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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덱서 LeadXer, 작은 변화의 시작

대전환을 이끄는 자들

by 전하진



제1장. 안 되는 건 나 뿐일까

황사 낀 서울 아침, 지윤은 다섯 번째 면접을 보러 간다.

짧은 면접 후 남은 건 공허함과 ‘나는 왜 안 될까’라는 자책.

카페에서 친구들과 만난 지윤은 세대의 무력감을 나눈다.

그날 밤, 지윤은 아이들이 뛰노는 맑은 세상을 꿈꾼다 — ‘이런 세상, 남겨줄 수 있을까?’



황사경보가 내려진 서울 봄 아침.
햇살은 누런 필름을 씌운 듯 흐렸소, 마스크 너머의 공기는 거친 모래먼지였다.

정장 재킷 안으로 땀이 맺히는 걸 참아가며,
지윤은 다섯 번째 면접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될 거야. 진짜 이번엔.
근거 없는 다짐을 되뇌며 지하철 계단을 올라섰다.


“김지윤 씨 맞으시죠?”


회의실 안, 조명은 냉정했고
면접관들의 표정은 이미 결론을 알고 있다는 듯했다.

“환경공학 전공하셨네요. 요즘 ‘핫’하죠?”
“근데 실적은요?”
“캠페인 하나 하신 걸로는…”


지윤은 침을 삼켰다.
“배출량 분석 프로젝트를 했고, 논문도—”

“현장 경험은 있나요? 실무 경험 없으면 어려울 텐데.”


질문은 날카롭고, 대답은 목에 걸렸다.
짧은 침묵. 그 순간을 그들은 놓치지 않았다.


이십 분도 안 돼 끝난 면접.
복도를 나서는 지윤은 문득, 자신이 방금 어떤 존재였는지조차 헷갈렸다.


회의실의 의자만 기억난다.
앉아 있었을 뿐인, 아주 조용한 존재.

‘나는…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일까?’


답 없는 질문이 가슴을 조여 왔다.

‘내가 틀린 걸까, 아니면 세상이 틀린 걸까?’
경계는 흐릿했고, 자책은 더 진해졌다.


강남의 카페.

햇살도 먼지를 뚫진 못했다.

“또 떨어졌어?” 나영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지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은 환경도 마케팅이야.”
진수의 말에 모두가 씁쓸하게 웃는다.


“우리 세대는 말이야—
기후도 책임지고, AI도 따라잡고, 자소서도 완벽해야 돼.”
“결혼도 잘해야 하고, 그 와중에 집값은 뛰고, 그런데 부모님은 여전히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저리 확고하시니.”

"도대체 뭘 열심히 해야 하는 건지 도통 알수가 없어."


모두의 말은 조각조각 날카로웠다.
지윤은 커피를 휘젓기만 했다.
감정은 말보다 더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쳤다.

“우린 진심이었잖아.”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연다.
“세상을 바꾸자고 전공도 선택했고, 밤새 공부도 했고… 그런데 지금 남은 건?”


“책임.”
진수는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인류가 초래한 모든 책임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느낌”


말은 줄었고, 침묵은 깊어졌다.


집.

거실엔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후위기, 국제조약, 원전 논쟁.

“면접은 잘 봤냐?”
아버지의 말에 지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신발을 내 던지듯 벗은채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엔 아직 졸업논문이 놓여 있었다.
땀과 밤이 배인 결과물.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바라보지 않았다.


침대에 누운 그녀는 눈을 감는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실적은요?’
‘현장 경험은?’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요?’

우리가 할 일이 과연 무얼까?

부모님 세대들처럼 열심히 자연을 훼손하면서

결국 우리 삶을 스스로 파괴하는 일을 하라는 건가?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다 상상한다.


지금 이대로 40대가 된다면?
계약직을 전전하다가 50대,
무연고처럼 살아가는 60대,
그냥 사라지는 70대—


“나는 뭘 남기고, 어떻게 사라질까.”


숨을 크게 내쉰다.

그날 밤, 오랜만에 꿈을 꿨다.


황사도, 마스크도, 소음도 없었다.
아이들이 맨발로 초록 잔디 위를 뛰어다녔다.
공기는 맑았고, 하늘은 푸르렀다.
숨을 쉬는 게 편했다.


지윤은 그 풍경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런 세상… 남겨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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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무기력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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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열정은 조롱받고, 지금은 포기만 남았다.

기후 활동은 '수익' 없으면 무의미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말없이 침묵하고, SNS 속에 지윤의 사진을 본다.

어떤 것도 믿기 어려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알람은 울렸지만, 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소리는 더 이상 ‘기상 신호’가 아니었다.
그저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반복되는 확인음일 뿐.


창밖은 황사로 뿌옇고, 방 안은 감정 없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어젯밤 먹다 남긴 배달 용기,
바닥에 널린 옷가지,
먼지 낀 책상 위엔 닫힌 노트북과
잊힌 꿈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서준은 누운 채 중얼거렸다.
“무기력에도 기술이 필요하지… 이건 숙련된 정적이야.”


예전엔 이 말을 누군가에게 했다가,
“그건 그냥 자기합리화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 이후로 그는 침묵을 택했다.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SNS를 스크롤한다.
기후 재난, 테크 뉴스, 챗GPT 업데이트, 인턴 모집 공고, 전세대란, 금리 인상…
모든 것이 뉴스고, 동시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지윤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앞에 둔 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
글도, 해시태그도 없었지만
서준은 그 표정을 알아봤다.


질문 없는 눈. 대답 없는 얼굴.
모든 게 가라앉은 고요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에게도 꿈이 있었다.


대학교 2학년.
제로웨이스트 기반의 업사이클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용한 폐플라스틱을 수거하고, 가방 시제품을 만들었다.
크라우드 펀딩도 열었다.


하지만 제작은 미숙했고,
23개 주문 중 8개가 불량이었다.
그중 하나가 SNS에서 조롱을 받았고,
“이럴 거면 하지 말지”라는 댓글 하나에
프로젝트는 멈췄다.


팀은 그날 해산됐다.
서준은 그 이후, ‘다시 시작하는 법’을 잃었다.


그보다 더 아팠던 건,
“이건 그냥 경험이야”라는 위로보다
“그 시간에 공기업 준비하지 그랬냐”는 현실적인 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말.
아버지의 한마디.
“너 혼자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냐?”


그 말은 단단한 돌처럼 마음 깊숙이 박혀,
해가 갈수록 더 무거워졌다.


서준은 도전 대신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NCS 교재를 사고, 취업 카페에 가입하고, 인적성 앱을 깔았다.
하지만 수백 개의 이력서 중 돌아온 건,
거절 메일 혹은 침묵.


면접 한 번 붙은 날,
면접관이 물었다.
“공백기 동안 뭐 하셨나요?”


그 질문 앞에서,
그의 지난 2년은 ‘의미 없음’으로 요약되었다.


서준은 혼란스러웠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일이 왜 돈이 되지 않으면 의미 없는 게 되는 걸까?


처음엔 ‘착한 소비’를 말했고,
ESG가 희망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마케팅 예산 항목에 불과했다.


엑셀 시트를 열고 탄소중립을 말하는 사람들.
플라스틱 제품 위에 ‘그린라벨’을 붙인 채로,
기후 행동이라 부르는 시스템.


그는 점점 알게 됐다.
이 사회에선
진심보다 포장이, 가치보다 수익이 우선된다는 것.


그 순간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서준의 유일한 방어기제가 되었다.


움직이면 다친다.
기대하면 무너진다.


밤이 되었다.
방은 어두웠고, 스마트폰 화면만 은은하게 빛났다.
지윤의 말이 떠올랐다.

“우린 진심이었잖아. 근데 돌아오는 건 뭐야?”


서준은 천천히 검색창을 열었다.
‘환경 실천’
손가락이 망설이다 멈췄다.


“…내가 뭘 바꾼다고.”

그리고 조용히, 다시 화면을 껐다.
핸드폰을 뒤집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창밖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먼지 낀 유리 위로
물방울 하나, 둘, 스며들었다.


서준은 그 물방울을 조용히 바라봤다.

“내일… 진짜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그 질문이, 처음으로
절망이 아니라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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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너도 나도 아닌, 우리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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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감축보다 이미지가 소비되는 구조가 그녀를 냉소적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좋은데, 수익은요?”만 반복하며 그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텀블러를 든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구조 없는 실천의 한계도 느낀다.

“좋은 마음은 넘치는데, 시스템이 없다”는 현실이 답답하다.


나영

나영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모니터 앞에 앉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되는 루틴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더 묵직했다.


스스로를 냉철하다고 믿었다.
기후도 중요하고, 생태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밥벌이가 중요했다.
지윤은 순수했다. 때로는 그 순수함이 부러웠다.
서준은 너무 맑았다. 그래서 자주 부서졌다.
그에 비해 자신은 언제나 계산적이었다. 그렇기에 부러질 일도, 흔들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나영은 알고 있었다.
사회에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감성보다 계산이 먼저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오히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들 모두가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들을 전환시킬 언어도, 시스템도, 신뢰도 없는 이 사회라는 걸.


사람들이 애써 실천하고 있는 기후 행동이
정말 탄소를 줄이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회용 컵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스스로에게 묵인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어차피 큰 차이 없잖아."
이런 마음의 속삭임은 늘 조용하고, 은근히 달콤했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건 단순한 환경 실천이 아니다.
이제는 어떤 ‘신념의 표현’처럼 여겨진다.
누군가는 SNS 인증샷을 위해,
누군가는 회사에서 '의식 있는 직원'처럼 보이기 위해 든다.


