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종 Dec 19. 2024

그 많던 풀빵은 어디로 갔을까?

청년 노동자 고 전태일 열사 54주기…청년 노동 현실은 아직도 암담


오는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 서거 54주기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1970년, 자신이 일하던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가슴에 품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던 청년 전태일의 절규는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하는 장면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 한 명이 심하게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병원에 보내기 위해 도움을 청하려고 했으나 알리지 말라고 애원하는 여공의 모습과 얼마 뒤 병에 걸린 여공이 해고된 걸 보았다. 이후 재단 보조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박봉에 시달리고, 분명한 산재이지만 일방적으로 부당해고 당하는 현실, 폐렴 등 여러 질병으로 시달리는 현실을 목도하고 보조 여공들을 돕는 것은 물론 그러한 노동 현실의 타파와 개선을 위한 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훗날 YH 사건에서 보듯이 당시 여공들은 제대로 된 대우는커녕 공순이 아니면 일련번호로 불릴 정도로 비참한 신세였지만, 그런 시대에서마저도 전태일은 여공들에게 자신의 차비를 아껴 풀빵을 사주고 도시락도 사주는 등 여공들을 자기 동생처럼 아꼈다. 매일 고단한 몸을 이끌고 걸어 다니면서 차비를 아껴 풀빵을 사다 주었던 그 정신은 수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었다.     


전태일 열사에 관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PD가 평화시장 근처의 감자탕집에 취재를 하러 갔던 일화다. 문득 그곳이 평화시장이니 감자탕집 할머니께 "혹시 전태일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진짜 단골이었다면서 여공들을 데리고 오면, 항상 자기는 안 먹고 여공들만 사줬다고 한다. 그래서 공짜로 줘봤는데도 안 먹더라는 것이다. 다음에 혼자 왔을 때 할머니는 “내가 너한테 돈 받을까 봐 안 먹었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전태일 열사의 답변이 "아이들한테 먹었다 그랬거든요."였다. 자기가 안 먹었다는 게 탄로가 날까 봐 먹었다 그러고 안 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54년 뒤, 시대는 변했지만 아직도 청년 노동의 현실은 쉽지 않다. 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아동학대 신고와 학부모 민원,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젊은 교사들이 목숨을 끊었고, 9급 공무원들이 박봉에 시달리는 현실을 ‘철밥통엔 밥이 비었다.’라는 표현으로 자조한다.”라며 “소위 안정적인 직업만을 찾아 헤매며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이젠 갈 길을 잃은 심정이다.”라고 토로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배달라이더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던 한 20대 청년은 “매일 배달 콜수를 올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라며 배달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호 위반은 물론이고, 역주행도 서슴지 않았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한창 바쁜 점심과 저녁 피크타임엔 일을 해야 해서 대부분 김밥이나 햄버거 따위를 오토바이 위에서 먹는 경우가 다반사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전태일의 모습은 어떻게 다가올지 물었다. “전태일은 훌륭하지만, 제 모습은 아니에요.”, “요즘 세상에 풀빵 하나 못 사 먹을 사람 없지만, 그 누구도 자기 풀빵 하나 남에게 베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자기 먹고 살기도 바쁘거든요.”라고 말하는 청년들은 “우리 사회가 풀빵이 넘치는 시대가 되었지만, 가져가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다.”라며 극단적인 양극화와 무한 경쟁 속에 놓인 처지를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전태일이 되기를 희망하는 청년들도 소수지만 있는 것 같다.”라며 “나밖에 모르게 만드는 비정한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소중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오는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기일에 맞춰 강원민주재단, 민주노총 춘천지역지부, 민주주의와 민생ㆍ사회공공성 실현을 위한 춘천공동행동이 공동 주최하여 저녁 7시 강원대학교 백령아트센터에서 ‘연극 전태일: 네 이름은 무엇이냐’을 상연할 예정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대학 내 공연장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만큼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고 노동자의 삶과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전했다.


https://www.chunsa.kr/news/articleView.html?idxno=622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