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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어밴드맨 Sep 24. 2024

성공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때로는 그냥 있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다.

  

 민서는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아왔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너끈히 합격했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몸이 아파서 입원했던 한 학기를 빼고는 모두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대기업의 유망 계열사이며 스톡옵션이 부여되는 코스닥 회사에 입사할 때까지도 민서는 늘 한결같은 자세로 최선을 다했다.     

     


  민서는 어렸을 때부터도 그랬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위해 협조하고 희생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민서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모범생이라고 인정해 주는 주변 환경에서 살아왔고, 그런 민서의 비위를 거스르는 친구들은 왕따 비슷한 걸 경험해야 했다.     

     


   민서의 형제들도 공부 잘하는 민서에게는 대들지 않았다. 민서의 부모님조차 민서가 공부를 잘해줘서 이웃들과 친척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걸 너무도 좋아했기에 민서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장학생인 민서는 특별대우를 받는 쪽이었고 회사에 입사할 때도 수석은 아니었지만, 그에 거의 버금가는 성적으로 입사했으리라 짐작이 되어 장래가 유망한 민서에게 상사들도 호의적이었다.      

     


  민서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민서 건너편에 앉은 민서의 동기가 자꾸 건방지게 굴어서 경고를 날려주고 난 다음부터였다. 민서의 동기를 옥상 루프탑 공원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어디 SKY 대학도 안 나온 게 설치고 깝죽거리고 지랄이냐고 한 방 날려줬다.



 민서의 동기인 경선은 서울권 대학교를 나오기는 했지만, SKY 출신은 아니었고, 입사 성적도 입사 하한선을 간신히 넘긴 성적일 것으로 추측이 되었다. 아마도 면접관 중에 아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성적을 살짝 올려줘서 입사가 가능했으리라는 추측을 민서는 하고 있었다.      

     


  입사 면접관이면 회사의 중역이라 상당한 배경이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올해의 입사 면접관은 객관적인 사원 선발을 위해 외부 인사들로 특별히 초청되어 신입사원 면접을 본 만큼 회사 내부의 중역이 아는 사람이나 친인척은 아니라고 민서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민서는 자기 깜냥도 모르는 동기 계집애가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학창 시절에 갈고닦았던 갈구기 기술을 얼마 전부터 경선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누구든지 자기의 공부를 방해하거나 목표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못살게 굴었다.   

  


그리고 민서의 수법은 직설적이고 잔인해서 몇 번 민서에게 당한 애들은 민서에게 기를 펴지 못했다. 민서는 풀이 죽어 민서 앞에서 설설 기는 그런 애들을 보면 공부나 일로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이 나아졌다.      

     


  민서는 언제나 주변에 자기를 지켜줄 배경을 만들어 두었는데, 민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반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동식이가 민서를 호위하고 있었고, 대학교에서는 체육 특기장학생인 명훈이와 친구들이 민서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서는 늘 편안하고 자신 있게 공격하는 지위를 가졌다.      

     



  민서가 경선을 옥상 루프탑에서 만나 면박을 주고 난 그 이후부터 경선은 민서에게 말을 조심하는 것 같았다. 민서는 이후에도 사소한 일로 계속 경선을 골탕 먹이며 회사 일의 스트레스를 풀었고, 모든 것은 민서의 뜻대로 잘 굴러가는 듯했다.     

     



  민서의 신경을 건드리는 문제가 터진 것은 이 전무님의 부서 방문 때 일어났다.



 보통은 민서의 부서장인 강 부장님이 담당 과장과 실무자들을 데리고 임원 회의장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 전무님의 방으로 불려 들어가서 자세한 보고를 올리는 형식으로 업무가 진행되었는데


이번엔 뜻밖에도 이 전무님이 직접 오셨다.


 전무님 눈에 들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에 민서는 깜짝 놀라 브리핑 자료를 찾았다.


 다들 우왕좌왕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에 동기인 경선이 앙큼하게도 차를 타 가지고 전무님에게 아양을 떠는 것이 아닌가.


 이 전무님은 경선을 아주 좋게 보고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창문 밖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브리핑 자료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민서는 속이 끓었다.    

