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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진 Nov 22. 2018

구심력이 붕괴되는 사회

골프스윙에서 구심력과 원심력의 밸런스가 매우 중요하듯 우리 사회도 구심력과 원심력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구심력이 붕괴되고 있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추종하던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국가에 대한 애정도 시간이 갈수록 식어간다. 돈에 대한 맹신도 전반적으로 과거와 같지 않다. 종교와 정치 그리고 우리의 삶을 상당히 지배하던 교육에 대한 열정도 심하게 왜곡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사회주의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다. 이미 사회주의는 구심력을 잃은 지 오래다. 구심력이 붕괴되어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때 아쉬운 대안으로 등장을 하곤 하지만 그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구심력이 붕괴되면 원심력은 겉잡을 수 없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 와중에 방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회는 밸런스를 잃고 혼란스럽게 변화되고 만다.  요즘 미디어를 통해 비쳐지는 우리 사회의 단상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정규직은 늘린다는 것, 그리고 일자리에 매달리는 정부, 또한 출산율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정책 그리고 경제발전은 과연 우리 미래에 어떤 의미인지 그 구심력이 과거와 확연하게 다르게 다가온다.


과연 무엇이 이렇게 구심력을 잃게 만드는 것일까.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기술발전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뛰어넘고 있는 것도 그 원인 중에 하나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혁신적 기술은 새로운 용어를 쏟아내며 기존의 구심력을 방해한다. 그로인해 주거환경, 교육, 경제시스템등에 새로운 개념이 스며들고 있다.  주거환경에는 자급자족도시, 스마트시티, 메이커시티 등의 개념이 교육에는 원격교육, 자아실현교육, 멘토링 등 기존의 현실교육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들이 요구되고, 경제시스템은 공유경제, 구독경제, 토큰경제, 플랫폼 경제 등 새로운 형태로 진화되고 있다.  또한 블록체인 등의 기술로 인해 국가에 대한 개념도 새롭게 정의될 처지다. 이처럼 기존의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등의 우리 사회의 구심력으로 작용하던 모든 것들에 새로운 혁신이 스며들고 있다. 마치 낡고 쾌쾌한 창고 바닥에 낡은 카페트가 들쳐져 수많은 벌레들이 햇살에 노출되어 우왕 좌왕 살길을 찾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다.


햇살이 비친 창고를 새롭게 정리해야 하듯 새로운 구심력을 하루 빨리 만들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밸런스가 깨진채 중심을 잃고 쓰러질 지 모른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면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우리사회의 구심력이라 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은 과연 필요한 것인가? 인류가 창조한 로봇이 대신할 일을 인간이 기를 쓰고 하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그들이 대신하게 만든 인간의 욕망은 과연 어디로 향하는 것이었을까? 보다 자유스러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을 대신 하여 정규직은 로봇들이 대신하게 되지 않을까. 인간에게 진정으로 의미있는 삶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의 교육을 받은 우리 아이들은 10년 또는 20년 뒤에 급격히 성장해 있을 로봇들과 일자리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니 로봇이 대신하는 일을 인간이 빼앗는 것이 맞는 것인가. 지금의 공무원들이 20년 뒤에도 존재할 것인가.  지금의 삶의 방식은 과연 이대로 지속될 것인가 아니라면 대안은 무엇인가.  조금만 고민해 봐도 우리가 구심력을 바로 세우기 위해 던저야 할 질문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적어도 지금의 구심력은 아니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낡은 구심력으로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더 커져가는 원심력에 의해 붕괴될 지 모른다는 우려는 무시한 채 또 다른 원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북한은 또 다른 원심력에 불과하며 결코 구심력이 될 수 없다. 지금의 교육제도 역시 우리 사회를 미래로 이끌 구심력이 되지 못한다. 낡디 낡은 정치시스템도 미래의 구심력은 결코 아니다. 기존의 자본주의 사회주의도 이미 수명을 다한 구심력이다. 정말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바로 세워야 할 것은 앞으로 100년을 지탱할 새로운 구심력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더 단단하게 구심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다면 늘어나는 원심력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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