그 자체를 비난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그런 행동은 캠페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텀블러가 실제로 탄소를 얼마나 줄이고 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나영도 집에 텀블러가 여섯 개나 있다.
이벤트, 행사, 기념품으로 받은 것들.
하지만 단 한 개도 진짜 ‘일회용 컵 사용 줄이기’에 기여한 것 같지 않았다.
텀블러는 또 하나의 소비 대상이 되었고,
‘지속가능한 소비’라는 이름 아래 생산을 정당화하는 구조는 어딘가 모순적이었다.


최근엔 생분해 컵이 유행이다.
겉보기에 ‘착한 소비’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 컵들도 결국 플라스틱과 함께 수거되어 소각된다.
제대로 분리되어 다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영은 그런 현실이 갑갑했다.
진짜 문제는, 탄소 감축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순환 메커니즘’ 없이
행동만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 있는 모습’만 소비되고,
정작 실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진실을 스스로 왜곡하고,
누군가의 선의를 지치게 만들며,
정말 필요한 행동을 망설이게 만든다.


"이런 걸 다 알면서도 난 지금 기후 데이터 입력하고 있지…"
나영은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은 기계처럼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아무 감정 없이 새어 나온 체념 같았다.



진수

진수의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탄소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기존 자동차에 장착할 수 있는 ‘공회전제한장치’,
그러니까 차가 멈추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고, 다시 움직이면 다시 켜지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고급차에는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지만,
그 기술을 처음부터 개발했던 사람이 바로 진수의 아버지였다.


무려 17년 동안 기름을 아끼고, 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신념으로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자산은 바닥났고,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술을 상용화해 세상에 진짜 도움이 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수는 그런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자랐다.
경제적으로는 늘 팍팍했지만,

그 기술이 세상에 가져올 변화의 가치를 믿었다.


솔직히, 아버지를 원망할 법도 했다.
가정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진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못했다.
그보다, 그 기술이 진짜 필요한 세상이라 믿었고,
자신도 그 실현을 돕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진수는 아버지의 기술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문제의 본질을 파악했다.


측정.
탄소 감축 효과를 정량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물론 배터리 소모 같은 물리적 보완도 필요했지만,
진짜 문제는 ‘어떻게 증명하느냐’였다.


진수는 직접 교수들을 찾아다녔다.
자동차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서버와 연결해 실시간으로 연료 절감량과 탄소 감축량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경험은 진수에게 확신을 줬고,
결국 그는 독립해 ‘기후테크’ 분야의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초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IR을 하고, 엑셀러레이터에서 피칭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늘 같았다.


“이거 좋네요. 그런데… 수익은 어떻게 나죠?”


정중하지만 본질은 단 하나였다.

윤리도 좋지만, 돈부터 되게 해주세요.


결국 진수는 팀을 해산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개발자.
밤마다 파견 프로젝트를 뛰며 겨우 생활을 이어간다.


가끔 그가 만든 프레젠테이션 속 문장이 떠오른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이고, 그 사람은 지금, 여기 있다.”
“그땐 내가 그 사람인 줄 알았지…”


요즘 진수는 그저 침묵한다.
누군가 기후 이야기를 꺼내면, 가끔 이렇게 말한다.


“그거 다 쇼야.”


진심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말해야 마음이 덜 아프다.


진수는 사실, 텀블러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개별적 실천이 구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이 늘 걸렸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 노력은 체계 없이 흩어지고 있다.


‘좋은 마음’은 넘쳐나는데,
그 마음이 시스템과 만나지 못하고 공중에 흩어지는 현실이 아쉬웠다.


진수는 생각했다.

“이걸 연결해줄 수 있는 구조는 누가 만들 수 있을까?”


아버지의 기술도 마찬가지였다.
측정과 평가를 가능하게 하자 시장 반응은 좋아졌다.
하지만 그렇게 측정된 탄소 감축량을 공식적으로 인증해줄 기관이 없었다.


감축한 탄소는 현실에서 존재했지만,
경제적 가치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탓에 아버지의 사업은 더 이상 확장될 수 없었다.
기술은 완성되어 있었지만, 시스템이 없었던 것이다.


진수는 깨달았다.
지금의 리더십은 거의 예외 없이 고탄소 산업의 수혜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치든, 경제든, 시스템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산업화 시대에 의해 선택된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저탄소 전환'은
기득권 해체라는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후 행동은

지금도 여전히 주변부의 실천으로 남아 있다.


진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진짜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용기일지도 몰라.”


같은 카페, 다른 창가

“나는 이제 뭘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어.”
진수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기업도, 정부도, 심지어 시민단체조차도… 다 자기들 잇속만 챙기는 것 같아.”


나영이 컵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맞아. 근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우리 세대도, 어느 순간 그 포장에 익숙해졌다는 거.”


“익숙해졌고… 그걸 써먹기 시작했지.”
“그러면서도 죄책감을 느껴.”
“그리고 그 죄책감을… 서로에게 돌리지.”


둘은 웃었다.
씁쓸하고, 그러나 너무 솔직한 웃음이었다.


카페를 나서며 진수가 물었다.
“야, 너 아직도 꿈 같은 거 있어?”


나영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말했다.
“응. 근데 이제 그걸 ‘꿈’이라고 말하진 않아.”
“지금은 그냥… ‘남들한테 걸리지 않고 오래 가는 마음’ 같은 거야.”


진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어쩌면 지금의 자신에게도 가장 필요한 정의라는 걸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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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우리가 무엇을 남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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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의 아버지 태호는 친구들과 삼겹살집에서 모임을 가진다.

친구들은 산업화, 디지털화 등 모든 전환을 이겨낸 ‘베이비붐 세대’의 자부심을 나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날 청년들이 처한 무력감과 단절도 언급된다.

“우린 밀어붙였지만, 그 결과가 지금 아이들에겐 장애물이 된 건 아닐까.”



지윤의 아버지 김태호는 오랜만에 대학 동기 셋과 만났다.
상범은 퇴직 후 자영업을 시작했고,
영호는 아직 대기업 고문으로 남아 있었고,
기현은 환경운동을 접고 시골에서 텃밭을 일군다고 했다.


삼겹살이 지글지글 잘 익어가는 테이블.
소주잔이 몇 번 돌고 나서야, 굳었던 표정들이 조금씩 풀렸다.


“너희 딸은 요즘 뭐 하냐?” 상범이 물었다.


김태호는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지윤이… 아직 취업 준비 중이야.”


“그 녀석 참 똑똑했잖아. 서울대 나왔잖아?”
“환경공학 전공했지.”
“요즘 잘 나간다며?”
“글쎄… 쉽지 않더라고.”


잠시, 테이블 위에 정적이 흘렀다.


“우리 땐 말이야, ‘먹고 살기’가 우선이었지.”
영호가 먼저 입을 뗐다.


“맞아. 우린 그냥 주어진 길을 달렸어.”
상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현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근데 우리 베이비붐 세대, 정말 독특한 세대야.

농업화, 산업화, 정보화, 디지털화…
모든 전환기를 몸으로 극복해낸 유일한 세대지.
아마 전 세계를 다 뒤져도 이런 세대는 만날 수 가 없을거야.”


영호가 맞장구쳤다.
“선진국 또래들은 출발선이 달랐어. 가난을 몰라.
후진국은 너무 늦게 시작해서 아직도 디지털에 적응 못 하고 있고.”


기현은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식들한테 할 말이 많은 것도 당연해.
진짜 치열했으니까.
근데 지금 아이들은 중진국, 선진국의 조건에서 태어난 세대야.
우리가 겪은 과거를 그대로 강요할 순 없지.”


“그렇다고 지금 애들처럼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 게 정상은 아니지.”
상범이 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세상 무너진 거 아니잖아.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하냐고.
우린 밥 굶으면서도 버텼어.”


기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상범아, 지금 아이들은…
그 무너진 세상의 잔해 속에 있다고 느끼는 걸지도 몰라.
우리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였지.
그런데 그 결과가, 지금은 오히려 그들 앞에 장애물이 되어버린 걸 수도 있어.”


상범은 쓴웃음을 지었다.
“허긴…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말이야, 우리처럼 고난을 통과한 세대가 또 있냐?
우린 살아남았고,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어 냈잖아.
그 결과가 기후위기고, 인공지능이고…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는 소주잔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어찌 됐든 간에, 우린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
아이들이 그걸 인정 해 주지 못하면 … 섭섭하지.”


영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어렸을 때 세상이 이 정도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냐.
어찌 되었건 간에 그만큼 만들어 내는거잖아.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너무 나약해.


그나저나 이런 상황을 물려주는 게 문제라면
아직 남은 힘을 다해 다시 뛰어야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
우리 세대가 제대로 된 세상을 물려줘야
우리의 치열했던 삶도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그 순간, 기현은 소주 한 잔을 벌컥 들이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도심 속, 나무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나무는 한 세기를 넘게 같은 자리에 서서
봄이면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며,
가을이면 잎을 떨구고, 겨울이면 고요 속에 들어갔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말이야 인류는 무엇을 향해 이리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건지

가끔 무척 궁금해 했었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농업화, 산업화, 정보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잖아
가끔은 그런 인간들이 참 놀라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은 태어나서 먹고, 자고, 싸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자연에 기여하고 돌아가는데

.
근데 유독 인간만… 뭔가를 창조하고, 만들어내고,
또 거기서 끊임없이 확장해 가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그 창조가 자연을 위한 게 아니라,
결국 인간만을 위한 거였단 말이지.

