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역사여행 6] 병천 아우내

3ㆍ1 운동 100주년, 그 길을 따라 함께 걷다

by 김하종

나홀로 역사여행 여섯 번째 시간,

오늘은 삼일절인 만큼

유관순 열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병천, 아우내로 한 번 가보겠습니다!

대한독립만세!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은
서울과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전국 7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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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는 평화적으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군인과 헌병경찰을 총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만세운동의 주체 세력 중 하나인

학생들의 손발을 묶으려 3월 10일 휴교령을 내리죠.


그렇게만 하면 잠잠해질 줄 알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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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관순은 3월 13일,

고향인 천안 병천으로 내려와

또 다른 만세운동을 준비합니다.

이런 수많은 유관순은 이 땅 곳곳에 있었습니다.



3월 3일 개성, 7일 철원, 8일 대구, 16일 가평,

4월 1일 천안, 4월 3일 남원 등등

1919년 당시 전국으로 퍼졌던 독립만세 시위 현황이다.

그렇게 5월 말까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제암리, 아우내 등등 읍내장터, 시골 마을 곳곳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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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지혈사(박은식)에 따르면

사망자는 7,509명. 부상자 15,961명. 체포/투옥자는 46,948명에 이릅니다.

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하느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 노래 대한이 살았다 中 -


그 참혹하고도 지독한 감옥 속에서
간절했던 그녀들의 기도를 떠올려 봅니다.


“나의 죽음으로 내 후대들은
우리의 말과 글로써,
반드시 자유로, 만세를 부르게 하소서.
그들을 용서는 하되 오늘을 잊지 말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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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땅과 하늘이, 우리의 말과 글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소서.”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스틸컷이다.




만세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3월 말, 4월 초였습니다.


3ㆍ1 운동 100주년이었던 2019년

한 해만큼은 3월 1일 하루가 아닌 그들이 걸었던

그 모든 시간을 함께 느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매봉교회 모습이다.

3월 13일,

유관순은 고향으로 내려와 서울의 일을 알리며

마을 어른들을 설득하였고

4월 1일 아우내 장날 만세운동을 결행하기로

결정하고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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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오늘 3월 22일 즈음에는

유관순의 생가 건넌방 안에서,

매봉교회 교당에서 한창 태극기를 만들며

기도하고 있었을 겁니다.

태극기를 만드는 모습이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 뒷산, 매봉산에 오르는 길이다.

거사 전날, 3월 31일 유관순은

마을 뒷산 매봉산에 올라

봉화를 올렸고 인근 산봉우리 24곳에서 호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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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거사 당일인 4월 1일,

유관순과 그의 동지들은 아우내 장터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숨겨둔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정오에는

유관순 열사가 장터 높은 곳에 올라가

독립을 호소하는 비장한 연설을 하자

3천여 명의 군중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이렇게 천안 최대의 만세운동,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은

기어이 실행되고야 말았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걸었던

그 일련의 길들을 따라 걸었습니다.

3월 31일, 유관순 열사가 걸었을 매봉산 산길이다.

덕분에 신발을 버려가며

계획에 없던 등산이 되어버렸지만

그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문득 떠오른 생각꾸러미들 때문에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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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 전날 매봉산에 올라 봉화를 피우고 아우내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날 아우내에서 죽어간 자들의
핏자국과 살아남은 자들의 피눈물을
매봉산 자락의 이 나무들은
전부 다 보았겠지요?


뭐 이런 생각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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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펄럭이는 태극기는

참으로 아름답더군요.


저 푸르른 하늘 아래, 태극기 앞에 부끄럽지 않기를..

유관순 사당 앞 펄럭이는 태극기
추모각과 초혼묘 사잇길 곳곳에 유관순 열사를 기리며 이화여고, 목천고, 병천고 후배들이 짓고 새긴 글


추모각과 초혼묘 사잇길 곳곳에 이화여고,

목천고, 병천고 후배들이

짓고 새긴 글들이 줄을 잇습니다.


차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그 비석들 모두를

사진에 담고

한 자 한 자 가슴에 되새기었습니다.




병천, 아우내. 두 물줄기가 하나 되어 만난다는 의미로 붙여진 마을 이름입니다.

병천, 아우내장터에 세워진 '아우내 지명비'이다.

저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잠시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우리 민족도 역사의 어느 줄기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3월 13일 유관순 열사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이화학당 동무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달리는 기차소리가 어찌 들리느냐고.

그이의 대답은 칙칙 폭폭도. 달그락 달그락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한독립 대한독립 어서 오소".



그이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어느 누구보다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달리는 기차소리에서마저 대한독립을

떠올릴 정도로 말입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KTX 안은 너무도 고요한 것이

한바탕 난리가 끝나고 깊게 숨을 고르는 듯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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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국권을 회복한 것에만 만족하며,

또 3ㆍ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겠다며

도처에 널린 문제들은 외면한 채

그렇게 그 기분에 도취된 채로 전국을 방랑하는

철없는 한 청년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천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꺼내어 읽었다.


1915년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를 펴내고

그다음은 그 날이 오면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광복사를 써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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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919년 거족적인 3ㆍ1 운동이 일어났죠.

이에 자극을 받은 박은식 선생은

1920년에 독립운동사를 쓰셨습니다.

그 책이 바로 한국독립운동 지혈사입니다.


광복사가 아닌 독립운동 사인 것에 아쉬워하였지만

조국독립은 반드시 올 것이라며 책의 서문을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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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00년이 지나 그의 피로 쓴 독립운동사는

우리에게 찬란히 빛나는 겨레의 '광복사'가 되었습니다.




3ㆍ1 운동 당시 청년들이 추구했던 시대정신이

자주독립과 민주국가 수립이었다면,


2021년의 청년들이 지금 이 순간 지녀야 할

시대정신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이 땅의 청년으로 태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독립운동가 '강우규 열사'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