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단위의 장소성

문화역서울284 《프리츠한센 150주년 기념전-영원한 아름다움》

by Haim Jung

전시 기간: 2022.11.12~2023.01.05

관람일: 2023.01.04






공간디자인을 전공한 것 치고는 기성 가구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다. 가구는 공간에 놓여 그 분위기와 함께 즐겨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판매점이나 전시장에 놓인 가구는 아무래도 실제 사용할 때 느낄 수 있는 맥락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있어서 감상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구를 구매할 생각으로 본다면 내 집과 가구가 어울릴지 열심히 상상하면서 보겠지만, 가구 '전시'를 보러 가는 입장일 때는 공간과의 맥락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가구 브랜드인 프리츠한센의 150주년 전시도 볼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전시가 끝나기 하루 전에 보고 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수확이 있었다.


전시가 열린 문화역서울284는 일제강점기 시절 옛 서울역을 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곳으로, 당시의 건축 양식이 잘 복원된 곳이다. 역사 내 각 실마다 원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당시 사진과 함께 설명이 걸려 있다. 몇 달 전 옛 서울역 시절의 용도별 실을 일러스트로 그린 〈Modified Renaissance〉라는 작업을 했었는데, 작업을 하면서 공간의 역사를 공부한 뒤 다시 이곳에 방문하니 각 실의 특징과 전시 동선이 묘하게 일치하는 것이 보였다. 전시 동선을 따라가면서 각 실의 기차역 시절 용도와 이번 전시에서 구성한 섹션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옛 서울역: 중앙홀. 높은 층고와 시계를 통해 근대성을 느낄 수 있었던 옛 서울역의 중심 공간.

전시: 무한대로 비추는 거울을 통해 프리츠한센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150주년을 기념하는 상징적 공간.

옛 서울역사의 중심인 시계와 높은 층고 아래에 위치한 150주년 상징 공간


2.

옛 서울역: 3등 대합실. 다수의 사회 구성원인 일반 시민들의 공간.

전시: 프리츠한센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 역사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점이 닮았다.

3등 대합실-프리츠한센의 역사


3.

옛 서울역: 서측 복도. 대합실에서 승강장으로 이동하는 긴 통로.

전시: 동시대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프리츠한센의 작업. 긴 통로를 거닐며 다양한 사람들(디자이너들)과 마주친다는 점이 닮았다.

서측 복도-동시대 디자이너들과의 협업


4.

옛 서울역: 귀빈실. 왕족 등 VIP들이 이용했던 공간으로, 경성역 내에서 유일하게 난방이 되는 공간.

전시: 이석우 디자이너와의 협업 작품. 난로와 거울, 커튼 등 따스한 집 같은 분위기를 가진 공간에 실제 집 같은 느낌으로 작품을 배치했다.

귀빈실-이석우 디자이너와의 협업


5.

옛 서울역: 역장실. 역장이 업무를 보던 공간.

전시: 르동일 디자이너와의 협업 작품. 본래 업무 공간이었던 곳이라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섬세한 조명과 의자 작업을 배치해 일반 업무 공간보다는 격식을 차린 느낌을 주었다.

역장실-르동일 디자이너와의 협업


6.

옛 서울역: 귀빈예비실. 귀빈실과 거의 비슷한 용도이며, 귀빈들의 식사 시간에 이용하기도 했다.

전시: 최형문 작가와의 협업. 귀빈실과 같은 분위기로, 테이블과 의자 등을 활용해 집 같은 느낌으로 작품을 배치했다.

귀빈예비실-최형문 작가와의 협업


7.

옛 서울역: 부인대합실 및 1, 2등 대합실. 상류층 여성 및 남성이 머물렀던 공간으로, 벽과 기둥에 섬세한 꽃 장식이 되어 있다.

전시: 한국 장인들과의 협업. 함이나 자개장처럼 섬세한 무늬가 들어간 공예품이 섬세한 장식이 있는 공간에 배치된 점이 닮았다.

부인대합실 및 1, 2등 대합실-한국 장인들과의 협업


8.

옛 서울역: 더 그릴. 한국 최초의 양식 레스토랑으로, 사교 모임의 중심지였다.

전시: 브랜드 다큐멘터리 상영.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의자들이 옛 서울역 시절 사람들로 붐비던 레스토랑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양식당 더 그릴-브랜드 다큐멘터리


9.

옛 서울역: 직원실. 직원들의 업무 공간.

전시: 연계 프로그램과 기념품숍. 세미나, 워크숍 등 연계 프로그램과 구매가 이루어지는 기능적인 공간이라는 점이 닮았다.

직원실-연계 프로그램 및 기념품숍


10.

마지막으로, 옛 서울역은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본래 용도에 따라, 문화 공간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본질을 지키며 100여 년 가까이 시민들과 함께 숨 쉬고 있다. 프리츠한센 역시 한결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시대별로 적합한 재료와 기술을 고안해 변화를 꾀하면서 15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가구 브랜드가 되었다. 본질을 지키며 시대와 소통하는 브랜드가 같은 속성을 지닌 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 것 역시 좋은 의미로 다가왔다.

옛 서울역과 프리츠한센



1~10까지의 분류는 옛 서울역의 공간을 중심으로 이번 전시 구성을 주관적으로 분류한 것으로, 실제 전시 동선과는 다르다. 이전에 전시가 열리는 공간의 장소성과 전시 주제의 연관성을 주제로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주로 미술관이 위치한 지역이나 건물이 가진 의미처럼 큰 범위에서의 장소성을 다루곤 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건축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작은 실들이 가진 장소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많았다. 동선을 구성하며 기존 공간과의 연결을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시 공간에서의 장소성이 아주 작은 공간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전시 공식 사이트


글의 주제와 맞지 않아 본문에서는 제외했지만, 캡션까지도 섬세하게 디자인되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