그리고는 결국 기후위기 등 지금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거 아닐까?"

잠시 정적.

그의 말은 낯설었지만, 친구들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기현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인공지능까지 만들어냈어
앞으로 모든 기계의 지능이 인간 이상으로 업그레이드가 되면

그 때 세상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 될거야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 서빙로봇이, 아니면 공장의 휴머노이드가

무기로 돌변할 수 도 있고, 오작동으로 큰 피해를 줄 수 도 있겠지."


그는 조용히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처럼 계속 욕망만 채우려 하면 그 끝이 어디일까.
탐욕과 쾌락의 끝은 파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길을 달려온 거지
마치 알코올 중독자처럼 말이야 “


그러자 상범이 받아쳤다.


“야, 우리가 그렇게 살지는 않았지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나라를 위해 살아 온거야
자기를 희생하면서
솔직히 우리 자신을 생각한 적이 얼마나 되냐?”


그러자 기현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 말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인류의 이야기야.
우리는 하나의 세포처럼 그리 성실하게 살았지
그런데 인류는 자신들 만을 위해 살았다는 거야.”


살면서 별로 생각해 보지 않은 터라 잘 몰랐지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기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연과 공존하려는 의식 없이 가면,
멸종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어.


인간이란 종도… 성숙해져야 해.
마치 아이가 태어나 자기 욕심만 채우다
어른이 되어 타인을 배려하게 되듯,
이제 인류도 그런 단계에 온 거 아닐까?”


영호와 상범은 깊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껏 나 살기 바빴고, 가족을 챙기고, 회사를 돌보고,
나라 걱정을 했지만…
‘자연을 위해’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자연을 ‘어떻게 이용할까’는 고민했지만,
‘어떻게 함께 살아갈까’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잠시, 묵직한 침묵이 흐른 뒤였다.
기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전환을,
과연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혹시… 농업화, 산업화, 디지털화를 통과해낸 우리가,
또 한 번 나서야 하는 건 아닐까?”


김태호가 진지한 눈빛으로 기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그래서 난 가끔 생각해.
지금 청년들에게 단순히 일자리나 집을 주는 걸 넘어서,
상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지금까지 없었던 삶의 가능성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게 우리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사명일지 몰라.


우리가 만든 이 위기를,
우리가 만든 이 문명을,
우리가 함께 전환시켜야 해.
그냥 끝내는 게 아니라,
연결되도록.


기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런 생각은 가득하지만,
결국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으로 남았잖아.
어떨 땐 답답하고,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해.”


김태호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은, 단지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속 깊은 곳에서 오래 묵은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일까.
우리가, 아직도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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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바람이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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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은 예전에 적어둔 메모를 떠올리며 ‘Greeners’라는 단어를 다시 적는다.

탄소 감축을 시스템화하려는 선배 배진희의 실천 현장을 방문한다.

감축 효과는 있지만, 그것을 증명해주는 구조가 없다는 한계에 공감한다.

“이걸 연결해줄 누군가가 필요해”라는 말 속에 새로운 가능성이 움튼다.




지윤은 멍하니 텀블러에 남은 커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운 액체 위로 미세한 떨림이 일었고,
그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일그러진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며칠째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회색빛 하늘이 도심 위에 눌러앉은 것처럼,
도시는 낮게 깔린 정적에 잠겨 있었다.


모든 게 멈춘 것 같았다.
하지만 지윤은 알았다.
세상은 언제나 조금씩,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다만 그 방향을 아무도 확신하지 못할 뿐이었다.


스마트폰을 열자 서준의 SNS 계정이 떴다.
마지막으로 올린 사진은 빛바랜 벽.
말도, 해시태그도 없었다.
하지만 그 무언의 침묵 안에는
무수한 문장이 갇혀 있었다.


지윤은 잠시 망설이다,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서준아, 커피 한 잔 할래? 이번 주에.]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간질거렸다.
오래된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내는 기분.
혹은, 한동안 잠들어 있던 감각이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나영에게는 좀 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영아, 기후 관련해서 요즘 어떤 생각해?
만약 우리가 뭔가 해볼 수 있다면,
어디서 시작하고 싶어?”


답은 의외로 빨랐다.


[실험은 좋은데… 사람 모으는 게 문제지.
그리고 신뢰. 그게 제일 어려워.]


잠시 후, 또 한 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근데 네가 하자고 하면… 일단 한 번은 생각해볼께.]


그 말투는 나영다웠고,
어딘가 따뜻했다.


그날 저녁, 지윤은 창문을 열었다.
습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 한 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몇 달 전,
자신이 끄적였던 메모였다.


‘내가 바꾸고 싶은 것’
‘작게 시작할 수 있는 것’
‘나 혼자라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공백으로 남겨둔 맨 아래 칸.


그녀는 펜을 들고, 망설이다가
거기에 천천히 한 단어를 적었다.


Greeners


지윤은 손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단어는 꼭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다만,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조금 더 푸르게 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서로 잇는 어떤 방식에 대해 상상한 것이었다.


며칠 뒤, 지윤은 서울 근교의 한 캠퍼스를 찾았다.
선배인 배진희 대표가 운영하는 기후테크를 보기 위해서 였다.


구내식당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시스템.

단 한번의 측정으로 잔반량을 계산하고 데이터화하여

탄소 감축량을 계산하는 구조였다.


성과는 뚜렷했다.

학생들의 남기는 습관은 줄어들었고,

구내식당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도 50%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배 대표는 씁쓸하게 말했다.

“포인트는 지급되지만… 이걸 탄소크레딧으로 전환하긴 어렵지.
감축량은 분명히 있는데,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구조가 없거든.”


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메모했다.


측정. 인증. 연결. 보상.

그러다 작게 중얼거렸다.

“이걸… 연결해줄 누군가가 필요해.”


그날 밤, 지윤은 노트북 앞에 앉아
다시 그 단어를 적었다.


Greeners


그건 단순히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 단어는 서로를 기억하고, 연결하고,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들을 뜻했다.


아직은 아무것도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지윤은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믿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무심히 말했다.


“이번 주에 SDX재단 이사장이 너희 학교에 강연을 간다고 하던데.
내 친구인데… 가서 한 번 들어봐 네가 들으면 도움이 될거야.”


지윤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게,
무언가가 ‘딸깍’ 소리를 내며 열리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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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우리가 다시 말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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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만으론 부족하다. 우리가 직접 감축 목표를 설정하자”는 말이 그녀를 움직인다.

첫 VDC 항목에 “작은 연결,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나의 첫 실천”을 적는다.

이름을 입력한 후, 그녀는 LeadXer 00247로 등록된다.

“우리는 다시 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기후 관련된 강연인데… 내 친구야. 네가 들으면 좋아할거야.”
아버지가 무심히 던진 말이었다.


지윤은 잠시 멈칫했다.
SDX재단.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었다.
기후, 기술, 시민 캠페인… 그런 단어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순간, 머릿속 어딘가에서
그동안 감지되지 않던 전류가 스르르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뒤, 캠퍼스 대강당.
사람들은 조용히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무대 위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시민 리더십과 새로운 전환”


무대에 등장한 이사장은 놀라울 만큼 평범한 인상이었다.
정장도 아닌 셔츠 차림, 특별한 무대 장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부드러웠다.
그가 내뱉는 문장 하나하나가 지윤의 가슴에 조용히, 그러나 깊게 박혔다.


“국가의 탄소감축목표, NDC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전 세계 국가들이 세운 NDC의 총량은
인류가 실제로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것 만으로는 결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후위기를 ‘정부의 일’, ‘기업의 일’로만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타자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지윤은 숨을 들이켰다.
그 말은, 지금껏 자신의 안에 쌓여 있던 질문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구조를 제안합니다.”


“VDC, 자발적 감축 목표.”
각자가 자신만의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일상의 실천을 기록하며
그것을 사회적 데이터로 전환하는 구조입니다.


“MCI, 조각 탄소 이니셔티브.”
아주 작은 감축 행동—
한 끼의 잔반을 줄인 일,
운전 습관을 바꾼 일.

그런 조각 감축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수천, 수만의 사람들과 연결시키는 메커니즘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탄소 캠페인이 아닙니다.
기후행동은 지구와 자연,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미래 사회의 새로운 상식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초 운동입니다.”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 모든 도전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우리는 LeadXnow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도전에 첨병이 되어줄 동반자,
리덱서(LeadXer)를 오늘부터 모집합니다.”


그 순간, 대강당 안은 묘한 침묵에 잠겼다.
지윤은 말없이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마치 온몸의 세포가 동시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이건… 내가 상상했던 그거야.’


강연이 끝난 뒤, 지윤은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가려다 멈췄고, 다시 앉았다.
결국, SDX재단 안내 부스를 찾았다.


“LeadXnow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며칠 후, 지윤은 서준과 나영을 만났다.
조그만 카페 구석자리.
지윤은 그날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놓았다.


VDC, MCI, LeadXnow, 리덱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시민을 중심으로 설계된 구조인지,
어떻게 연결되고, 기록되고, 보상받을 수 있는지.


말이 끝나자,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또 캠페인? 또 누가 상처 입는 거 아니야?
예전에도 많았잖아. 다 좋은 말로 시작해서… 결국 이벤트로 끝나.”


