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대 대학생 기후행동 Book Talk 1

<뜨거운 지구 열차를 멈추기 위해>를 읽고

by 김하종

아래의 내용은 춘천교대 대학생 기후행동 지부원들이

책을 읽고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하였습니다.


함께 책을 읽고 '미래를 위한 교육과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끼리만 나눴던 이야기가 아까워 조금씩 공유하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소감나누기 / 인상 깊었던 점


A : 환경교육 책이라고 해서 생태 이야기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목차부터 가치 중심 내용인 것이 좋았습니다. 생명과 생태, 공평과 정의, 나눔과 배려, 공감과 책임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세계 환경교육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 좋았고요. 비판적으로 느낀 것은 토론과제로 담아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교육을 어떻게 하지? 어떤 사례가 있지?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교육적으로 와 닿을 만한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에도 나라별 대표 사례만 엮었을 텐데 타국가에 비해 뒤쳐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B : 저는 책을 절반 정도 읽었습니다. 사례 하나하나 보는 것도 좋기는 했는데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어요. 그 공통점들이 인상 깊었는데요. 보면서 교육현장, 지역사회 공동체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들. 되게 보기 좋았어요. 공동체에 대한 믿음! 사람에 대한 믿음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서 믿음, 희망을 바라보고 공동체의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학습과 실천이 이루어졌을 때 교육효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세레스 공동체 환경공원 사례, 초반에 사람들이 황무지였던 땅을 연간 1달러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임대를 주고 결과물이 나오는 데까지 7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였다면 결과가 나오는 시간까지 기다려 줬을까? 그 가치를 지켰을 때 생기는 공동체의 자부심 등이 선순환을 일으켜 학습을 통해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학생들의 실천으로 이어져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C : 인상적인 문구가 133쪽에 있는데, 사람들이 지금 사는 것조차도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니까 시리아 난민을 생각할 여유가 없겠지만 이러한 문제가 무관심 속에서 더 심각해진다면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워크숍 했을 때 류기환 지부장(서울연합)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지부장의 자리를 결심하게 된 이유였어요. 누군가 내 목소리를 대신 내줄 거라는 생각으로 무관심하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대기행을 하는 이유와도 같다고요. 그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책 뒤쪽에 교육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독일에서 시티투어 과정에서 가이드가 게임을 해보자고 하면서 석유가 사용되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해보는 게임 사례가 인상 깊었어요. 여기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게임을 적용해서 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D :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지역의 자원들을 활용해서 기후위기 대비하는 모습 인상 깊어요. 예를 들면 83쪽, 여성들이 지역사회에 가장 오랜 시간 기여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교육하고 지식을 가지고 기후위기의 전사가 되도록 지원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춘천 사례는 막 와 닿지는 않았지만 자연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행동을 했구나 하는 정도? 춘천에서 기후 행동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예시를 찾았는데, 동물복지 학생들이 느껴볼 수 있게 했던 것들. 밀집사육이 동물에게 주는 스트레스 직접 느껴보도록 하는 직관적 방식. 실제 생활과 기후위기, 동물복지 개념이 멀지 않다는 것이 초등학생에게 효과적일 것 같아요.


토론 주제


1) 디지털 원격교육(에듀테크) “모두를 위한 교육”을 실현하는 데 바람직한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고 모든 사람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권을 실현하는데 디지털 에듀테크가 바람직한가?


A : 저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됐던데 예전에는 에듀테크가 어느 정도 공평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가 사는 곳은 서울이거나 춘천 도심이었고 다른 교외 지역 상황은 모르니까요. 더군다나 세계적으로 봤을 때 확실히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동화책을 하나 봤는데 스마트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린 아동의 노동 착취가 이뤄지는 이야기였어요.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교육을 받고 있겠지만 누군가는 노동착취 아래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을 실현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봐요.


B : 누구나 스마트 기기를 쓰고 있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는데 아직 이런 기기를 사용 못 해본, 접근하기 힘든 학생들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지? 원격 모니터링하자는 이야기도 나와요. 도움이 필요한 학교 서로 연결하고 물자/서비스 필요한 곳에 조달할 수 있게 모니터링하자고 하는데 모니터링한다고 해서 이게 해결방안이 될 수 있는 건가? 전기도 잘 안 들어올 수도 있고 유니세프 보면 물도 잘 못 마시는 상황에서 스마트기기 보급 모니터링이 근본 대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더 좋은 방안 생각이 안나기도 하고요.


C : 동의하고 코로나 사태만 봐도 선생님들이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원격수업이 학습격차를 심화시킨다. 코로나가 터지고 격차는 본인이 느끼기에도 심화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초등 저학년, 미취학 아동의 경우에는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발달격차가 생긴다는 거예요. 학습격차뿐만 아니라 그 나이에 사회생활을 통해 얻게 되는 발달단계에서 충분히 습득되지 않죠. 모두를 위한 교육을 실현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D : 코로나 19 이후 초등교육이 돌봄의 영역에서 다뤄지고 있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어요. 초등교사가 보육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죠. 식생활이나 아이들이 그 시절에 규칙적인 루틴 중요해요. 성인들도 규칙적 루틴이 깨지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데 아이들은 더 심해지죠. 부모님이 집에 계시거나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됩니다. 탄소배출 측면에서 에너지 구조의 근본적 변화 없이 IT기기를 무작정 보급한다는 것에도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요.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업은 모두가 나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세련되어 보이는 IT기업에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학습격차를 줄이기 위해 기기를 제공해주고 하는 것들이 근본적 대책 아니라고 봐요.


