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 처음 다녀왔다. 이곳은 박물관 전체가 수장고로 구성되어 있고, 대다수가 개방형 수장고로서 유물 보존과 전시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 수장고에 관한 글을 먼저 쓰고 싶었으나 기획 전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전시에 관한 글부터 쓰기로 했다.
전시 제목인 '소소하게 반반하게'는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인 '소반'과 '반닫이'로부터 가져온 이름이다. 소반은 밥상으로 쓰거나 음식을 옮길 때 쓰는 작은 가구로, 비교적 잘 알려진 가구이다. 반닫이는 소반에 비해서는 조금 생소한 이름일 수 있지만, 아래 사진을 보면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가구일 것이다. 수납가구인 반닫이는 여닫는 입구가 반만 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 가구 모두 서민층이 두루 사용하던 가구로서, 서민들의 삶을 조명하는 '민속'박물관이 선택한 소재로 적합해 보였다.
반닫이와 소반
전시실에 들어서면 벽을 가득 채운 소장품들과 공간 중심에 놓인 형형색색의 좌대가 대비된다. 열린 수장고 16은 기본적으로 블랙톤의 디자인으로 고요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쨍한 색감의 좌대가 들어서니 단연 눈에 띄고,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전시는 소반-반닫이-가구 체험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기존 수장고에 있던 소반과 반닫이 어르신들 사이에 젊은 가구들이 초대된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장고 한가운데 놓인 형형색색의 젊은 가구들
공간을 벽 수장고와 가운데 좌대로만 나누지 않고, 수장고 내부에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배치한 것도 흥미로웠다. 서로 유사성 있는 작품끼리 함께 두어서 옛 소장품의 다양한 모습과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젊은 작품은 좌대에 사용된 원색의 받침대 위에 두어서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작품의 시대를 구분하고 시각적인 재미를 준 것이 좋았다.
소장품들 사이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동시대 가구들
기존 작품과 새로 추가되는 작품을 함께 두려면 공간이 더 좁아지지 않도록 공간을 최대한 알뜰하게 사용해야 했을 것이다. 이곳에는 원래 반닫이와 소반 외에 떡살도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기존 공간의 모습과 전시 중인 공간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원래 떡살이 전시되던 위치에 전시 서문을 놓고, 떡살 수납장 위에 계단식 좌대를 두어 소반을 전시하는 식으로 공간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리플렛 일부
리플렛 오른쪽의 떡살 장 앞에 전시 서문을, 리플렛 가운데 떡살 수납장 위에 소반 좌대를 두었다.
공간을 알뜰하게 쓰려는 또 다른 고민의 흔적은 전시실 앞 로비에 있는 윈도우 그래픽이다. 파주관 정면에서 보이는 전시 그래픽은 박물관 내부로 들어오면 햇빛을 통해 무채색의 로비를 형형색색의 빛으로 물들인다. 그 빛으로 전시장 입구와 그 앞에서 전시되고 있는 작품에도 시선이 가게 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작은 전시 공간을 조금이나마 넓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건물 바깥에서 본 윈도우 그래픽
건물 내부에서 본 윈도우 그래픽
이번 전시는 파주관 첫 기획 전시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한 것 같다. 개방형 수장고라는 것이 원래 닫혀 있는 수장고를 시민들에게 개방함으로써 미술과 사람들의 거리를 좁히려는 목적일 텐데,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보면서 그것을 필자의 집에 놓는 상상을 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소재의 선택이나 구현 방식이 좋은 전시였다고 본다.
파주관이 접근성은 좋지 않지만, 복잡한 서울에서 마주하기 힘든 시원하고 탁 트인 건축적 경험,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공예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러라도 찾아갈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