나영도 냉정한 표정이었다.
“말은 다 멋있지. 근데 그걸 누가 인정해 준데?.
기록되면 누가 보상을 하고 또 숫자는 어떻게 믿게 하지?
어찌 되든 숫자로 못 보여주면 다 감성이고, 감성은 오래 못 가.”


지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그게 제일 걱정이야.
그래서… 같이 해보자고 말하는 거야.
이걸 구조로 바꾸는 건 결국 우리가 해야 되는 거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리?”
서준이 작게 웃었다.
“이제 또 우리냐?”


다시 우리일 수도 있잖아.
지윤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번엔, 기록되고, 남겨지고,
누군가가 보고 따라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면 좋겠어.”


서준은 눈을 내리깔았고,
나영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침묵 속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밤.
지윤은 조용히 노트북을 켰다.
SDX재단 홈페이지.
LeadXnow 캠페인 참여 신청서가 떠 있었다.


이름, 연락처, 관심 분야, 그리고
“당신의 첫 번째 VDC는 무엇입니까?”


지윤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천천히 타이핑을 시작했다.


“작은 연결.
세 사람을 다시 엮은 것.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나의 첫 실천.”


제출 버튼 앞에서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클릭.


LeadXer 00247. 이지윤.


이름은 아직 낯설었지만,
그 안에 작게 울리는 어떤 확신 같은 떨림이 있었다.

“우리는… 다시 말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지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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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전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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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태양광, 빗물 재사용, 음식물 자원화 등 소박하지만 실천적인 방식으로 살아간다.

지윤은 마을의 작은 실천들이 실제 탄소 감축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마을은 작지만 유기적인 순환이 있고, 그것이 지속가능성을 가능하게 한다.

지윤은 LeadXnow 캠페인을 이 마을에서 실험해보자고 결심한다.




친구들과 리덱서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뜨거운 토론을 나눈 지 며칠 후,

지윤은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지윤 씨 맞으시죠? 저는 민지라고 해요. 성북동에서 퇴비화 마을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오실래요?”

낯선 번호였지만 목소리는 따뜻했고, 지윤은 묘하게 마음이 이끌렸다.


며칠 후, 그녀는 성북동의 오래된 한옥 마당에 들어섰다.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있는 민지 할머니는 구수한 미소로 그녀를 맞았다.


“나는 베이비붐 세대야. 젊었을 땐 무조건 많이 만들고 많이 쓰는 게 잘 사는 거였지.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후손들한테는 죄인이더라고.”


민지 할머니의 말은 진심이었고,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쓰레기를 줄이고, 옥상에 태양광을 깔고, 공동 주방에서 절식 요리를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기술이 아닌 관계 중심의 자발적 감축목표(VDC)의 실천이었다.


하지만 지윤은 생각했다. 이 실천들이 정확하게 측정되고 인증될 수 있다면,

지속성과 확장성을 갖춘 시스템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윤은 진수에게 요청하여 민지 공동체의 활동 방식을 분석해,

몇 가지 조정을 거쳐 조각탄소감축계획(MCRD) 신청을 도왔다.

퇴비 무게 측정, 에너지 사용량, 식단 구성 등을 감시하기 위한 센서를 설치하고,

활동 데이터를 플랫폼에 연결시켰다.


며칠 후, 지윤은 진수에게 다시 연락했다.
“혹시 너희가 만든 장치, 마을 공동체 트럭에도 설치할 수 있을까?”


진수는 잠깐 놀란 듯했지만 곧 웃으며 말했다.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인데? 공동체 기반 MCRD 모델 만들 수 있겠어.”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자주 통화하며, 기술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새로운 구상을 함께 나눴다.
기술을 잘 모르는 지윤의 감각은 사람을, 현장을 이해하는 것이었고
진수는 그것 이야말로 진짜 기술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마을은 MCRD 승인을 받았고, 실천은 탄소 감축으로 정량화되었으며

조각탄소크레딧(MCC)이 부여되기 시작했다.

마을은 그 MCC를 지자체에 판매해 공동경비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주민들의 성취감은 높아졌으며 참여도도 더욱 늘어났다.


진수도 마을을 찾았다. 그는 조용히 마당의 풍경을 둘러보다 말했다.

“이제 이곳은 기술과 공동체가 함께 탄소를 줄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진짜 전환의 마을이 되었네요.”


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진수의 조각탄소기술(MCT)이 실천을 기록하는 '도구'라면,

민지의 공동체는 그 실천을 지속시키는 '온기'라는 것을.


그녀는 그날 밤 LeadXnow 플랫폼에 글을 올렸다.


“데이터는 구조를 설계합니다. 하지만 관계는 문화를 만듭니다. 오늘 저는 그 문화를 배웠습니다.”

댓글이 쏟아졌다.


“우리 동네도 그런 마당이 있어요.”
“퇴비화, 태양광, 절식… 우리도 시작해 볼래요.”

마을에서는 매주 ‘탄소 줄이기 주간’을 열었다.
1주 차는 잔반 없는 날,
2주 차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3주 차는 중고물품 나눔 장터.

지윤은 이 작은 실천들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시각화했다.
“여러분, 우리가 줄인 탄소는 총 18.2kg입니다. 나무 3그루 분량이에요.”
주민들이 박수를 쳤고, 아이들은 포스터를 만들어 마을에 붙였다.
지윤은 웃으며 생각했다.

‘기술이 없어도, 우리에겐 이웃이 있고, 행동이 있다.’


그날 이후 VDC Board에 등록된 로컬 리빙랩은 5곳에서 28곳으로 늘었다. 리덱서들은 이제 골목, 마을, 옥상, 텃밭으로 퍼지고 있었다.


지윤도 실천을 이어갔다. 올해 그녀는 자신의 VDC 목표를 3톤으로 설정했다.


한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2톤, 세계 평균은 5톤, 인도는 2톤, 미국은 16톤.


지윤이 실천한 감축 항목은 다음과 같다:

- 배진희 대표의 더제로 시스템을 활용한 잔반 줄이기

- 자동차에 장착된 Z-car를 통해 친환경 운전으로 1톤 줄이기

- 자원 재순환과 친환경 제품 사용 등 소비습관 전환


이 모든 것은 조각탄소기술(MCT)을 보유한 기업의 디지털 플랫폼에 의해 자동 측정되었고,

지윤은 행동만으로 MCC를 배당 받았다.


이 MCC는 VDC를 이행 중인 기업이나 지자체가 구매해간다.

VDC 참여가 늘수록 MCC 수요는 커지고, 기후행동 참여자도 늘어난다.

그 과정에서 MCT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기후경제의 선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지윤은 실감했다. 기후행동은 더 이상 외로운 개인의 몫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연결되고 설계하는 미래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리덱서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그것은 더 많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기후행동(Eco Flow)에 참여하도록 안내하고,

기업들에게는 제품이나 건물에서 MCC를 받을 수 있는 MCRD를 설계해주는 것.
지역 기반 조각탄소프로젝트(MCP)를 함께 만드는 것.
이게 바로 새로운 기후 리더십의 모습이었다.


기후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작은 행동이 실은 인류 진화를 이끄는 미세한 변화라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 확신이 생긴 순간, 그들은 삶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했다.


진수에게도 큰 변화가 왔다.


아버지가 개발한 공회전제한장치가 진수가 만들어 준 디지털 플랫폼 덕분에 MCRD 승인을 받아 조각탄소크레딧(MCC)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공회전제한장치’가 설치되는 트럭, 택시, 배달차, 학원통학차 등에서 안전과 연료절감, 그리고 탄소감축이 이루어졌고, 이것이 정확히 측정되면서 MCC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런데 탄소크레딧 가격이 자꾸 올라가고 있어, 진수 아버지 회사는 영업이익보다 탄소크레딧 수익이 더 커졌고 그 비중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다.


이제 진수도 새로운 조각탄소기술(MCT) 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회사는 MCRD를 잘 활용하여 MCC 확보에 주력하려고 한다.


지윤이는 비록 기술을 잘 모르지만, 공동체가 함께 탄소를 감축하는 활동을 독려하면서 그 활동에서 측정할 수 있는 온실가스를 정확하게 확보하도록 돕는다.


그것이 곧 사업 모델이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길이기에 일하는 보람이 매우 크다.


언젠가 지윤이 중학교에 초청 강연을 갔을 때였다.
“탄소 1g이 뭐라고요?” 한 학생이 물었다.
지윤은 웃으며 말했다.
“1g은 티 안 나요. 근데 너희가 100명이 모이면 100g이야. 하루에. 1년이면 36.5kg. 작은 숲 하나가 숨 쉬는 만큼이야.”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면 우리가 진짜 지구를 도울 수 있어요?”
“응. 너희가 진짜 리더야.”


지윤은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걸 느꼈다.
처음엔 그저 설명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고,
조금 지나자 자신이 이 이야기를 정말 믿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희가 진짜 리더야”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한 말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래, 나도 이걸 믿고 있었구나. 그리고 계속 이 길을 가고 싶구나.’
그 순간, 지윤은 망설임 없는 리덱서가 되어 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느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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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우리가 만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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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실천이 모여 의미 있는 감축이 된다’는 메시지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LeadXnow는 SNS를 통해 확산되기 시작하고, 청년들의 자발적 참여가 늘어난다.

지윤은 '기록 가능한 감축'과 '정량적 보상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임을 강조한다.

지윤은 말한다: “우리는 거대한 구조를 바꾸진 못했지만, 바꾸는 길을 만든 거야.”