 

   ' 내가 저년을 아주 잘근잘근 씹어 먹어줘야겠어. 저년이 어디라고 내 자리를 넘봐'     

     

  경선이 빈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 걸 보면서 민서는 급히 경선에게 다가가서 팔꿈치 옷자락을 끌고 직원 휴게실로 들어갔다.   

  

  " , 너 어디서 이런 여우짓이야. 너 이런다고 네가 돋보이고 그럴 것 같아? 이 회사에선 서울대 아니며 적어도 SKY 출신 정도는 돼야 저 위로 올라갈 수 있어. 동네 구멍가게가 아니라고. 알았어? 설치고 다니지 마. 너 이딴 식이면 수습 기간도 못 마치는 수가 있어."     

     


  민서가 광분하자 경선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는 민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원 휴게실에서 나갔다.


 민서는 속이 후련했다. 경선이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앞으로는 눈에 거슬릴 일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며 민서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잠시 후에 보니 경선이 다시 이 전무님이 있는 부장실로 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민서는 더 이상 자기 선에서 해결하기보다는 얼마 전부터 자기에게 찝쩍대기 시작한 오 과장을 이용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민서는 오 과장을 직원 휴게실로 데리고 가서 친근한 어투로 말을 붙였다.   

  

  "과장님, 어제 저한테 밥 사준다고 하셨죠?"     

     

  오 과장은 아주 반색을 했다.   

  

  ", 그랬지. 내가 아는 맛있는 맛집이 있거든? 근데 다른 직원들까지 우르르 몰려가면 앉을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나랑 민서 씨하고 딱 둘이서만 가야 먹을 수 있어. 알지? 무슨 말인지?"     

     


  민서는 오 과장을 제대로 홀리기 위해 웃으면서 간드러진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 잘 알죠. 근데 제가 요즘 기분이 밥 먹으러 맛집이나 다니고 할 기분이 아니에요."     

     


  오 과장은 모처럼의 찾아온 기회를 잡으려고 민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를 쓰며 말했다.

      

  "왜 누가 괴롭히기라도 하나? 우리 민서 씨를 누가 건드려? 어디 한 번 나한테 얘기해 봐요. 내가 가만 안 둘 테니까."     

     


  민서는 됐구나 싶었다. 제대로 걸려들었다.


 '경선이 너, 이제 사회의 뜨거운 맛 좀 봐라'라는 생각을 하면서 민서가 입을 열었다.    

 

  "제 동기 경선 씨요.


 저랑 동갑이고 출신 대학교는 과장님이랑 저처럼 서울대도 아니고, SKY 대학도 아닌 그저 그런 인 서울 학교 나왔잖아요.


 근데 요새 경선 씨가 너무 설치고 다녀요. 자기 주제는 모르고 강 부장님한테도 꼬리를 쳐요.


 아까는 이 전무님한테까지 또 차를 들고 들어가서 꼬리를 치더라니까요?"     

     

  오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 알았다. 내가 알아서 처리해 주마'라는 식의 몸짓이었다.    

 

   "우리 민서 씨가 괜히 스트레스받은 게 아니고만. 어디 수습 주제에 설치고 다녀.


 물론 민서 씨도 수습이지만 민서 씨는 형식적인 기간 채우기에 불과하지.


 이 미모에 이 학벌에 이 실력에 말이야.


 민서 씨는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요. 내가 경선 씨를 불러서 아주 혼쭐을 내줄게. 놀라서 사표를 내고 싶도록.


 아니 아예 잘라줄까? 꼬투리 잡아서?


 그러면 민서 씨의 오늘 저녁 밥맛은 돌아오려나?"     

     



  민서는 아주 환하게 얼굴을 펴며 과장과 같이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시하고 과장의 팔에 팔짱을 끼며 팔꿈치에 가슴을 살짝 가져다 대었다.

     

  " , 그렇게 해주시면 제가 밥맛이 돌아올 것 같아요. 오늘 저녁쯤이면.


