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만드는 '장리스트(Genreist)'들의 오래된 미래 복원
일론 머스크와 레이 커즈와일, 데미스 하사비스 등 당대의 미래학자와 혁신가들은
이르면 2026년, 늦어도 2030년경에는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범용 인공지능(AGI)이 출현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목하는 기술적 특이점의 핵심은 바로 기계적 연산에 스스로 사고를 검증하는 '회귀적 추론(Recursive Reasoning)' 능력과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감정 변수(Emotional Variables)'가 결합되는 순간입니다.
AI가 자신의 논리를 끊임없이 되짚어 오류를 수정하고, 감정적 기제를 통해 정보의 경중과 가치를 독자적으로 판단하게 될 때, 인공지능은 비로소 단순한 데이터의 처리를 넘어 인간을 압도하는 통찰과 판단력을 갖춘 실체가 될 것이라 합니다.
어찌 되든 10년 이내에 이런 AGI가 우리 곁에 다가왔을 때 인간은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학을 가려고 준비하는 학생이나. 취업을 앞 둔 청년들에게는 공포스러운 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 이제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굳이 주장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실 겁니다.
우리는 이제 스페셜리스트나 제네럴리스트가 아닌 '장르(Genre)'를 만드는 사람,
즉 '장리스트(Genreist)'가 되어야 합니다. 남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삶의 장르를 개척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 고유한 장르는 거창한 기획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작고, 사소하고, 때로는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디테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이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장 위대했던 스승들은 모두 시대를 앞서간 '장리스트'였습니다.
한국 불교의 거목이신 성철 스님을 기억하실 겁니다. 스님을 뵙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지식인과 권력자들에게 스님은 난해한 불교 철학을 설법하는 대신, 대뜸 "불전에 3천 배를 올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왜 하필 3천 배였을까요? AI라면 불교 경전 8만 대장경을 1초 만에 외우고 요약해 낼 것입니다.
이제 지식 차원에서 인간은 AI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이마를 대는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육체의 행위는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성철 스님은 가장 단순하고 반복적인 그 행위 속에, 나를 낮추고 세상을 모시는 '몸의 깨달음'이 있음을 아셨던 겁니다.
서양의 중세 수도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였습니다.
여기서의 '일'은 거창한 저술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마당을 쓸고, 텃밭을 가꾸고, 식사 준비를 하고, 낡은 가구를 고치는 '일상의 노동'이었습니다.
그들은 설거지하는 물소리에서 신의 음성을 들었고, 빵을 반죽하는 손길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찮은 잡일"이라며 피하던 그 일들 속에,
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거룩한 '살림(Salim)'의 원리가 숨어 있음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이제 다시 2026년의 우리를 봅니다.
'머니로직(Money Logic)'의 세상은 "청소는 로봇에게, 요리는 배달로, 생각은 AI에게 맡겨라. 그리고 너는 더 효율적으로 돈을 벌라."고 우리에게 주문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효율화하고 위임해 버린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능'을 잃어버린 인간은 결국 무기력해질 뿐입니다.
AI가 똑똑한 '스페셜리스트'이자 '제네럴리스트'가 되어 정답을 내놓는 시대.
우리는 오히려 저 옛날의 스승들처럼 '장리스트'로 돌아가야 합니다.
AI가 최적의 영양소를 계산할 때, 우리는 가족을 위해 따뜻한 밥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AI가 효율적인 도시 설계를 할 때, 우리는 집의 의미를 쌓아 가야 합니다.
성철 스님이 3천 배를 통해 수행했듯, 수도사들이 노동을 통해 기도했듯,
우리도 일상의 가치 노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는 'Deep Job'을 실천해야 합니다.
가장 사소해 보이는 일상에 지극한 정성을 쏟을 때,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장르(Genre)'가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멋진 아우라가 만들어 질 겁니다.
청소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사람, 돌봄을 통해 마을의 성자가 된 사람,
텃밭에서 우주의 원리를 발견한 사람.
우리는 이들을 '장리스트'라 부르지만, 세상은 이들을 '마스터(Master)'라 기억할 것입니다.
이들이 창조한 장르의 윤리적이고 독창적인 것들은
누구도 갖지 못한 독특한 가치가 되어 사람들이 찾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얻게 되는 돈과 명예는 '덤'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일상의 반복을 통해 충만한 삶을 잘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의미와 방향이 돈과 명예에서 지구적 선(Global Good)으로 바뀌게 되었을 때
우리의 성취는 바로 이렇게 '일상의 충만'에서 찾게 될 것입니다.
이제 거대한 것은 AI에게 맡기고, 가장 작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 삶을 만집시다.
홀로 마당을 쓰는 수행이 이웃의 마당과 이어질 때,
그 '잔잔한' 손길들이 모여, 골목의 문화가 되고 서로를 살리고 지구를 구하는 위대한 파도가 됩니다.
돈과 명예를 추앙하던 시대는 지나갑니다.
살림셀이라는 생존주권 단위에서 Deep Job을 통해 장리스트가 되는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기후위기, 양극화, 기술위협 등 다중위기를 동시에 이겨내는 새로운 리더들이 될 것입니다.
솔직히 인류는 육상생물의 86% 정도와 해양 생물의 91% 그리고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까지 최대 1조 종의 생명체를 존재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마치 지구의 점령자 처럼 군림하고 산 것이죠.
이제야 비로소 그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역량이 갖게 된 것인지 모릅니다.
AI 등의 기술이 장리스트들의 활동을 적극 도울 수 있겠죠.
우리 모두가 장리스트가 된다면 수십 억 종류의 새로운 장르가 탄생합니다.
이러한 장르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 Positive Sum의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머니로직으로 우리가 성장했다면 이제 살림로직으로 진정한 청지기의 삶을 살게 되는 세상이 오는 것입니다.
살림셀은 바로 그 청지기들의 베이스캠프가 될 것입니다.
>>>>> 살림셀 관련 정책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