 때 가장 화를 많이 내게 되는데, 내가 열심히 만들었다고 아이가 반드시 맛있게 먹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밥을 물고 있는 아이에 대한 비난을 멈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도 저렇게 먹기 싫어하는데 억지로 먹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그만 먹으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의 먹기 싫어하는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내 기분 상한 것을 아이에게 티 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또 다른 화의 모습인 냉정함을 드러내게 된다. 왜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을까. 이제 고작 5살밖에 안된 어린아이에게 나는 왜 굳이 모진 말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려고 한 것일까? 후회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은 비겁한 모습의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런 자책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미쳤었어'라는 한탄과 자책은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데 추호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우선 눈에 보이는 곳곳에 박사님의 말씀을 써 붙였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자. 아이에게 화내지 말자. 화내는 것과 혼내는 것 다르다. 아이를 내 뜻대로 좌지우지하려 들지 말자.
어느새인가부터 나는 혼낸다는 이유로 즉 훈육한다는 것을 화내는 것과 결부시켜서 혼재하고 있었다. 화내고 자책하고 화내고 자책하고...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반복 속에서 결국 곪아 터지는 것은 그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웃 블로거의 글에서 본 한근태 작가님이 하셨다던 말씀이 생각났다. 현상을 현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좋다 싫다, 좋다 나쁘다로 나누기보다는 장단점이 있다는 양면성의 시각으로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에 순간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일단은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만약 화를 내게 됐다면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화를 냈던 사건들에 대해서 더 이상 좋다 나쁘다를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의 홀가분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곳곳에 포스트 잇을 붙여두고, 화가 날 때마다 쉼호흡을 하면서 감정을 다스리려고 애쓰지만 한 번씩 나도 모르게 쌓인 것들이 터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어쩌면 화를 내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와 나 사이의 깊은 신뢰감을 쌓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탄력성>에서 김주환 교수는 에미 워너 교수의 카우아이 섬 연구를 예시를 들면서 절대적 지지자에 대해 언급한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을지라도 올바른 혹은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를 온전히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정혜신 교수의 <당신이 옳다>에서 내도록 이야기하는 것과 일치한다. 나의 감정을 공감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존재.
아이에게 화를 낸다고 자책하며 곪아가는 것보다는 아이와 나 사이에 그런 절대적인 신뢰감을 쌓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모든 것에 앞서 중요한 것은 결국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공감과 믿음이었다. '외롭고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라고 주입시켜 주면서도 정작 나는 그들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도록 정확한 과녁을 가르키고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시 원점이다. 내가 했던 지난 과오에 대해서 자책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그러지 않겠다 선포하고자 쓰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도 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낼 수 있도, 또 자책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아이에 대한 무조건 적인 편이 되어줄 수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늘 엄마가 옆에 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나는 아이의 편이 되어주었을까를 생각하면 별로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옳은 말은 결국 상처를 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혹여 어쩌다 한 번 화를 내더라도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절대적 신뢰감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건물을 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아래 부분인 지대를 튼튼하게 다지는 일처럼 모든 삶에 공용으로 통하는 이치는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다.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움이 되는 수 백 수천 가지를 못해준다고 죄책감을 느끼고, 화를 냈다고 부모로서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아이에게 신뢰를 주는 것, 웃음을 주는 것, 언제든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 신뢰감을 쌓기 위해 되도록이면 아이에게 화내지 않는 것(비난하지 않는 것, 협박하지 않은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 등)이 필요할 것이다. 화낼 수밖에 없었다고 상황을 탓하기 전에 내 인내심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자식을 키우는 일은 인내의 열매를 백만 개를 먹어도 모자를 일이지만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면 최소한 노력은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무고무 열매처럼 인내의 열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우리 아이보다는 부모가 더 많이 애쓰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른이고, 부모가 아니겠는가. 부모가 되는 것은 정말로 어렵고도 어렵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표지 사진 : Photo by Jelleke Vanooteghem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