 과장님께서 기강을 잡느라고 그렇게 애를 쓰시는 데 제가 같이 밥 먹는 정도도 못 해드리겠어요? 그보다 더한 것도 해드릴 수 있는데."     

     

  오 과장은 민서가 팔짱을 끼며 가슴을 살짝 비비자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잖아도 물컹한 가슴 촉감에 기분이 좋아지는데, 민서의 '더 한 것도'라는 소리에 가슴이 부풀었다.


 자기의 팔꿈치에 닿아 있는 민서의 가슴을  훔쳐보며 민서에게 물었다.   

  

  ", 더한 거? 그게 뭘까?"     

     

  그러자 민서는 쓱 팔을 풀어서 오 과장의 팔꿈치에 대었던 가슴을 살짝 떼며 새침하게 물러났다.


 ' 겨우 그 정도 해주면서 너무 바라는 거 아니야? '아주 안달 나게 해 줄게?'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 술이요? 저녁 아니면 술이지. 더 뭐가 있어요? 호호호."     

     

  오 과장은 야릇한 기대로 민서와 마주 보며 웃었다. 좋으면서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여우같이 약만 올리고 붙었다가 떨어지고 밀당을 하는 게 정말 사람을 환장하게 했다.


 대학교 후배이기도 했고 미모도 훌륭해서, 이혼남인 오 과장은 민서에게 작업을 시도하며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물론 민서는 이런 그의 심리 상태를 잘 알고 이용하고 있었다.     


  "그럼 저녁 먹고 술도 한잔 하는 걸로? 오케이?"     

     

  민서는 다시 오 과장에게 살짝 붙으며 대답했다.

     

  "오늘 하시는 거 봐서요. 술까지 먹을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오 과장은 민서에게 완전히 홀리는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진도만 나갈 수 있으면 민서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민서는 남자와의 밀당에 정통해 있었다. 이렇게 남자의 심리를 잘 이용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남자를 이용하는 실력에 자신이 붙고 있었다.  남자라면 누구든지 다 작업해서 무릎 꿇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이 전무님도 솔로인 이상 민서는 기회만 있으면 이 전무님조차 낚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같은 기회를 훼방 놓다니, 경선이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민서와 오 과장은 잠시 후 사무실로 돌아갔다.



 부서 전체가 이 전무님에게 보고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은 끝이 나고 있었다.


강 부장님은 오 과장과 실무책임자인 김 대리 그리고 수습인 민서와 경선을 데리고 전무님께 실무 보고를 들어갔다.     

     

  이 전무님은 회사의 막강한 실세였다.


 대표이사의 동생이면서 공동 창립자이기도 한 이 전무님은 대표님 다음으로 지분도 많이 가진 실세 중의 진짜 실세였다.



 개발에 전념하는 대표님과는 달리 회사의 운영과 관리는 이 전무님의 담당이었다.


 회사 내에서 이 전무님의 결정은 대표님과 동격으로 취급받았다.


 이사회에 포진한 이사님들 중에 기술 이사님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가 이 전무님의 라인일 정도였으니 전무님은 대표나 다름이 없었다.


  이 전무님과 전무님 라인 이사님들 지분을 다 계산하면 대표님을 훌쩍 넘어설 정도여서 이 전무님은 사실상의 회사 소유주였다.      

     

  그런 이 전무님에게 직보 할 기회는 전무님의 눈에 들 좋은 기회이기도 하면서 아주 큰 위험 부담이었다.



 강 부장님은 담당 과장을 방패로 앞에 세웠다.


 오 과장은 평소에 실무책임자 김 대리와 수습사원들을 데리고 들어 갔다.


 혹시라도 실수가 생기면 책임을 덮어씌우고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오 과장은 전무님에게 가면서 오늘 경선을 날릴 수 있는 작전을 짜내기 위해서 잔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실무 발표 중에 숫자로 꼬투리를 잡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지만 오늘은 전무님 앞이라 과장 자신도 위험부담이 컸다.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회의실에 일행이 들어서자 전무님이 보였다.


 전무님은 먼저 와서 프레젠테이션 테이블 맞은편 평소 부장님 자리에 앉아 계셨다. 


