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부터 할 수 있는, 어른의 여유
나이가 들면 가리는 음식도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냄새만 맡아도 질색하던 청국장 냄새가 그립고, 삼겹살을 먹을 때 마늘이나 고추가 없으면 무언가 허전하기까지 합니다.
음식을 가리거나 편식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거나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는 음식인 경우는 피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못 먹지는 않지만 안 먹게 되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사실 눈 딱 감고 억지로 먹으라고 하면 먹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입에 대는 것조차 힘겹습니다.
대부분 이런 경우는 어렸을 때 좋지 않은 경험이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에요. 일종의 트라우마죠.
어렸을 땐 참 밥 먹이기 힘든 아이였어요. 할머니께서 집 앞 놀이터에 나와 간장으로 밥을 비벼 김과 함께 손수 먹여주어야 먹곤 했으니까요.
그날도 깨작거렸던 날이었나 봐요. 원래는 콩나물의 비릿한 향이 좋지 않았어요. 강한 고춧가루 양념이 들어간 무침 반찬이면 몰라도 콩나물국 못 먹겠더라고요.
그런데 그 순간 콩나물국이 머릿결을 타고 흘렀어요. 제대로 먹지 않는 제게 화가 나신 어머니께서 머리 위로 콩나물국을 부어버리셨어요. 병원에 가지 않았던 걸로 봐선 실제로 국이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이후로 콩나물국을 볼 때마다 머리가 화끈거려요. 속이 울렁거리고 도저히 입에 가져가기가 힘들죠. 아이들에게 좋은 식습관을 만들어 주는 방법은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맛있게 먹었던 경험이 누적되면 좋아하는 음식이 되니까요.
학교 다닐 때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단연 점심시간입니다. 등교할 때부터 오늘의 식단이 궁금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옥이 되기도 했어요. 급식지도라는 이름으로 식판을 검사하거나 남긴 음식을 억지로 먹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죠.
사실 우리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어른들의 잣대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아요. ‘남기지 말고 먹어’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닌 ‘왜 못 먹겠니?’라고 질문을 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어른이 된다는 건 먼저 물어봐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일이에요. 잠시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일이지요. 가끔은 정답을 알고 있더라도 말하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이야말로 진짜 어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