지윤의 강연 영상을 본 건 우연이었다.
중학교 강당, 한 아이가 물었다.
“탄소 1g이 뭐라고요?”라는 질문에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알려주는 그 장면.
100명이 하루에 1g을 줄이면 작은 숲 하나가 숨 쉬는 만큼의 탄소를 줄일 수 있음을 알려주는 모습에서


김태호의 가슴 어딘가가 울렸다.
그 말 한마디에, 그는 무언가 오래된 돌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한 채, 같은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며칠 후, 김태호는 오랜 친구들과 다시 마주 앉았다.
이번엔 익숙한 고깃집이 아니라, 성북구 시민센터 2층 회의실.
지윤이 소개해준 ‘로컬 VDC 워크숍’의 일환으로 리빙랩 사례를 직접 보러 간 자리였다.


“이게 다 애들이 한 거라고?”
영호가 감탄했다.


나무로 만든 텃밭 상자, 분리수거함 위에 달린 실시간 센서, 커뮤니티 게시판에 붙은 탄소저감 실적표.


“진짜 요즘은 아이들이 다 가르쳐주는 시대네.”

기현이 말했다.


상범은 벽에 붙은 ‘VDC 1톤 달성 명예 게시판’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처음엔 반감도 있었어. 우리가 해온 걸 다 무시하는 것 같고. 근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아.”


김태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지윤이 하는 거 보니까... 이건 그냥 ‘탄소 줄이기’가 아니라, 삶을 바꾸는 일이더라고.”


그날 저녁, 네 사람은 근처 한옥 카페에서 다시 둘러앉았다.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표정은 약간 달라져 있었다.


“야, 우리 진짜로 뭐라도 해볼래?”
김태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말만 하지 말고. 우리도 리덱서 한 번 해보자.”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상범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뭘? 지금 우리가 무슨 앱을 개발하냐, 태양광을 까냐?”
“그런 거 아니고. 우리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거야.”


김태호가 이어서 설명했다.

“우린 농업화, 산업화, 정보화, 디지털화까지 다 겪은 세대야. 선진국의 베이비붐 세대도,

후진국의 노년층도 겪지 못한 고유한 세대라고. 그만큼 역경을 이겨냈고, 치열하게 살았어.

근데 이제… 그걸 어디에 쓰냐고?”


영호가 맞장구쳤다.
“맞아. 우리 세대는 지금까지 ‘쌓는’ 데만 집중했지.
그런데 이제는 ‘줄이고, 바꾸고, 넘기는’ 역할을 해야 할 때야.”


기현이 노트북을 꺼냈다.
“우리 이참에 진짜 계획 세우자. 내가 아는 지역 농촌 협동조합이 있는데,
거기랑 저탄소 농업 시범지구 한번 연결해볼 수 있어.”


“좋다. MCC 만드는 거, MCRD 설계하는 거, 우리 딸한테 자문받자.”
김태호가 웃으며 말했다.


상범이 천천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 이거 한국에서만 하지 말자. 지금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 농촌도 저탄소 농업이 필요하잖아. 거긴 우리보다 더 절박하다고.”


기현이 눈을 반짝였다. “‘한국형 로컬 리빙랩 모델’ 해외 수출?
어쩌면 진짜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몰라.”
기현은 속에 묻어두었던 말을 신나서 꺼내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 가도 우리는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자들이야
우리는 그들의 아픔과 순수함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를 아는 유일한 지구인일지 몰라.
다른 어떤 나라사람도 우리만큼 공감하지 못할거야
그러니 우리가 나서서 그들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면
죽기 전에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는 거네”


기현은 약간 흥분되기 시작했다.


“우리 세대가 진짜 리덱서가 돼서 전 세계로 나간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멋지냐?.”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미 7백만명이나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다구
모든 지역에서 그곳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은 쉽게 얻어지는게 아니야
그러니 K-pop, K-food도 그런 배경이 있는 거지


그러니까 이제 K-Culture를 넘어 K-Future를 전파해야 할 때라는 거지.”
상범은 여전히 험한 말투였지만, 눈빛은 뜨거웠다.


“그래 은퇴가 아니라… 두 번째 전성기를 한 번 만들어 보는거야. 죽기 전에.”

"아직 우리는 할 힘이 있다구."
영호가 조용히 말했다.



그날 밤, 김태호는 지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도 리덱서 해볼까 한다. 같이 한번 만들어보자. 전 세계에 한국형 기후마을 퍼뜨리는 거. 어때?’


지윤의 답장은 짧고 강렬했다.

“드디어 아빠다운 말이네. 같이 가요.”


그 문자를 읽고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아주 오래된 근육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정말 오래간만에, 마음 깊은 데서 묘한 설렘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삶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리더십은 젊음이 아니라, 용기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은 그 두 번째 인생의 첫날에 서 있었다.



며칠 후, 김태호와 친구들, 그리고 지윤과 그 친구들이 함께 ‘리덱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날의 주제는 ‘ESGG’였다.


ESGG는

지구적 윤리관(Ethical)에 따라 지속가능한(Sustainable) 방법으로 지구적 선(Global Good)을 추구하자는 새로운 사회 매러다임이었다.


“우리는 과거엔 생존을 위해 싸웠지만, 지금은 공존을 위해 싸워야 해요.”
강연자의 말에 김태호는 조용히 메모를 했다.


“윤리란, 나를 넘어선 타자에 대한 책임입니다. 우리는 이제 자연, 미래 세대, 그리고 관계 맺는 모든 존재에게 책임지는 존재가 되어야 해요.”


그때 기현이 조용히 손을 들고 말했다.
“나는 오늘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연을 위해 해 준 게 없었구나. 오로지 인간을 위해 자연을 파헤쳤지, 단 한 번도 자연을 위해 이바지한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요. 이런 사실을 그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게 정말이지 놀라운 일입니다.”


방 안이 정적에 잠겼다.


기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ESGG는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가치하고 생각해요.
AI가 인간에게 유해를 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인간의 윤리의식이 보편적이고 강력해야 하는데 지금 지구상의 상식으로는 그런 윤리의식을 찾을 수 가 없거든요.

그런데 이제 우리가 가져야 할 윤리관은 더 이상 국가나 민족 수준이 아니라,
지구적 윤리관이어야 한다는 ESGG의 철학은 정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애국심을 넘어서야 해. 진짜 지구적 선이 뭔지, 모두가 성찰하고 정렬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어쩌면 인간은,
자연과 함께 지속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그 생명을 우주로 확산시키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디지털 기술이 어느새 인간을 능가하는 지적 능력을 갖게 되었듯,
우주개발도 어느 순간 우리를 화성으로,
그리고 더 먼 행성들로 실어 나르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지구의 생명체가 다른 행성에 정착하는 일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안에 현실이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따지고 보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
지구촌의 생명을 우주로 운반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신이 인간에게 그런 사명을 부여했다고 해도
그것은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기현의 말은 끊이질 않았다.

아마 수년 전만 해도 저런 이야기를 하면 금방 입막음을 당했을 것이다. 쓸데없는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이제 시대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일 만큼 성숙해야만 하는 시기인 듯싶다.


20대가 되어서도 유치원 아이처럼 생각을 하면 안되는 것처럼


이제 인류도 미숙아가 되지 않으려면 더 큰 비전과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기후행동은 바로 이러한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며

ESGG는 그 길을 향한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기현의 말이 멈췄다.


기현의 말이 끝나고 난 뒤에도, 방 안은 한동안 정적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색함이 아니라, 뭔가 조심스럽게 자리를 바꾸고 있는 ‘공기’였다.


나영

나영은 조용히 펜을 들고 메모장을 펼쳤다.
‘ESGG’라는 네 글자를 써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윤리란, 나를 넘어선 타자에 대한 책임입니다.”
강연자의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까지 나한테 윤리는 ‘도덕 점수’ 같은 거였는데…”

나영은 중얼거리듯 속으로 말했다.


“이건 그게 아니야.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생존의 방식이자 철학이야.”


그녀는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동안 자신의 냉소도, 판단도, 회피도
‘윤리’라는 단어 앞에서는 너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ESGG가 진짜라면… 이건 그냥 착한 사람이 되자는 얘기가 아니야.
지속가능하게 나를 살리는 방식이기도 하겠네.’


나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감성이 아니라, 이성적으로도 납득 가능한 가치라는 걸 느꼈다.


상범

그 반대편, 상범은 무거운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처음엔 ‘뭐 또 그럴싸한 말 하네’ 싶었지만,
기현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자연을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한마디가 그의 가슴에 둔탁하게 박혔다.


‘그래. 나도 내 평생 가족, 회사, 나라…
오직 사람만 바라보며 살았지.
나무 하나, 벌레 하나를 위해 뭘 해본 적 있었나…’


그는 마치 어딘 가에 빚을 지고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성공한 세대, 치열했던 세대라는 자부심 뒤에
처음으로 묵직한 책임감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는… 우리가 남겨야 할 게 다른 거겠구나.
이젠 “얼마 벌었냐” 말고, “무엇을 남겼냐”가 중요해지는 걸 느끼게 되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지윤을 바라봤다.
자신의 딸 세대가 만든 새로운 프레임.
그 안에 처음으로 존중의 마음이 생기고 있었다.


그날의 교육은 단지 수업이 아니었다.
그건 세대가 함께 ‘다시 시작하기로 약속한 하루’였고,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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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욕망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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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C(조각 탄소 크레딧)’라는 새로운 보상 구조가 주목을 받는다.