 부장님을 비롯한 일행은 프레젠테이션 발표 석 쪽에 나란히 앉았다.


 일행들 사이로 긴장감이 흐르는데 전무님이 웃으며 일행을 향해 말을 거셨다.  

    

  "오늘은 실무 발표보다는 일하면서 생기는 애로사항을 들어보려고 왔어요.


 강 부장은 평소에 저와 가끔 대화하니까 나중에 듣기로 하고,  오 과장하고 김 대리 그리고 수습분들 얘기를 듣고 싶어요."     

     

 오 과장은 기회가 왔다 싶었다. 그래서 재빨리 민서에게 눈짓을 했다.   

  

 '네가 먼저 경선 씨 얘기를 꺼내, 내가 마무리해서 확실히 처리해 줄게.'    

 

  민서는 오 과장의 신호를 빠른 눈치로 바로 알아챘다.


 그래서 민서는 김 대리가 나서기 전에 재빨리 먼저 입을 열었다.  

   

  " 강 부장님 하고 오 과장님이 정말 잘 이끌어 주시기 때문에 언제나 최선을 다해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김 대리님도 실무적으로 완벽하시고 더 바랄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같은 수습이지만 경선 씨가 업무적으로 미숙합니다. 그리고 업무를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부족해서 성과를 내려고 달려가는 팀의 앞길을 막아서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경선 씨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요즘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무슨 악의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고요. 업무적으로 애로사항을 말씀하시라기에 그냥 평소에 자주 느끼던 애로사항으로 말씀드려 니다."     

     


  민서의 얘기를 듣고 강 부장과 김 대리의 표정이 묘해졌다.


 김 대리가 경선의 표정을 살피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오 과장이 나섰다. 

    

  ", 그런 점은 저도 느끼고 있었어요.


  민서 씨는 적극적으로 일에 달려드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경선 씨는 시간만 되면 집으로 퇴근해 버리더라고요.  퇴근 후에는 카톡도 잘 안 받고요.


 물론 사생활도 중요하겠지만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개인의 희생도 조금은 필요한데요.


 그런 식의 태도는 다른 팀원의 에너지를 흩는 거라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 하는데, 경선 씨는  좀 아니더라고요.


 제가 볼 때는 우리 회사에 맞는 팀 플레이어가 아닌 거 같아서 매우 아쉬웠습니다.   

  

 곧 수습 기간이 끝나는  담당 과장으로서 정직원으로의 발령이 상당히 걱정이 됩니다.


업무 태도가 문제가 있으니까요.


전무님께서 이런 부분 참고해 주시면 업무에만 매진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과장의 말이 끝나자 강 부장과 김 대리의 얼굴은 묘하게 굳어져 버렸다.


두 사람의 시선은 거의 동시에 전무님의 얼굴을 향했다.



경선 씨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었다.


  민서는 분위기가 순식간에 경직되는 것을 느끼며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경선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어제도 경선 씨가 정시에 퇴근해 버렸어요. 그래서 오늘 전무님께 드릴 보고를 제시간에 못 하고 지금까지 시간을 끌게 되어 버렸습니다.


 경선 씨의 사생활은 존중해요. 하지만 목표를 향해 달리는 회사의 팀원이라면  시점에 남아서 밤샘이라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제가 그렇게 경선 씨에게 남아서 일 처리를 좀 해달라고 부탁을 는데도 사정이 있다면서 그냥 가버렸어요.


 사실 평소에 저를 많이 무시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태도라니 기가 막히더라고요.


 오 과장님께서도 그런 부분을 자주 느끼셨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무적으로 자주 겹치지 않는 다른 분들은 느끼시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요."     

     


  점점 심각해지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전무님은 의외의 긴 침묵 후에 마침내 입을 열었다.   

   

  " 내가 불렀습니다.


  경선 씨 말입니다. 어제저녁에.


 어제는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경선 씨는 제가 나이가 12살이나 많지만, 편견 없이 저를 대하고 한 남자로서 자존감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경선 씨는 제가 겪어본 바로는 정말 겸손하고 따듯한 사람이에요.


