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온전히 믿고 존중한다는 것

by 이유진

길거리 토스트가 먹고 싶어서 동네 토스트 집에 들렀다. 주인아주머니는 앞서 오신 손님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는데 두 분이 연배가 비슷하신 건지 한창 자녀분들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계셨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공부 안 하면 더 잘해줘야 해요. 나는 우리 아들 게임하면 과일 깎아주고, 우리 딸 공부 안 한다고 뭐라 안 하고 더 잘해줬어. 원래 공부 안 하는 애들이 더 효도해. 이제는 엄마 아빠 생일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미역국 끓여주고 맛있는 거 사주고 그러네.”


아주머니는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말씀도 넉넉하셨다.


물론 아주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일리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과연 진심을 다해 아이에게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보살'이 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실 나는 아주머니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 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을 하기 전에도 우리 반 아이들 중에 공부를 안 하거나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그렇게 애가 닳을 수가 없었다. 특히 (내 기준에서)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 문제 정도는 풀 수 있어야 하는데 아예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나 혹은 여러 번 설명을 반복해도 이해를 못하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서 혼자 발을 동동 구르는 그런 타입의 교사였다. 공부를 잘하고 말고를 떠나서 기본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다그치는 나를 보면서 한 번씩 '만약 내가 애가 생긴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저 담임이라는 이유 만으로도 이렇게 애가 타는데, 만약 우리 아이가 이렇다면 나는 과연 괜찮을까?


물론 아이들이 저마다의 재능이 있고, 발달된 지능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초등학교에서 만큼은 기본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살아보니 그랬다. 공부 말고 뚜렷이 어떤 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엄청나게 공부를 잘하는 것은 바라지 않아도 중간을 따라갈 수 있도록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반성이 들었다.


공부를 안 하는 아이에게 잔소리하지 않고, 게임을 한다고 옆에 가서 과일을 깎아주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도 진심으로 어려운 일이겠다 싶었다. 새삼 그 아주머니가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문득 나는 괜찮을까?라는 문장이 내내 거슬렸다. 결국 지금도 나는 우리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는 내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즉, '내가 괜찮은가' 보다는 '아이가 괜찮다'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부모로서 내가 괜찮으면 그저 '오케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단편적인 예로, 우리 첫째 아이가 언제인가부터 어린이집 등원 전에 옷을 입을 때면 나랑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하곤 한다. 아이가 입고 싶은 옷과 내가 입히고 싶은 옷 가운데 갈등이 일어나는데, 이유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자면 누가 봐도 엄마 말이 맞지만 이유야 뭐가 됐든 아이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본인이 원하고 괜찮은 일은 아니었다. 문득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면 본인의 취향을 존중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가는 것에 대해 누군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것이라면 그건 내가 괜찮지 않은 것에 속하는 것이지 아이의 괜찮은 여부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서로가 타협한 범위 안에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하고 본인이 그에 대한 만족을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순 먹은 할머니도 여든 먹은 부모 앞에서는 애'라는 말처럼 자식이 얼마의 나이를 먹든 부모는 자식의 앞가림을 신경 쓰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자식이 나이가 어리든 나이를 먹었든 단 한 사람의 존재로 그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일이 평생 부모의 과업이겠구나 싶었다.


'아이를 손님처럼 대하라'는 말에 그 실천 방법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서, 냉장고 앞에다 크게 써서 붙여놓았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힘든 일이라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이들을 나의 소유물로 대하지 않고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해 줄 수 있도록 나는 노력하고 싶다. 언젠가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날 날이 올 때, 그들을 걱정하기보다는 진심으로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축복할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기에 나는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실천해보려 한다.


'믿는 만큼 자란다'는 박혜란 교수님의 말처럼 나는 온전히 아이들을 믿는 엄마가 되고 싶다.




*표지 사진 : Photo by Lina Trochez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