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월 15일 새벽,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친구에게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 전교에서 1등을 하던 학생으로 당시 신문에 공개된 여학생의 유서는 입시 과열로 치닫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 참교육 운동의 모태가 되었죠.
친구 H에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2. 지금이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적 비관 자살은 아직도 존재하고,
학교는 아직까지 가기 싫은 곳이거나 오직 가야 하니까 가는 곳일 뿐이니까요. ⠀ 학생에게 교육과 배움은 사라졌고 남은 건 오직 입시뿐인 삶입니다.
그렇게 입시에 목을 맨 결과는 무엇인가요?
실패와 좌절 그리고 끊임없는 무한경쟁입니다. ⠀ 그나마 1980년대 후반은 '3저 호황'이 불러온 전례 없는 경제적 호황 국면과
그로부터 비롯된 산업구조ㆍ직업구조의 변화 속에서
대졸자 일자리가 크게 확대되었기에 "교육성공신화"는 가능했습니다. ⠀ 하지만 대학이 또는 공부가 우리의 성공(정확히는 소득)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교육성공신화"는 오로지 특수한 국면, 아주 제한적인 사회ㆍ경제적 조건에서만 가능합니다. ⠀ 실제 2000~2017년 사이, 신규 대졸자 취업률을 살펴보면
무려 7년은 50%대에 불과하고 최대치였을 때도 70%를 넘지 못했습니다.
또한 201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상당한 구직 기간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대졸자 10명 가운데 4명은 비정규직이었습니다. ⠀ 그리고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규 대졸자 10명 중 1명만이 정규직으로 취업합니다.
교육적 성취의 결과로써 응당 주어질 것이라 기대했던 '보상'은 실종되었고,
교육이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주리라는 교육의 오랜 '약속'은 이미 깨진 지 오래입니다. ⠀
"많은 국가의 교육 시스템이 정작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있게 하는 데 필요한 기술은 내팽개치고, 한 사람을 도구나 방해물이나 한 영혼으로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다."
- 마사 누스바움 -
3. 그래서 어쩌자고?
교육현장에서 무한경쟁으로 인해 무력하게 쓰러져가는 학생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 공정을 위해 무한경쟁을 정당화하고 경쟁을 위해 다시 공정을 강조하는 순환구조 속에서
정작 학생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진짜 중요한 질문들은 놓치고 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글
초ㆍ중등교육을 거쳐오면서 무한경쟁을 철저히 체화한 대학생의 수준은
"어느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글"에 적힌 고민과 생각보다도 못한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능력의 차이라기보다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탓일 겁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그이의 사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 최근 교육의 공정성 논쟁을 지켜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공공선에 대한 논의는 배제된 채로
알맹이 없는 껍데기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만 많아지는
경향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 정작 중요한 교육의 질에 대한 논의는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대학만 있고 대학교육은 없는 현실은 절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수시로 들어오든, 정시로 들어오든 무엇이 중요합니까?
'학문의 전당'이러던 대학이라는 공간의 실상은 너무도 초라한데 말입니다.
'공정'에 대한 논의만큼 '교육' 자체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됩니다.
교육은 오로지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이행과정이라는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고 전혀 새로운 판을 짜야할 때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30년 넘도록 변하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교육대학교 교육과정'과
공교육 교사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오로지 사교육 인강에 철저하게 의지한 채로
영혼 없이 치러내고 있는 '현행 임용고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무슨 공교육의 질을 얼마나 논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현행 임용고시 체제'는 정말 필요한 제도일까요?
그래도 그나마 '공정'한 시험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업과 평가가 일치되는 학습을 해본 적도 없고
과정 중심 평가를 받아본 적도 없는 예비교사들이
운빨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행 임용고시를 통과한다고
갑자기 뛰어난 수업, 평가능력이 갖춰지는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최근 2022 국가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논의가 한창입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예비교원들을 위한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는
항상 말만 무성하지 정작 실제로 바꾸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무려 지난 4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정말 좋은 교육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속 시원하게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역량이나 교육의 모습은
언제든지 빠르게 변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국가 교육과정이 수시로 개정된다고 한들
우리 사회가 변하는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사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급격한 사회변화를 그나마 최대한 보폭을 줄여가며 맞춰갈 수 있는 가능성은
현장에서 부단히 고민하고 학습하고 있는 교사들의 교육 실천에서 밖에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