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우, 현대미술과 마찬가지로 음악 분야에서도 바링허우 세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대체로 빡센 조기교육과 콩쿠르로 다져진, '낭만파 특화 비르투오조'느낌의 젊은 연주자들이다. 강렬한 제스추어와 화려한 연주 스타일로 사실상 아이돌이나 록 스타와도 같은 세계적 인기를 구가한다. 우리가 조성진을 예찬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이러한 패러다임 안에서이다.
한편 위 유튜브 영상 캡쳐에서 BWV1080 '푸가의 기법'을 연주하는 이 할머니는 좀 많이 다른 케이스다. 일단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을 온몸으로 겪었다. 즉 중국 공산당 체제의 물리적/정신적 폭압이 가장 극에 달했던 시기에 하필 음악인으로 태어나, 서구 자본주의 문화의 앞잡이로 몰려 노동교화수용소까지 다녀왔다. 엘리트 교육이니 콩쿠르니 하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그의 이름은 주 샤오메이(Zhu Xiao-Mei), 전 세계가 경탄해 마지않는 확고한 스타일을 갖춘 연주자이자, 투렉과 니콜라예바의 뒤를 잇는 동시대 최고의 여성 바흐 스페셜리스트이다. 수용소에서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종이에 건반을 그려 몰래 연습하며 감을 유지했다는 일화가 있고, 이후 파리로 떠나 잡일을 전전했다. 중장년의 나이에 얻은 엄청난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리에 조용히 칩거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에 집중하고, 이따금 연주회를 가지며 후진을 양성하는 삶이 자못 구도자적이다. 그의 바흐 연주는 관조적이고 평온하나, 내면의 깊은 감정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김환기의 그림을 감상할 때처럼 깊이 침잠하게 되고,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표현력에 있어 기술적 엄밀성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기교가 화려하고 빈틈없이 정확한 연주는 크나큰 감각적 쾌락을 주지만, 그만큼 즉물적(卽物的)이고 곱씹을 거리가 적기도 하다. 사유의 부재, 심미주의의 결핍, 쾌락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판치는 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마음을 비추는 거울-명경지수와도 같은 그의 연주와 삶은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큰 것이다. 또한, 서로 완전히 이질적이고 동떨어진 두 문화권의 정신적 산물, 즉 도가 사상과 바흐 음악의 변증법적 합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연주는 미학적으로도 고유하다.
* 프랑스 모음곡 앨범도 꼭 들어볼 것을 권한다. 피아노곡으로서 이 이상의 아름다움이 있을까 싶다. 굴드의 다이내믹함에 다소 지쳤을 때 특히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