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사 지킴이의 기도

나만의 선경을 공개하다

삼천사 지킴이의 기도

어김없이 우리 동네가 행락객, 등산객, 예불객들로 하루 온종일 몸살을 앓았다. 평시에도 이 곳을 구경하러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10월 들어 그 수가 몇 배는 증가한 듯싶다. 하지만 수효에 비해 인프라(주차장, 화장실, 음식점)가 부족하니 여기저기서 볼썽사나운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남의 집 대문 앞을 점령한 불법 주차 차량들, 공중 화장실마다 넘쳐나는 쓰레기들, 그리고 길 가의 오물들. 이면도로의 불법주차 줄은 진관사에서 우리 아파트 입구까지 500여 미터 이어져 이를 단속하는 구청 차량과 눈치싸움에 도로가 범벅이 되었다. 동네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편의시설 확보가 시급해 보이기도 하고 성숙한 시민의식도 너무나 절실해 보였다.

우리 동네도 완연한 가을의 중심에 섰다. 창만 열어젖히면 사시사철 북한산의 계절을 지켜볼 수 있어, 이 곳에 살고 있다는 행복감을 여기저기 자랑하느라 바쁘다. 한옥마을과 비벌리 힐스 촌을 구경하러 온 행락객들, 북한산 둘레길 9구간과 8구간을 걷는 등산객들, 기자촌~진관사~향로봉~
비봉~사모바위로 이어지는 등산코스를 오르는 등반객들이 수고를 마다하고 이 곳을 찾는다. 한옥마을과 진관사 입구에 당산나무 격인 22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이 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가장 예쁘게 물든 시기라 그런지 느티나무 앞에서 순번을 앞다투어가며 명품 사진부터 찍는다. 또한 눈호강시켜주는 북한산의 수려한 경관과 은은하게 울리는 진관사의 염불소리, 코를 자극하는 북한산 제빵소의 구수한 빵 굽는 냄새도 모두를 행복감에 빠지게 한다.

밀물처럼 밀려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이 곳의 익숙한 풍경을 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북한산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도록 허락해 주셨기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엔 남들이 잘 모르고 있는 기가 막힌 나만의 산책 코스가 있다. 지근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는 여기를 들르지 않고 그냥 돌아간다. 그간 우리 부모님께도 이 곳의 존재와 아름다움을 알려드리지 않았다. 평생 나만 간직하려 했다. 하지만 이젠 공유하려 한다. 여기를 공개하면 이 곳도 관광객들의 러쉬로 오염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성숙한 시민의식을 믿으며, 다 함께 이 곳의 수려함과 고즈넉함을 함께 맛보았으면 해서 오픈하고자 한다.

천 년 고찰 진관사 바로 옆엔 삼천사라는 절이 있다. 진관사에서 도보로 15분이면 갈 지척의 거리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절은 진관사처럼 비구니 스님들만 기거하는 기도도량이다. 진관사 진입 전 백초월 스님 비 앞에서 좌회전 후 삼천사 계곡을 따라 쭉 걸어 올라가면 된다. 길도 아주 평탄하다. 한 여름에도 울창한 산림이 산책길에 그늘을 제공해줘 상쾌하고, 우측으론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중간중간 사람 손을 탄 길냥이들이 요염하게 엎드려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는 웃지 못할 풍경도 목도할 수 있다. 삼천사 진입 전 조그마한 다리가 하나 나온다. 거기서 정면을 멀리 바라보면 우뚝 솟은 세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게 삼천사를 잉태한 삼각산이다. 계곡 속에 감춰진 삼각산과 삼천사가 이때부터 드러나니 그 아름다움을 과연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삼천사 경내에 들어서면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사찰의 규모도 작거니와 첩첩 산이 둘러싸고 계곡이 숨을 불어넣었기에 모든 소리가 이곳 삼천사에서 응축되어 스피커처럼 발산된다. 서두에 말했다시피 이 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어 바람소리, 새소리, 풍경소리 등을 자연 그대로의 ASMR로 들을 수 있다. 워낙 조용하다 보니 핸드폰은 반드시 무음으로 해야 하며 대화 또한 가급적 하지 않아야 태곳적 신비로움을 실 것 만끽할 수 있다. 맨 위쪽엔 보물 제657호, 총 높이 302cm, 불상 높이 259cm의 삼천사지 마애불 입상이 병풍바위 암석 표면에 새겨져 있는데 고려시대 때 부조된 걸로 알려져 있다. 인자하게 웃고 서 계시는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는 이 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덕과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있는 듯하다. 기도당 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삼천사 전경이 손 끝에 닿을 듯 깔려있고, 저 멀리에는 볼품 사나운 도시의 회색 건물이 새치머리처럼 돋아나 있다. 선경에서 바라보는 속세,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래도 될지 모르겠다. 오픈하는데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 이 곳은 사실 나처럼 마니아들만 아는 곳이다. 삼천사는 고요함과 그윽함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찰이다. 삼각산과 삼천사가 간직한 태곳적 신비로움은 말할 것도 없다. 나의 이 못난 설레발이 혹시나 못된 인간들로 인해 더럽혀지지는 않을까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하는 이유는 내가 느끼는 행복감과 평온함을 다른 이들과 모두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부디 삼천사지 마애불 입상의 부처님처럼 살아있는 부처 같은 분들만 오셔서 깨끗함과 온화함, 자비로움을 실 것 만끽하고 돌아가셨으면 한다. 그래서 그들이 이 사회에 일 푼이라도 공헌할 수 있다면 나의 선한 의도는 충분히 전달됐으리라 믿어본다. 삼천사 지킴이의 작은 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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