 업무 시간 중에는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업무 후 시간에는 저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여 줘서 저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일과 사생활을 구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러분은 일에 지장을 주었다고 하는데 업무 시간 외의 개인 시간을 침해하는 것은 우리 회사의 방침에 어긋난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최근에 경선 씨가 자꾸 침울해지길래 걱정이 돼서 여러분을 모두 불러서 물어본 겁니다.


 무슨 업무적인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알고 싶어서요.



 제가 공과 사도 구분 못 하는 그런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그게 아니라면 경선 씨에 대한 공격은 저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을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경선 씨의 옆에 이렇게 잔인한 공격을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놀랐습니다.     

     

  그리고 오 과장님과 민서 씨는 사람 보는 눈이 정말 없군요.


 경선 씨는 내가 면접 과정에서 특별 채용을 한 사람입니다.


 따듯한 성격에 탁월한 업무처리 능력과 정확하고 신중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는 경선 씨에게 어제 청혼을 했습니다. 


 경선 씨를 위해 오늘 여러분의 애로사항을 듣고  필요한 조치를 해주기 위해 여러분을 불렀는데요.


 정말 조치가 시급해 보이는군요.


 아주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 가요.


 내가 경선 씨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입니다.


 나 때문에 이런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겪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경선 씨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자 이제 내 말은 끝났습니다.

     

  오 과장과 민서 씨는 나가보세요. 나머지 팀원들과는 마저 할 얘기가 있습니다."     

     


오 과장과 민서는 뜻밖의 상황에 너무 놀라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렸.


 전무님의 너무나 단호한 태도에 변명도 해보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 나왔고, 두 사람은 서로 말도 나누지 않고 회사에서 퇴근했다.


 그러면서 서로를 속으로 탓했다.   

     


  남은 팀원들과 이 전무는 조금 더 얘기를 나누었고, 헤어질 때 경선은 이 전무를 따라 그의 차를 타고 나갔다.     

     



  강 부장과 김 대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칼날이 목 앞에 왔다 간 기분이었다.





 다음날 오후에 인사과에서 수시 인사 공문이 나왔다.


게시판에 올라온 인사 공문 내용은 오 과장팀에 관한 내용이었다.     

     

   '인사발령 오동식 과장 거제 공장 현장 책임자로 즉시 발령'     



   '인사발령 김명식 대리 본사 전략기획부 과장' 

    


   '인사발령 수습 최민서 수습 즉시 종료. 정직원 계약 비대상' 

    


   '인사발령 수습 윤경선 수습 종료 정직원 발령'     

      





  옥상 루프탑에서 강 부장과 이번에 과장으로 승진하게 된 김 대리가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강 부장이 김 대리에게 말했다. 

    

  "오 과장하고 민서 씨는 그렇게 눈치가 없나?



 나도 전무님 하고 뭔가 있는 것 같아서 경선 씨에게 신경을 바짝 쓰고 있었는데 말이야.



 나까지 불똥이 튈까 봐 식겁했네! 아주. 목이 날아갈 뻔한 기분이야, ."     

     




  김 대리가 강 부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요. 저도 혹시나 해서 경선 씨에게 잘해 주면서 슬쩍 떠봤는데 끄떡도 안 하더라고요.


 그래도 몰라서 조심하고 있었죠.


 전무님 하고 결혼까지 할 사이라고는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애인이라면 모를까.


  우리로서는 그게 그거지만 말이죠.     

     

  근데 오 과장님도 그렇고 민서 씨도 그렇고 처세가 좋은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겉보기 하고는 너무 다르더라고요.


 민서 씨가 경선 씨한테 좀 막 대한다 싶었거든요. 위험하게.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되는데.




 강 부장님께서 미리 저보고 경선 씨를 한 번 떠보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거든요.


 덕분에 저도 눈치를 채고 경선 씨에게 실수 안 해서 이렇게 승진까지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역시 부장님을 따르길 정말 잘했어요.


 이렇게 되면 전무님 라인으로 부장님께서도 이사, 상무까지 쭉 달리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부장님"     



두 사람은 담배를 피우며 서로를 보고 웃었다.


햇살이 밝고 공기가 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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