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종이 땡땡땡

33년만의 만남


할아버지 기일 1주기에 맞추어 또다시 찾아온 내 고향 순천!

황금들녘은 옷을 모두 벗었고, 감나무와 모과나무들은 비로소 짐을 내려놓았다. 반쯤 누워버린 억새 군락과, 이젠 벌떼들도 거들떠보지 않은 앙상한 코스모스들, 발갛게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만이 이 계절의 끝을 알려주고 있다. 각 집 대문앞마다 볕에 널어놓은 고추도 거의 다 건조되어 걷을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일찍이 제사준비를 마쳤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고요한 이 순간을 한없이 즐긴다. 동구 밖 도로위엔 간헐적으로 차가 지나 다니고 있고, 빨래줄 위엔 고추잠자리 두 마리가 앉아 날개를 접고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다. 때마침 첨산 아래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 시작종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온다. 땡~땡~땡~땡!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구나! 하나 둘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예배보러 길을 나서는 할머니들도 눈에 띈다.

눈을 가만히 감고 있으니 들려오는 종소리가 초등학교 시절로 나를 인도한다. 10리밖에 있는 별량 초등학교는 입학 후 4학년 5월 달까지 다녔던 나의 첫 모교이다. 수업시간 시작 전과 후에 울리던 종소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매번 정확했고 긴장감과 따뜻함을 주었다. 제 몸집보다 큰 책가방을 메고 매일같이 난, 이 거리를 왕복 2시간 넘게 걸어 다녔다. 같이 걸었던 유일한 마을 동갑네기 친구 대용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단짝이다.

'컹컹'! 누렁이 개가 대문 밖을 보고 짖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때마침 친척 한 분이 들어오신다. 대문 옆 기둥에 계속 묶여있는 누렁이 개는 사람만 보면 반가워 꼬리를 흔들며 짖어댄다. 바깥세상이 그리운 친구다. 행동반경 2미터 이내가 평생 누렁이의 삶터이다. 잠시 초등시절 생각에 빠져 있던 난 누렁이 개를 데리고 초등학교에 가보기로 결심한다. 나만 보면 데면데면하던 친구도 목줄을 풀고 긴 줄로 옮겨 타니 세상 신난 듯 기뻐 날뛴다. 가보자! 이게 몇 년 만인가?

11살 이후 30년도 훌쩍 넘게 흐른 듯싶다. 학교 가는 길은 너무도 많이 변해있었다. 신작로 도로 아래 논둑의 작은 흙 길은 우마차길 넓이로 확대 포장되었고, 개천을 건너던 삐걱삐걱 나무다리는 차량이 다니는 콘크리트 다리로 승진되었다. 농지도 반듯반듯 정리되어 당시 걷던 지름길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또한 지금 내 옆엔 대용이 대신 누렁이 개가 친구로 있지 않는가?

당시 왕복 2시간 거리도 둘에겐 길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특정 숫자를 정한 뒤 왕래하는 차량 넘버 숫자 많이 맞추기, 버려진 깡통/유리병 많이 찾아내기, 개구리 잡기등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놀이들을 하며 등하교를 했다. 열차 지나갈 때 철로에서 동전 펴기, 비닐 하우스 내 딸기/참외 서리, 뱀 잡아 죽이기 등 지금 생각해보면 실로 위험하고 어리석은 놀이들도 많았다. 몇 년 전 부턴 학교에서 스쿨버스를 운행하고 있다하니 후배들은 이런 추억거리들을 즐길 시간도 없을 거다.

초등학교는 별량 면사무소 뒤에 있다. 5일장이 섰던 별량 시장이 학교 앞에 있어 당시엔 사람들로 항상 붐볐다. 일부 건물이 증축되고 편의시설도 보강되었으며 도로도 새로 났지만 아직도 당시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교실, 강당, 운동장, 체육실/창고, 놀이터, 정원, 음료수취수대등 100년 역사의 학교는 현재의 35년 후배들에게 그대로 되물려 주고 있었다. 바뀐게 있다면 사람 구경 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조용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운동장에 섰다. 운동회 때 트랙을 돌며 계주를 달렸고, 공굴리기, 오자미던지기를 했으며 부채춤, 기마전, 줄다리기로 청군 백군하며 응원했던 곳이다. 물론 길고 지루했던 교장선생님 훈시를 들어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운동회는 지역주민들의 큰 행사 중 하나였다. 축제의 향연에 모두가 함께 즐기고 함께 뛰었으며 가족애를 더했다. 그렇게 넓디 넓었던 이곳이 지금은 내가 다녔던 곳이 아니었던 것처럼 너무나 작아져 있었다. 코흘리개 꼬맹이 녀석이 감당할 수 없었던 세월의 크기가 중년에 이른 나의 시선에 한참 줄어들어 있었다.