사람들의 실천은 ‘작은 탄소 단위’로 축적되고, 이것이 경제적 가치로 전환된다.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욕망의 방향’을 바꾸는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소유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기여를 위한 소비가 인정받는다.




며칠째 이어지던 비가 멈추고, 서울 하늘에 간만의 햇빛이 들었다.
지윤은 창문을 열어 습기 가득한 공기를 내보낸 뒤, 책상 위에 펼쳐둔 노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래전 적어둔 메모들을 다시 들여다봤다.
‘내가 바꾸고 싶은 것’, ‘작게 시작할 수 있는 것’, ‘나 혼자라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제, 그 아래에 단단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LeadXnow 캠페인
: 자발적 감축 목표(VDC)와 조각탄소 인증 시스템(MCI)을 기반으로,
개개인의 실천을 사회적 구조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시대의 시민 캠페인.


지윤은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노트의 다음 장에 차분히 개념들을 정리했다.


LeadXnow 캠페인의 3대 구조


- VDC (Voluntarily Determined Contribution)

자발적 감축 목표

시민 개인, 공동체, 기업, 지자체가 스스로 설정한 탄소 감축의 약속이자 방향.


- MCI (Mini Carbon Initiative)

조각탄소 인증 시스템.

일상의 작은 실천들을 과학적으로 측정·기록·인증하여

신뢰를 부여하는 메커니즘.

@ MCRD (Mini Carbon Reduction Design)

: 조각탄소감축계획. 감축 실천을 구조화하고,

디지털 기술을 통해 추적 가능한 계획으로 만드는 설계 틀.

@ MCC (Mini Carbon Credit)

: 조각탄소크레딧. 실천을 통해 감축된 탄소를 경제적 보상으로 전환하는 디지털 크레딧.


- ESGG (Ethical Sustainable Global Good)

지구적 윤리관에 따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지구적 선을 추구하는 삶의 프레임워크.

기후행동의 기술적·사회적 실천을 넘어, 인류의 철학적 성장을 지향하는 가치 기반.


LeadXnow 캠페인은 VDC와 MCI를 구조로 삼고, ESGG를 가치로 삼는다.


그날 오후, 서준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민지 할머니 마을에서 데이터 수신 테스트 했거든.
잠깐 들릴래?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지윤은 곧장 길을 나섰다.

서준은 성북동 공동체 창고 한편의 장비 앞에 그녀를 안내했다.


태블릿 화면에는 이런 수치들이 나타나 있었다.


잔반 감축량: 37.1kg

예측 탄소감축량: 76kg CO₂e

퇴비화 전환율: 64%

태양광 자가발전율: 18.3%


“측정되니까, 이게 진짜 일처럼 느껴지더라.”
서준의 말투엔 오랜만에 자긍심이 묻어났다.


지윤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도 넌 진심이었어.
이제 그 진심이 증명되기 시작한 거야.”


그날 밤, 네 사람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카페도 아니고, 강연장도 아닌, 지윤의 작은 방.
노트북 화면엔 ‘Greeners Plan v1.0’이라는 프로젝트보드가 떠 있었다.


“이제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
지윤은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바로 LeadXnow 캠페인이야.”


그녀는 손으로 플로우차트를 가리켰다.


1단계: VDC 등록 → 개인 또는 공동체가 목표 설정

2단계: MCI 연동 → 측정 가능한 실천을 등록

3단계: MCRD 설계 → 기술적 감축 계획을 구조화

4단계: MCC 발급 → 감축 성과를 크레딧으로 전환

5단계: ESGG 프레임 적용 → 삶의 지속 가능성과 지구적 선을 추구


진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버지 기술도 이 구조 안에 있었다면 훨씬 일찍 확산됐을 거야.”


나영은 날카롭게 정리했다.
“사람들은 결국 숫자를 보고 믿어.
데이터는 신뢰를 만들고, 신뢰는 행동을 연결시켜.”


지윤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제 우린 그냥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니야.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들,
리덱서(LeadXer)가 된 거야.”


그날 밤, 지윤은 LeadXnow 플랫폼에 짧은 글을 남겼다.

“진심은 구조가 될 수 있다.

구조는 신뢰를 만들고,

신뢰는 세상을 바꾼다.”


그 글 아래, 민지 할머니가 ‘좋아요’를 눌렀고,
진수가 만든 MCT 장비의 실시간 데이터가 댓글처럼 달렸다.
아이들이 그린 포스터 사진, “우리 마을 1톤 줄였어요!”라는 구호,
그리고 처음 MCC를 발급받은 마을의 탄소 저감 실적까지.


햇살은 창을 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서준은 조용히 창밖을 보며 말했다.


“이번엔… 진짜 뭔가 될지도 모르겠어.”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들은 단지 살아남으려는 세대가 아니었다.


전환을 시작한 세대,
LeadXnow 캠페인의 첫 설계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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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더 넓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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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Xnow의 VDC 등록 수와 MCI 실천 항목이 빠르게 증가한다.

중소기업과 지자체에서도 MCC 시스템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다.

기업, 지자체, 시민단체 관계자들과의 회의에서 다양한 시선이 부딪친다.

지윤은 MCRD 기술을 연결하며, 드디어 리드X나우가 지구적 전환의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음을 확신한다.



서울의 봄은 여전히 뿌연 황사로 뒤덮여 있었지만,
LeadXnow 캠페인의 움직임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지윤은 새벽부터 노트북을 켜고 데이터 보드를 열었다.
성북동 민지 마을을 시작으로,
대구의 한 고등학교,
제주의 사회적 협동조합,
부산의 택시 기사 커뮤니티까지.


단 3주 만에 VDC 등록 수는 432건,
MCI 연동 실천 항목은 2,100건을 넘어섰다.


지윤은 그 흐름을 ‘지도’ 위에 올려다보았다.
전국 각지에서 점처럼 찍히는 조각 실천들.
그러나 그 점들이 선으로 이어지고,
어느새 살아 있는 흐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업도, 따라오기 시작했어요.”


진수는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한 중소 제조기업이 우리 시스템에 관심을 보였어.
기숙사 생활 탄소 감축으로 MCC 받고 싶다더라.
지자체에서도 MCRD 설계 문의 들어왔고.”


서준이 놀라듯 물었다.
“진짜야? 그럼 기업도 이제 자발적으로 VDC를 설정하려는 거야?”

“응. ESG 평가 말고도, 시민한테 인정받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더라고.
‘시장’이 아니라 ‘사람’에게.”


나영의 의심, 그러나 다르게 피어나는 것

“근데 그만큼 관심 생기면, 따라오는 것도 있어.”
나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기업 CSR 부서, 정부 국책 사업 제안,
그리고… 그냥 겉핥기식 캠페인도 들어오고 있어.”


“그럼 막아야지.” 지윤이 말했다.
“이번엔 시스템이 있으니까.
누가 실천했는지, 뭘 줄였는지,
다 기록되고 인증되는 구조가 있어.”


“...그래, 그래서 이게 가능한지도 몰라.”
나영은 작게 미소 지었다.
“진짜로. 이번엔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가 우리를 지켜줄 것 같아.”


김태호와 상범의 실천

한편, 김태호는 성북구 시민센터에서
‘시니어 리덱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나이엔 뭘 하든 체력이 딸려.
근데 감축은 꼭 힘들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상범이 손을 들었다.
“난 집안 전등을 LED로 다 바꿨습니다.
전력 감축량 18%, MCC 신청도 했어요.”


뒤에서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기현이었다.
“시작한 우리가 계속 밀어줘야 해요.
세대 간 협력이 진짜 전환의 기반이니까요.”


SDX재단 회의실

회의실에는 낯선 얼굴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지윤, 진수, 나영, 서준 외에도
기업 CSR 부서 담당자, 시청 탄소관리과 팀장, 언론 출신 컨설턴트,
그리고 시민단체 활동가가 초대되었다.


“여러분의 캠페인,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CSR 담당자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MCC 기준이 너무 모호해요.
그냥 앱에 ‘잔반 안 남겼다’ 체크하면 감축인가요?”


진수가 재빨리 설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MCRD와 MCT를 통해 실천 데이터를 자동 기록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체크하는 게 아니라, 센서 기반의 측정입니다.”


시청 팀장이 끼어들었다.
“그건 시범단계에선 가능해도,
전체 시민 대상으로 확장하면 ‘측정 가능한 실천’만 인증해 주는 건
너무 벽이 높지 않겠습니까?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겨요.”


나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 기반 + 관계 기반’의 이중 구조를 제안합니다.
측정이 어렵다면 공동체 인증, VDC 커뮤니티 서명 등
신뢰 기반의 보완 장치를 운영할 수 있어요.”


조용히 듣고 있던 활동가가 낮게 말했다.
“과연 이 구조가 ‘진짜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탄소를 돈으로 보상한다는 건, 또 다른 시장 메커니즘 아닙니까?”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지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린 기후행동을 기업이나 정부에게만 맡기지 않기로 했어요.
개인의 실천이 무력하지 않도록,
사회적 구조로 엮는 거예요.
그것이 VDC의 시작이었어요.”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 말에는 책임이 있었다.


언론 보도

며칠 후, 지윤은 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


“탄소 감축, 개인 실천이 돈이 된다?”
새로운 캠페인 LeadXnow, 진정성인가 포장인가”


시민들의 ‘잔반 줄이기’, ‘계단 이용’, ‘전등 교체’ 등을 디지털로 측정해
탄소크레딧(MCC)을 주는 방식이 등장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민의 실천이 측정과 인증 중심으로 흘러가면
자칫 ‘감정 없는 탄소 경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캠페인을 주도한 이들은
“기후정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의 구조화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지윤은 기사를 읽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건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리더십이란 늘 시험을 거쳐야 한다.


