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Xer, 리덱서 ; 대전환을 이끄는 자들
에어컨이 멈췄다.
편의점 냉장고는 따뜻한 공기를 뿜어내고,
지윤의 방 안은 그저 뜨겁고 끈적했다.
침대에 누운 채, 지윤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오늘 또 정전이래.”
누가 말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젠 정전이 뉴스도 아니다. 일상이다.
문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구조였다.
2024년에 누적 적자 200조 원을 돌파한 한국전력은 2026년, 적자 240조 원을 기록했다.
한전은 전력망 교체와 신규 송전선 건설에 손을 대지 못했고,
필요한 투자는 모두 예산에서 삭감되었다.
서울과 수도권은 전기의 90% 이상을 외부에서 끌어다 쓴다.
하지만 주요 송전선 대부분이 1990년대 건설된 노후 설비다.
몇몇 구간은 수명 초과 상태였고,
인근 주민들의 반대와 지자체 인허가 지연으로 인해
송전선 증설은 평균 5~6년씩 밀려 있었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늘었지만,
계통망은 그걸 받아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출력 제한, 병목 현상, 역류 사고…
그 모든 게 조용한 경고였고,
오늘, 그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서울 남부를 지나던 송전선 하나가 멈췄다.
그리고 수도권 14개 도시가 동시에 정전되었다.
지윤의 방도 어두워졌다.
모뎀이 꺼졌고, 냉장고는 멈췄다.
휴대폰 배터리는 17%.
뉴스는 이렇게 말했다.
“전력예비율 4.7%, 사상 최저치 기록”
“한전 누적적자 240조 원…설비투자 중단”
“송전계통 과부하…수도권 전력 순환 차단 조치”
지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린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그 누구도 이걸 멈추지 않는다.
이건 단순한 기후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의지해온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며칠 전, 친구 하나가 편의점 앞에서 폭행당했다.
“그냥… 누가 날 때리더라.”
이유 없는 분노가 거리에 넘치고 있었다.
친구들 단톡방에는 이상한 말들이 돌았다.
“불 지르자.”
“이젠 그냥 끝내고 싶다.”
누군가 툭 던진 말에 좋아요가 달렸다.
그 누구도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지윤은 조용히 휴대폰을 켜고 검색창에 입력했다
“기후위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텀블러, 걷기, 장바구니.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거야?
그 순간, 화면이 꺼졌다.
방 전체가 툭 하고 암흑에 잠겼다.
진짜 정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