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할 순간들
"아이가 말을 못 하나 봐요?"
할머니 한 분이 첫째 아이 뒤에서 큰 소리로 물으며 말을 걸어오셨다. 아이 등원을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가고 있는 중에 웬 황당한 소리인가 싶어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돌아보니 할머니 한 분이 아이 옆에 서 계셨다. 좁은 입구를 빠져나오는 길이라 내가 앞서가고 아이가 따라오고 있었던 탓으로 잠깐 틈이 벌어졌는데 그때 할머니께서 아이에게 말을 거신 것 같았다. 아이는 계단에서 킥보드를 끌어내리는 중인 데다 낯선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마 당황을 했던 듯 내가 다가서자 그제야 5살이라고 말하면서 제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아이는 또래 중에서도 말을 곧잘 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을 듣자마자, '한 살인 줄 알았네' 하시며 마치 아이를 놀리시듯 말씀하시고는 홀연히 지나갔다. 그런 할머니를 보고 나는 '이건 또 뭔가' 싶은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앞서 가는 할머니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뭐라고 하겠는가. 연세도 많으신 분이고 악의 없이 하신 말씀일 텐데 거기다 대고 뭐라고 응대했다면 오히려 황당하다고 나오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 좋은 기분에 빠져들고 싶진 않았지만 자꾸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다. 혹여 정말로 말을 못 하는 아이였다면 정말 어쩔 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서 하셨을 법한 질문이라 생각하지만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무례함이 이었다. 가는 방향이 같았는지 할머니의 뒤를 따라가는 꼴이 되었는데, 걸어가는 내내 '내가 어떻게 말을 하면 할머니도 자기의 실수를 인지하고 서로 기분 좋게 헤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물론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연스레 얼마 전에 있었던 비슷한 일이 떠올랐다. 한동안 (옆집인지 아랫집인지) 아파트 내부 공사를 하는 덕에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면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온 날이 있었다.
"903호죠? 그 집에서 공사하는 거 아니죠?"
"네, 저희 집 아닌데요. 여기서도 크게 들리네요."
"저도 아니라고 이야기했는데, 아랫집에서 계속 바꿔달라고 성화네요. 알겠습니다."
경비아저씨와 통화를 끊자마자 벨소리가 들렸다. 왠지 아랫집일 것 같았다. 할머니 한 분이 아기를 안은채 올라오셨는데, 당장이라도 나에게 퍼부을 기세였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일단 우리 집에서 공사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짐짓 놀라시면서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으셨다.
"아니 공사를 할 거면 미리 말을 해야지... 그러면 어디 다른데라도 갔을 거 아니야... 애가 잠을 통 못 자서..."
그렇게 말씀하시고 돌아가셨으면 괜찮았을 터인데 자꾸 발꿈치를 들어서는 내 뒤로 보이는 집 안을 살피는 것이었다. 경비 아저씨의 말을 믿지 못하고 직접 확인하겠다는 폼으로 올라오신 것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집 안까지 살피시는 모습에 정말 화가 나려고 했다. 우리 집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면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먼저 하는 게 마땅한 도리가 아니었을까? 나 같으면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끝까지 우리 집을 살피다가 혼잣말을 하며 내려가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그만 기분이 상해 버렸다. 할머니에게 화도 났지만 그런 무례함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던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 더 화가 났다.
요즘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상대방의 기분은 살피지 않은 채 본인의 말들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분이 나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받을 때가 있는데, 둘 다 아들이냐고 혀를 차시며 '딸을 낳아야 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마주할 때이다. 처음에는 걱정되는 마음에 그러시겠지 하며 좋은 마음으로 들으려고 했지만 자꾸 듣다 보니 기분이 썩 별로다. 게다가 내가 정말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큰소리치시는 분들을 마주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당황스럽다. 나처럼 아들 둘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고 했던 것이 이제야 공감이 된다. (아들 둘 낳은 것이 이리 큰 잘못이었을 줄이야.)
우리는 상대방의 무례함에 얼마나 관대해야 하는 걸까? 일련의 사례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해답을 찾고자 했지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특히 그런 무례함은 어르신들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답을 찾는 것이 더 힘든 것 같다. 세대가 다른 만큼 그들의 언행을 그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는데, 근래에 이런 일들을 자주 겪다 보니 대처방안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뻔뻔해져서 웃으며 맞받아 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면 좋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그만큼의 대담함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그런 유연함 혹은 뻔뻔함(?)이 생기게 될까?)
해답을 구하려 케케묵은 책 한 권을 끄집어 들었다. (글을 쓰면서 해결이 안 되니 책에서 찾을 수밖에.) 오랜 시간 책꽂이에 꽂혀 있던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을 꺼내 들고 무작위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해답이 나왔다.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 것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도외시하며 살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철학적인 내면 생활을 한 사람들은 감정과 정신에도 일종의 욕창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법이 모두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작은 예외와 피상적인 병의 재발은 필요하다는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p.328 <니체,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동서문화사>
그렇다. 지금까지 내가 선택해 온 입 다물기의 방법은 어쩌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썩 괜찮은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경우라면 그 대응 방식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그저 타인에 불과한 사람들이라면 그저 침묵하고 흘려버리는 것도 좋은 대응책 일 수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어차피 일시적으로 마주치는 상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은 결국 내 손해가 아닌가? 아량을 베풀거나 관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아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마음을 다치는 것보다는 사소하게 여기며 웃고 넘길 수 있는 해프닝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 마음 다스리기를 연습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예전과 다르게 지금의 나는 타인의 무례함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 무례함에 대해 그저 삭히고 지나가기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무례함은 누구에게서든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필요한 대응책을 찾고자 강구했다. 그저 예전처럼 입을 닫아버리는 것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을 찾고 싶었다. 왜냐하면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좋은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당장 기분 나쁜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더 좋은 관계라는 좀 더 큰 목적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대승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비로소 내 자존심을 꺾을 용기가 생겼다. 자존심을 꺾고 먼저 다가가니 의외로 싸움은 쉽게 해결되었다. 이를 통해 인간은 비난을 통해서는 절대 바뀔 수 없다는 데일 카네기의 충고를 몸소 경험 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차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닌데,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까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굳이 그들의 의도를 곱씹으며 괜히 내 마음 상할 필요가 있을까? 상대방의 무례함에 적절히 대응하는 방법은 그저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맞받아 칠 수 있는 뻔뻔함이라 생각하지만 아직 나 같은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 나이가 좀 더 들어 그럴 날이 오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은 머나먼 이야기 같다. 그저 지금 실천할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알게 됐으니 앞으로 그것을 실천하는 일만이 남았다.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둬 보자.
*표지 사진 : Photo by Jason Rosewell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