다시 회의실, 그러나 분위기가 달라졌다

며칠 후 열린 두 번째 회의에서,
기업 담당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도 참여하겠습니다.
단, 내부 ESG 교육과 연계해 직원들의 VDC를 유도하고 싶어요.
보상은 MCC로 지급하되, 공동체 기금 형태로.”


시청 팀장도 말했다.
“우리 동네 구립도서관 두 곳이 먼저 시범사업 하겠다네요.
탄소 저감 캠페인을 LeadXnow 방식으로 해보겠답니다.”

지윤은 조용히 메모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말뿐이었지만, 이제 구조가 사람을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세네갈에서 온 한 통의 메일

그러던 어느 날, 지윤의 메일함에 낯선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세네갈 환경부 소속 NGO.
제목은 간결했다.


[Request] Local VDC Pilot in West Africa


지윤은 조용히 숨을 들이쉰 뒤, 메일을 열었다.
영문으로 적힌 내용의 시작은 이랬다.


“당신들의 캠페인을 보았습니다.
세네갈에는 수많은 폐플라스틱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옹벽 자재’로 재활용하는 기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는 이 기술을 세네갈에 도입하고,
그 공장을 직접 운영하길 희망합니다.”


지윤은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드디어… 더 넓은 지도가 열리고 있어.”

그녀는 곧장 MCRD 승인을 받은 웨스텍글로벌을 소개하는 메일을 회신했다.


회신 요약 (지윤의 메일 내용)

귀국에서 2025년 미국 에디슨 어워즈를 수상한
웨스텍글로벌의 폐플라스틱 옹벽 제조 기술을 도입할 경우,
세네갈에 쌓여 있는 폐플라스틱을 소각하지 않고
토목용 옹벽 자재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 공정을 통해 MCI 인증을 받을 수 있으며,
폐플라스틱 1톤을 소각하지 않으면
약 2.93톤의 탄소 감축 효과를 인정받게 됩니다.


옹벽 생산량이 곧 탄소크레딧(MCC)으로 연결되며,
이는 국제적으로 거래 가능한 탄소 자산이 됩니다.


공장 설립 비용을 세네갈 정부나 민간이 어느 정도 부담하느냐에 따라
탄소크레딧 배분 비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탄소크레딧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오히려 선 투자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세네갈 정부가 전액 투자하여
모든 탄소크레딧 수익을 확보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입니다.


요약본 보기


제11장. 가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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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C를 둘러싼 비공식 거래가 늘자, 정부는 통제를 시사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세네갈 정부와의 첫 국제회의에서 MCC의 가능성과 구조가 진지하게 논의된다.

MCC는 정부 중심의 거래가 아닌, 시민과 공동체의 자발적 감축 신뢰 구조로 설명된다.

서준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가 핵심”이라는 진수의 말에 깊은 동의를 느낀다.




지윤은 웨스텍글로벌의 답장을 받고
세네갈 정부와의 첫 온라인 미팅 일정을 확정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국내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터졌다.


정부의 입장 표명

환경부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급증하는 비공식 탄소크레딧 거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 인증을 받지 않은 MCC(조각탄소크레딧)가
일각에서 투기적 수단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향후 탄소 감축 인증은 정부의 통합 플랫폼으로 일원화될 예정입니다.”


지윤은 뉴스를 보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나영은 이를 “정부의 통제 욕구가 드러난 것”이라 분석했다.
“지금까지는 시민 실천이 별 영향 없다고 봤지만,
이젠 진짜 시장이 생기니까 불안해지는 거야.”


진수는 말했다.
“우린 '대안'이 아니라 '진입' 중이야.
그래서 이제, 시스템 안에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해.”


국제 실무 회의

장소: SDX 재단 서울 회의실, 줌 연결 –

세네갈 환경부, 현지 NGO, 웨스텍글로벌, 지윤 외 LeadXnow 실무팀


세네갈 정부 대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가 관심 있는 부분은 이 MCC라는 시스템이
향후 유럽 기후펀드, 혹은 국제 탄소시장에서
실질적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희가 공장 설립비용 전액을 부담할 수도 있습니다.”


지윤은 상대의 시선을 마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명확하게 말했다.


“현재 MCC는 VDC를 선언한 지자체, 기업, 개인 등
시민 주체가 자발적으로 구매하고 신뢰하는 탄소크레딧입니다.
아직은 정부 중심의 탄소시장과 다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SDX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MCC를 국가의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반영할 계획은 없습니다.
이 크레딧은 정부의 보고용 실적이 아니라,
시민과 공동체의 실천을 인증하는 사회적 신뢰의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어 나영이 명확하게 정리했다.


“다만, MCC는 투명한 데이터와 구조화된 감축 설계(MCRD)를 바탕으로
국제기구, 기후펀드, ESG 투자자들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신뢰가 축적된다면, MCC는 지구적 신뢰경제의 기반 토큰으로 작동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세네갈 NGO 담당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이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립형 시민 기후정책이 될 수 있다는 뜻이군요.”


국제 언론 보도

며칠 후, 프랑스 르몽드 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Mini Carbon, Mega Impact?
서울에서 시작된 기후 실천이 아프리카로 건너가다.”


시민 중심의 탄소 감축 캠페인 LeadXnow가
디지털 인증 기술과 실천 기반 크레딧 구조를 통해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과의 새로운 파트너십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기존 국제기구 중심 감축 구조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비공식 국제질서’의 전조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기술적 딜레마

한편, 서준은 웨스텍의 옹벽기술 데이터를 재가공하면서
기술의 한계와 윤리 문제에 직면했다.


“형, 이거… 너무 완벽해.
오히려 데이터 조작하려면 충분히 가능한 구조야.”


진수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건 결국 '누가, 왜,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야.
기술이 아니라 신뢰의 생태계를 만드는 게 핵심이지.”


선언의 시작

SDX재단은 LeadXnow 의 글로벌 커뮤니티 공식 출범 선언을 발표했다.
국가는 아직 침묵 중이었지만,
도시, 기업, 학교, 마을, 개인들이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국가를 넘어, 생태적 신뢰로 연결된
새로운 공동체를 실험하고자 합니다.”

지윤은 그 문구를 읽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이제 진짜, 구조가 문명이 되는 순간에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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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새로운 질서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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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은 UNFCCC 기후행동본부와의 화상회의에서 공식 COP33 초청 제안을 받는다.

SDX 재단은 긴급 원탁 회의를 열어 대응 전략을 논의한다.

“MCC는 시민 실천의 신뢰 토큰”이라는 지윤의 말에 모두 공감한다.

나영은 ‘정부와의 병행 구조’ 가능성을 제안하며 유연한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서울은 봄을 지나 여름 문턱에 들어서고 있었다.
지윤은 이른 아침부터 전 세계 커뮤니티 리더들과 화상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참석자 목록 맨 위에는 UNFCCC 산하 기후행동본부 프로그램 책임자의 이름이 있었다.


제도권의 손짓

회의가 시작되자, 유엔 기후행동본부 책임자가 정중히 말을 건넸다.


“우리는 LeadXnow 캠페인의 확산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탄소감축의 ‘시민기반 구조화’는 NDC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여러분의 MCC 모델을 제33차 기후총회(COP33) 공식 세션에 포함하고자 합니다.”


회의실 안에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수는 조용히 속삭였다.
“이건 기회이자 시험이야.
우리가 그 무대에 서면,
이제부터는 그냥 ‘운동’이 아니라 정치가 될 수도 있어.”


정부의 움직임과 위기감

한편, 대한민국 환경부는 MCC 관련 가이드라인 초안을 언론에 유출했다.

“탄소감축 실적은 국가 통합 감축시스템에 등록된 인증 방식만을 인정함.
자발적 감축(MCC 포함)은 NDC 보조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나
별도 유통·거래는 제한될 수 있음.”


이 뉴스는 언론과 시민 커뮤니티에 큰 충격을 주었다.

“결국 MCC도 국가가 가져가는 거야?”

“시민 실천이 또다시 흡수되는 거잖아.”

“LeadXnow는 다를 줄 알았는데…”


서준이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건 우리가 만든 신뢰를 **제도권이 ‘제도화’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는 거야.”
“이대로 가면, MCC는 또 하나의 국가 보고용 숫자로 전락해.”


전략 회의: LeadXnow 원탁

SDX 본부의 작은 회의실.
지윤, 나영, 진수, 서준, 그리고 SDX 이사장과 김태호가 모였다.


지윤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분명한 원칙을 가져야 해요.
MCC는 NDC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실천을 구조로 증명하는 사회적 약속이에요.”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 캠페인의 가치는
신뢰, 연결, 자율, 투명성, 그리고 ‘지속가능한 윤리성’이니까요.”


나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정부와 단절된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정부와의 '보완적 병행 구조'를 제안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해요.”


시민 선언문 채택

회의 끝, LeadXnow 팀은 내부 투표를 거쳐 시민 선언문 초안을 채택했다.


〈LeadXnow 선언문 발췌〉


“우리는 탄소 감축을 위한 기술이 아닌,
삶의 방식을 바꾸는 구조를 설계합니다.


MCC는 정부 보고용 데이터가 아니라,
시민의 실천을 기록한 신뢰의 토큰입니다.