사열대 좌우측에 있는 이승복 동상과 책 읽는 소녀상이 그대로다. 소녀상 옆의 단군동상도 홍익인간의 정신을 아직도 전파하고 있었다. 화단 속 캥거루, 꽃사슴 동상도 반갑다. 내 사진첩 어딘가 꽃사슴위에 앉아 찍은 사진이 있을 테다. 교문우측 만원 지폐 속 인물 세종대왕도 늙지 않고 그대로 계셨다. 지각할 때마다 기합받고 두들겨 맞았던 사열대 계단은 아직도 보기 두렵다.

강당 옆 인도어 골프장 시설이 이채롭다. 골프선수들을 양성하는 듯싶다. 내가 다닐 땐 배구선수를 육성했었는데 스포츠도 시대의 주류를 따라가나보다. 소실적 배운 배구실력을 지금도 써먹고 있다고 하면 다들 믿지를 못한다. 문자 그대로 난 한 배구 한다. 어릴 적 우리 학교에서 육성된 배구 선수들이 실제 프로로 많이 진출했을 정도였으니까.

운동장과 교정, 건물곳곳의 흔적과 채취를 추적하며 1980년대 초반의 나를 쫒는다. 꽁꽁 숨은 녀석은 어디에서도 눈에 잘 띄질 않았다. 대용, 정미, 윤희, 숙현, 은정이 내 초등학교 친구들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냐? 세월은 끝내 아무도 내 눈앞에 내놓지 않았다. 건물 뒷편에 껴있는 이끼테 만이 그 세월의 나이를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이제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누렁이 개가 목줄을 버티며 교문 안에서 나오려하지 않는다. "그새 너도 학교가 정들었니? 나도 눈물 날 만큼 반가웠고 뭉클했단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다음에도 우리 꼭 다시 같이 찾아 오자꾸나" 한참을 버티던 녀석은 나의 이 말 한마디에 목줄의 힘을 풀었다.

교문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4학년 5월, 아름다운 교정을 뒤로하고 엄마손 잡고 순천으로 전학을 가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운 친구, 학교, 고향, 그리고 사랑하는 조부모님! 헤어지기 싫어 눈물을 삼키며 떠나온 그 길을 33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다시 걷고 있다. 당시 전학은 내게 있어 모든 걸 버리고 선택했었던 사랑했던 이들과의 첫 번째 이별이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첫 도전이었다. 나는 그러한 무수한 도전들을 이겨내고 지켜내어 너의 품에 다시 돌아왔던 것이었다.

늘상 시골에 와도 가보기 힘들었던 곳, 아니 기억 속에서 지워져 있던 곳, 여기 순천 별량초등학교! 어릴 적 왕복 2시간 걸렸던 등하교 거리는 오늘 1시간으로 좁혀져 있었다. 오랜만의 세상구경을 했던 누렁이 녀석에게도, 지난 초등시절을 소환시켜주었던 나에게도 포근했던 가을 나들이였다.

땡~땡~땡~땡!

지금은 비록 종소리가 멜로디음으로 바뀌었지만 내 맘 깊은 속 놋쇠음은 변치 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1학년 1반 교실에서 '학교종이 땡땡땡' 동요가 흘러나온다. 분필가루 날리는 교탁 위에서 풍금소리에 맞추어 땀 뻘뻘 흘리며 동요를 부르는 12번 서동필 꼬마 녀석의 얼굴은 이미 새빨개져 있다. 앞에서 60 여명의 친구들이 열심히 박수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창문 밖에서 지켜보는 나도 미소지으며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녀석은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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