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호흡하는 공간

일민미술관 《Super fine-가벼운 사진술》

by Haim Jung

전시 기간: 21.10.01-21.10.24

관람일: 21.10.16



Super fine은 '매우 양질의', 동시에 '가장 가벼운'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 전시에서는 '사진' 매체가 이미지를 생산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이 그 어떤 때보다 쉬워진 요즘,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가벼운 사진술로 밀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전시는 이렇게 아이러니한 속성을 가진 사진 매체에 관한 전시다. 색에 민감한 사진 전시이다 보니 전시 공간은 디자인이 화려하기보다는 작품 자체가 강조될 수 있도록 담백하게 디자인되었는데, 작품의 형식과 주제에 맞는 공간 선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전시에 참여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작품의 형식이 곧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 기존의 미술 재료와 다르게, 사진은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어 실험의 여지가 많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사진 매체의 아이러니에 관한 전시이다 보니 사진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는 사진이라는 가볍지만 무거운 매체의 특성을 활용한 작품이 많았다. 그리고 이 형식을 강조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공간이 쓰였다.

전시장은 어두운 바닥에 흰 벽과 천장으로 된 화이트 큐브다. 중간중간 기둥이 박혀있고 천장이 노출식이긴 하지만, 요즘은 워낙 다양한 공간에서 전시가 열려서 이 정도 공간도 화이트 큐브라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공간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을 몇 가지 되돌아보면서 작품과 공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려 한다.



가장 먼저, 작품이 전시장 벽의 액자 안에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깬 오가영 작가님의 작품은 1층 전시장 입구의 자동문과 문 바로 뒤에 있는 기둥에 붙어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입장하는 사람들을 보니 반투명한 문 때문에 작품을 보지 못한 채 들어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리플렛을 보고서는 다시 돌아가 작품의 존재를 발견하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위치 선정과 캡션의 활용법이 무척 효과적이라고 느꼈다. 전시장에는 작품 옆에 캡션이 붙어있지 않고 리플렛에만 있는데, 보기 불편하긴 하지만 가장 예민한 시각 매체인 사진을 감상하는데 방해되지 않고, 작품을 작품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주제인 이런 작업도 있기에 캡션을 두지 않은 것 같다. 캡션은 작품을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반투명한 문 뒤로 비치는 작품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기슬기 작가님의 콜라주 작업은 우리가 사진을 찍고, 저장하고, 콜라주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해 이러한 행위를 극단적으로 실험했다. 그래서 작품은 하나의 사진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여러 사진이 모여있는 우리 스마트폰 속의 갤러리처럼 보인다. 이 콜라주들은 디지털 갤러리에서 진짜 갤러리로 튀어나와 자기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고양이를 찍은 사진은 같은 사진을 여러 장 이어 붙여 고양이의 움직이는 모습을 추측할 수 있게 하거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사람의 정면과 윗면을 합성해 하늘의 모습을 표현하는 등의 아이디어는 작가가 사진 찍었던 상황을 연상하도록 만들어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작품은 2층 전시장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2층 전시장은 입구 정면에서 볼 때 공간의 중심에서부터 입구 반대편 벽까지 기둥 4개가 일렬로 박혀있었다. 기둥과 전시장의 한 벽면을 채우는 기슬기 작가님의 갤러리에서 하늘을 콜라주한 사진은 천장과 가까운 벽에, 세로로 긴 사진은 벽이 아닌 기둥에, 원근감의 착시효과를 활용한 사진은 일렬로 놓인 기둥에 차례로 붙어 있었다. 특히 기둥을 활용한 위치 선정은 너무 절묘해서, 아마 전시 위치가 정해지고 난 후에 공간에 맞는 사진을 선택해 작업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작품 전경
고양이를 찍은 사진,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사람
하늘을 콜라주한 사진, 세로로 긴 사진, 원근감의 착시효과를 활용한 사진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작품 외에 공간을 보완하는 성격의 배치도 눈에 띄었다. 빈 벽을 커버하기 위해 전시 그래픽을 한 벽에만 붙이지 않고 모서리 부분의 양 면을 모두 사용한 부분은 빈 공간을 채울 뿐만 아니라 전시 동선을 유도하는 역할도 해서 일석이조의 배치였다. 또한, 입체적으로 설치된 작품이 많은 2층 전시장에서 더 카피 트래블러스의 영상 작업물들은 평면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 모니터를 모서리 양면을 활용해 45도로 기울여 붙이는 식의 방식으로 자칫 납작해 보일 수 있는 구성에 입체감을 주어 작품에 대한 작지만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두 면을 사용한 전시 그래픽
더 카피 트래블러스의 작품 배치



전시가 재미있는 점은, 작품이 어떤 작품과 마주치고 어떤 공간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작품은 대체 불가한 존재로 인식되는 반면 전시 자체는 물성을 가진 존재라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경험으로 인식되는데, 전시 또한 일시적으로 그 장소와 그 작품들 간의 호흡이 존재하는 단 하나의 존재다. 심지어 어떤 작품은 애초에 그 공간에 딱 맞게 제작되기도 한다. 공간도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전시에서 공간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전시 공식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