우리는 정부와 협력할 수 있으나,
결코 시민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LeadXnow는 새로운 질서의 실험이며,
미래의 문명을 시민이 먼저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지윤의 초대장

며칠 후, 지윤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COP33 기획위원회.
초청의 메시지와 함께 적혀 있었다.


“당신의 팀은
‘지속가능한 시민 구조로서의 탄소경제’를 주제로
제33차 기후총회의 공식 세션 발표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지윤은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이제 문 앞에 섰다.
문 안으로 들어갈지는… 우리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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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우리는 설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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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다 방식”이라는 말 아래, 작은 실천을 구조화하는 흐름이 시작된다.

지역 VDC 실천 사례들이 각지에서 나타나고, MCC는 새로운 신뢰의 화폐가 된다.

청년 리덱서 포럼에서는 실천 사례들이 공유되며 연결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현서는 선언한다 — “우리는 감축자가 아니라, 전환의 설계자다. We are LeadXers.”



“이거 진짜 해보자.”


지윤의 말에 카페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녀 앞에는 유나, 민준, 현서가 앉아 있었다.

모두 진지한 표정이었다.


“VDC를 설정하는 건 어렵지 않아. 우리 각자 감축 목표를 정하고, 그걸 인증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돼.”

“근데... 우리 같은 대학생들이 뭘 얼마나 감축할 수 있을까?” 민준이 물었다.


“양보다 방식이야.” 현서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LeadXnow 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새로운 전환의 방식. 기존의 성과 경쟁이 아니라, 연결과 협력.”


유나는 노트북을 펼쳐 플랫폼 구상을 보여줬다.

My VDC, Our MCC’라는 슬로건이 화면에 떠 있었다.


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감축 목표는 곧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시작이야. 학교, 카페, 동네 가게들… 함께 연결되면, 우리도 MCI 인증을 받을 수 있어.”


그날 이후, 이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지윤은 자주 가는 카페에서 텀블러 사용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 민준은 자전거 커뮤니티를 통해 탄소감축 교통활동을 조직했다.
☑️ 유나는 VDC 등록 플랫폼을 디자인했고,
☑️ 현서는 데이터를 수집해 감축 효과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거 진짜 작동한다.” 유나가 말했다.
“지금까지 27명이 우리 플랫폼에서 VDC를 설정했어.”


처음엔 단순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의 변화가, 열 사람을 바꾸고,
작은 실천이 연결되어 탄소크레딧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만들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꾸는 실험의 시작이었다.

“지윤아!”


한결이 자전거를 타고 다가왔다. 요즘 그는 전철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이번 주 감축량이 3.7kg이래. 캠퍼스 교통 VDC 등록했어.”
그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지윤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 시작인 것 같아.”


오후에는 '청년 리덱서 포럼'이 열렸다.
서울, 대전, 전주, 부산… 각지에서 청년들이 모였다. 각자의 실천과 데이터를 공유하고, 연결 방식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학교 식당 잔반 줄이기 캠페인을 VDC로 등록했고, 잔반량을 매일 계량해서 MCC로 발급받았어요. 그 MCC를 지역 카페에서 디지털 할인쿠폰처럼 쓸 수 있게 만들었고요.” — 전주 팀


“저희는 회사 동료들과 출퇴근 카풀 네트워크를 구축했어요. MCC가 누적되면 팀 단위로 휴가 포인트를 지급하는 제도를 만들었죠.” — 서울 팀


지윤은 조용히 발표를 들으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정말, 여기저기에서 싹이 트고 있구나…’


그날 밤, 도서관 세미나실.
지윤, 한결, 유나, 현서는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유나는 ‘My VDC, Our MCC’라는 슬로건이 적힌 슬라이드를 꺼냈다.
현서는 자전거 이용, 중고물품 공유, 절식 식단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고, 민준은 지역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MCP 설계 초안을 그려오고 있었다.


“우리 실천이 하나씩 연결되면, 캠퍼스가 하나의 탄소 감축 커뮤니티가 될 수 있어.”
지윤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SDX재단은 다음 단계를 발표했다.


‘LeadXnow Awards’,

우수 VDC, MCT, MCRD 에 대한 시상


LeadXnow 캠페인 중에 실적이 우수한 지자체, 기관, 기업, 단체, 개인에 대한 시상을 한다는 발표였다.

이들에 대한 각 지의 후원이 이어졌다. 이제 기후행동은 경제의 중심 활동으로 자리잡아가는 중이었다.


지윤은 이 발표를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실천이 정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슬로건을 정리하던 순간.
현서는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탄소의 감축자가 아니라,
전환의 설계자다.
We are LeadXers.”


지윤은 조용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모든 시작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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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실천이 문명이 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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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속 수많은 불빛은 전국의 VDC, MCI, 리덱서를 상징한다.

카페, 동네 상점,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MCC에 참여하고 있다.

지윤과 친구들은 캠퍼스를 넘어 도시 생태 전환 설계자로 성장한다.

이건 더 이상 캠페인이 아니다 — 전환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며칠 뒤, ‘LeadXnow’ 공식 사이트에 새로운 지도가 올라왔다.
이름하여 “지구의 온기를 잇는 지도”.
지도 위에는 작은 불빛들이 켜져 있었다. 각 불빛은 하나의 VDC, 하나의 MCI, 하나의 리덱서를 뜻했다.


지윤은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확대했다.
서울, 제주, 광주, 청주… 낯선 동네의 이름 아래, “잔반 0 도전 프로젝트”, “무소유마켓”, “동네자전거 헬퍼스” 같은 프로젝트들이 떠 있었다.


그 빛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이거 보세요. 우리가 만든 MCP 파일럿 지역, 이번 주에 MCC 발행량 전국 1위예요.”
현서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카페 주인들이 먼저 MCC를 받겠다고 연락 오는 건 처음이야.” — 유나

“진짜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단계까지 온 거야.” — 민준

그들은 지금 한 캠퍼스가 아니라, 도시의 생태를 바꾸는 시스템 설계자가 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지윤은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었다.
TV에서는 ‘지방 소멸 위기 마을, MCC 활용해 관광과 교육 활성화’라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너희가 하는 그 리덱서 캠페인이냐?”
아버지의 물음에 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환경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지역 설계예요.
가치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사회요.”
지윤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조용히 밥을 뜨더니, 말했다.
“…아빠 세대가 만들어온 사회가, 참 많이 멈춰 있었구나.”


그리고 이내, 작게 덧붙였다.
“이젠 우리도 연결되어야겠지.”


며칠 후, LeadXnow 캠페인의 공식 슬로건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모든 작은 실천은 하나의 전환이다.”

당신의 VDC, 우리의 MCC. 함께 만드는 전환의 사회.


SNS에서, 지하철 광고에서, 대학 게시판과 지역 커뮤니티까지,
이제 ‘리덱서’라는 이름은 낯선 외침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캠페인 3개월 차.
SDX재단은 전국 100개 지역을 대상으로 MCI 리빙랩 확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역이 직접 탄소 감축을 설계하고, MCC로 보상과 권한을 얻는 구조.’


지윤과 친구들은 충청남도의 한 농촌 마을로 워크숍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녀는 한 사람을 다시 만났다.


성북동 마을의 미진이 할머니였다.
지윤은 놀란 얼굴로 다가갔다.
“할머니… 여기 계셨네요.”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그때 말했잖아.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고. 이젠 우리도 리덱서들이여.”


그녀의 등 뒤에는, MCC 인증을 받은 비닐하우스와 퇴비장을 자랑스럽게 안내하는 동네 아이들이 있었다.

지윤은 웃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건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야.
이건… 전환의 시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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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우리는 리덱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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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he LeadXers. Not followers of change. But the change itself.”

지윤은 창밖 봄비를 보며, 처음 VDC를 등록했던 날을 떠올린다.

작고 흔들리던 다짐은 수많은 사람의 실천과 연결되어 세대를 만들었다.

SDX재단은 “국가는 NDC를, 시민은 VDC를. 이제 세상은 리덱서에게 배운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서울에서, 툴루즈에서, 라고스에서, 제주에서
지구 곳곳의 화면들이 하나씩 연결됐다.
전 세계 리덱서들의 온라인 컨퍼런스.


SDX재단이 주최한 ‘LeadXnow 포럼’

하지만 이번엔 재단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각 지역의 시민 리덱서들이 무대에 섰다.


지윤은 연단에 섰다.
카메라 불빛, 화면 속 수백 개의 창,

그리고 저 멀리서 화면을 보고 있을 아직 리덱서가 되지 않은 누군가를

향해, 지윤은 차분히 말을 꺼냈다.


“우리는 탄소를 줄이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능성을 설계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삶을 바꾸는 감각,
타인의 실천에 응답하는 감정,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새로운 경제를 일으켰습니다.”


지윤의 말이 끝나자,
툴루즈의 프랑스 청년이 마이크를 들었다.
“우린 농촌 학교와 도시 청년을 MCC로 연결했어요.”
라고스에서는 청년 여성 리더가 말했다.
“생리용품 공유를 MCC로 바꾸고, 교육 권한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모두가 마지막에 외쳤다.


“We are the LeadXers.”
Not followers of change. But the change itself.”


그날 밤, 지윤은 노트북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봄비가 창틀을 두드렸다.
저 멀리, 그녀가 처음 VDC를 등록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 작고 흔들리던 다짐이
지금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실천과 연결되어
하나의 새로운 세대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SDX재단은 한 줄의 성명을 발표했다.


“세상은 행동하는 자들을 따라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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