마지막으로 코로나 19 비대면 수업 _ 개개인 수준에 따라 교육할 수 있게 되었어요. 20명이 넘게 모인 교실에서 수업을 한다면 "얘들아 해봐~" 던져주고 일정 개수를 넘는 사람을 평가해왔지만 지금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인증숏밖에 할 수 없어서 각자 한 만큼 자율로 아이들에게 맡길 수 있어요. 기술의 발달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들의 학습 상황을 무조건 감시해야 한다는 등의 잘못된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해요.


B : 학교에 디지털 칠판이 도입되고 있어요. 대도시부터, 학교 현장에 도입할 때가 아니라 진짜 필요한 게 따로 있죠. 교육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 학급당 학생 수 등등.. 진짜 필요한 걸 제쳐두고 AI교육 4차 산업혁명 등 보여주기 식 변화만을 제공하고 있어 보여요. 차라리 교대에 도입하는 것이 더 좋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아이들의 발화에 따른 반응들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요. 아무리 학교 강의 때 수업시연을 해도 너무 모범생들이라 원하는 대답만 들을 수 있어서요.. 실습 한 번만 가도 학교 현장과는 많이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교사에 따른 아이들의 반응을 만들어서 교대 수업시연을 할 때 운영한다거나 그런 걸 해야 해요. 제일 좋은 건 실습을 늘리는 것이겠지만요.


C: 장애학생들에 대한 부분도 문제가 됩니다. 장애학생이 비대면으로 교육을 받는 게 어렵고, 모두를 위한 교육에서 장애 학생을 배제하고 생각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그 부분이 생각났습니다.


2) 모두에게 되도록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것, 소비자 운동에서부터 시작! 그렇다면 소비자 운동에 종착지(목표)는 어디가 되어야 할까요?


A :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면을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값싼 물건 만들어내는 현황을 직시해야 하죠. 이 부분을 보면서 LG 트윈타워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문제에도 불구하고 LG 주가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현실 생각났어요.


B: 소비자 운동이 우리가 원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를 이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비자들이 소비를 하지 말자, 사는데 정말 필요한 것만 사고 다양한 옷들을 사는 것들을 줄이면 기업/자본가들이 당장 이윤이 없어지잖아요. 거기서부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제 변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요. 사회적 문제로 이슈가 된다면 기업도 다른 이야기를 할 거예요.


C : 저는 생각이 달라요. 지금 기업의 구조들을 보면 실질적으로 물건을 팔아서 얻는 이윤보다 주식시장 안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이잖아요. 이재용이 5년 취업제한 판결을 받았지요. 하지만 5년 동안 취업이 제한된다고 해도 지금 가진 주식으로 돈을 더 벌면서 잘 먹고 잘 살 거예요. 불매운동이 이슈화가 되는 것은 물건을 사지 않는 것 그 자체의 중요성도 있지만 사회적 이슈를 띄우는 역할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의 의의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소비자임과 동시에 노동자인 만큼 물건을 생산하는 곳부터 탄소를 너무 많이 배출하고 있는데, 그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작은 소비자운동에서 시작하지만 근본적인 생산구조를 바꾸게 해야 해요.


D : 소비자가 불매운동을 하고 얻는 게 뭐지? 하는 생각을 해요. 안 사는 것도 좋지만 시스템을 바꾸는 것, 기업들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생각해요. 저번 세미나에서 노동과 자본주의의 체계 읽기 자료에서 지금은 내가 생산하는 물건을 내가 써보지도 못하고 노동소외 일어나고 있는데 불필요한 노동도 사라지다 보니 노동 가치도 올라가고 필요한 만큼만 일할 수 있다는 내용 읽었어요. 결국 노동소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들었습니다.


A : 전부 동의합니다. 소비자운동으로 (거대한 소비자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일회성이 아니라 문화로써 아예 같이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소비자운동 차원에서 그칠 경우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기업은 더 팔기 위해서 다른 방법 고민할 거예요. 소비 자본주의의 한계점이겠죠. 그래서 생산구조, 노동의 소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3) 제주도 선흘마을 생태관광 사례를 보고 춘천지역 적용방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춘천의 생태관광 / 생태교육자원은?


A : 강원도 해변이 많으니 해변을 활용하는 것 좋을 텐데 잘 활용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강릉의 안목 커피로드….ㅋㅋㅋㅋㅋㅋㅋㅋ 해변을 적극 활용하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해변을 따라서 가는 버스가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자주 오지는 않았죠. 있는 자원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 : 생태관광이 좋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어쨌든 생태관광이 여기에서는 잘 된 예시로 나와있고 자연을 보호하며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자연보호가 정말 잘 될까? 하는 생각이 듦 었어요. 사람이 오다 보면 오히려 자연보호가 어려울 것 같아서요. 앞에서도 독일의 뤼겐섬 나무 꼭대기 길을 보면서 저것도 아무리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자연을 파괴하는 느낌이 들어서 의문을 가지면서 봤어요.


C : 비슷한 느낌으로 여기에서는 덕분에 농업 중심이었던 산업구조가 상업, 숙박업 등으로 변화했다고 하는데, 결국 농업이 파괴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업이 등한시된다는 느낌? 완전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의 서술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게 가장 좋은데 사람 손길 닿는 게 좋은가..? 오히려 집집마다 텃밭을 가꾸는 건 어떨까요? 아스팔트와 벽돌들을 걷어내고 텃밭을 가꾸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화목원, 수목원, 산 찾아가는 게 우리 주변에 향유할만한 자연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걸 또 관광으로 이용한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자연은 누구의 소유인 가요? 그것을 보여주고 돈을 받는다는 것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D : 정말 동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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