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im Jung Aug 25. 2022

야후 같은 전시, 구글 같은 수장고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전시 기간: 2021.07.23~

관람일: 2022.08.14






국립민속박물관 주는 시민들을 위한 개방형 수장고의 역할을 맡아 작년 여름 개관했다. 그동안 미술관, 박물관 깊숙한 장소에 숨겨졌던 소장품들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함으로써 더 풍부한 예술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파주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지상 2층의 수장고는 대부분 개방형으로, 관람객 전시 듯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개방형 수장고를 처음 본 필자는 이 수장고마치 필요한 정보만 담아가는 구글 검색엔진처럼 느껴졌다.



처음 파주관에 들어서면 지상 1, 2층을 관통하는 3개의 수장고 타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소장품은 모두 유리 벽 안에 보관되어 있어 수장고 안팎에서 소장품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개방형 수장고가 일반적인 전시와 가장 달랐던 점은, 같은 카테고리의 유물들을 별다른 설명 없이 모아두었다는 점이었다.

파주관 중앙홀의 수장고 타워
별다른 설명 없이 묶여 놓인 유물들

일반적으로 전시는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어느 부분을 강조할지 말지 정해지고, 이에 따라 유물들은 더 눈에 잘 띄거나 그렇지 않은 공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환경의 영향을 받아 좋은 자리에 배치된 작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더 긴 시간을 할애해 감상한다. 그러나 수장고에는 소장품의 번호만 할당되어 있고, 어느 시대의 어떤 유물인지 무런 설명도 없었다. 소장품에 해당하는 정보가 궁금하면 수장고 한쪽에 마련된 키오스크에 해당 소장품의 번호를 입력해야지만 볼 수 있었다.

소장품 설명 키오스크

 모든 설명이 친절하게 적힌 전시와 다르게 아무 설명도 없는 수장고는 어찌 보면 불친절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장고의 여백만이 가진 장점이 분명히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 설명이 없는 소장품을 보며 저마다의 상상력을 펼쳐 소장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각자의 기억을 꺼내어 어릴 때 쓰던 물건과 비슷한 것, 다른 박물관에서 본 유물과 비슷한 것 등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각자만의 전시를 감상하곤 했다.

     또한, 수많은 소장품 중 정말로 궁금한 것 한두개 쯤은 키오스크에 검색해보며 적극적으로 수장고 공간을 체험하고 있었다.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서울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전시장에 있는 검색도구를 쓰는 관객은 거의 숙제를 하러 온 어린이들이었다. 그러나 파주관에서는 직업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정보의 여백이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발견.

개방형 수장고 전경


일반적인 전시를 볼 때, 사람들은 작품에 있는 캡션을 모두 읽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필요한, 궁금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읽는다. 간혹 길게 늘어져 있는 문단들의 나열을 보면 읽기도 전에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과잉 정보는 전시 감상을 즐겁기는커녕 수많은 활자를 흡수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과 다르게 파주관의 수장고는 사람들이 궁금한 정보만 직접 찾아보도록 한다.두 유형의 정보 제공 방식을 비교하면, 시는 마치 한 화면에 모든 정보를 담아놓은 야후, 수장고는 모든 정보를 빼고 검색창만 남겨놓은 구글을 보는 것 같다. 두 유형 중 무엇이 더 낫다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에게 더 편리한 검색창이 있듯, 관람자에게 더 편리한 전시 방식이 있는 것이다.

(좌)야후 메인 페이지, (우)구글 메인 페이지



파주관의 개방형 수장고는 미술관, 박물관의 정보 제공 방식이 맥시멀이 아닌 미니멀로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처럼 개방형 수장고의 역할을 하는 또 다른 공공기관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있는데, 여건이 되는대로 이곳에도 방문해 또 다른 개방형 수장고를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전시 공식 사이트

작가의 이전글 작품을 먹는 미술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