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 너머 찾아온 사랑

사랑에도 방법이 있을까요?

by 김하종

어차피 반복되는 삶의 끝에 내일이 없다는 생각이 매일매일 스스로를 짓누르는 날이 반복되었어요. 그러다 결국 베란다실 난간 위에 올랐죠.


난간에 올라 눈을 감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과연 누굴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어머니’였죠. 아파트 9층에서 떨어진 나의 모습을 가장 먼저 발견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어요. 적어도 그 모습만큼은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조용히 지하철에 몸을 실었어요. 목적지는 한강대교였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지하철 속에서 생각을 이어갔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누굴까?


당시 다리 위 자살 방지 문구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요. 그 순간 문득 깨달았죠. 난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요.


청소년기의 특징 중 하나는 심리적인 면에서 좌절과 불만이 잠재하고, 반항과 일탈을 서슴지 않으며 정서적인 동요가 심해 극단적인 생각과 과격한 감정을 잘 드러낸다는 거예요.


질풍노도의 시기는 청소년기가 거친 바람과 화난 파도처럼 변화가 심하고 불안한 시기임을 비유한 표현이죠. 가장 불안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몰라요. 누구나 한 번쯤 겪을지 모르는 인생의 고민 한 줄기가 나에겐 좀 일찍 찾아왔던 것 뿐이죠.


한창 자아를 찾아가던 시기, 더 이상 인생의 경로가 보이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던 그때, 운 좋게도 죽음의 문턱에서 그 너머 살며시 보이는 사랑을 찾았던 거예요. 그런 뒤로는 어머니의 잔소리와 핀잔이 사랑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죠. 물론 내색은 하지 않지만요. 그래도 모든 잔소리란 게 참 듣기 싫은 건 맞아요. 하지만 적어도 ‘나’를 포기하지 않을 힘이 생겼습니다.


오히려, 자식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어머니 당신의 삶이 안쓰러워졌어요. 어린 시절 외할머니를 일찍 여의고 동생들을 책임져야만 했기에 대학 진학은 생각도 할 겨를없이 상고에 진학해 돈을 벌기 시작해야 했어요.


스물넷의 나이에 첫째 아들을 낳고, 전라도 시골 청년을 따라 아무것도 없이 서울로 상경해야 했죠. 둘째 아들을 낳자마자 IMF의 풍파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고 돈이 생기면 본인 옷을 한 벌 사 입는 것보다 자식들 옷과 신발을 사다 주기 바빴어요. 없는 돈을 차곡차곡 모아 결국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얻었고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는 데 성공하셨죠.


누군가 내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세종대왕 이전에 나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라고 대답합니다. 서른 즈음에 돌이켜보면 과연 내가 스물넷의 나이에 아이를 낳고, 그 힘든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사실 자신이 없어요.


내가 결정하는 삶만큼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없어요. 사람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죠. 부모님 사회가 정해주는 인생의 방향에 맞춰가는 게 과거의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게 바람직한 시대입니다.


자기 삶의 주인 되려면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해요. 어머니의 어긋난 사랑, 과도한 관심과 간섭은 착하디착한 모범생에게 ‘나’를 잃어버리게 했지만, 결과적으론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안내한 계기가 되어주었죠.


AIDrawing_251007_37fd0bf0-d482-4df7-a86a-edb838ced70d_1_MiriCanvas.jpg


그럼,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독일 태생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주장합니다. 삶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기 때문에 지식과 노력이 요구되죠.


더구나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점이에요, 말로는 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반대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문제는 ‘사랑하는(Loving)’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받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에리히 프롬의 지적이죠.


이것은 성숙하지 못한 사랑과 성숙한 사랑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성숙하지 못한 사랑, 즉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라는 어린아이의 사랑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당신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기술을,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나이 들어서도 사랑의 기술을 익히고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어른일 것입니다. 꼰대가 되지 않고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확실한 것은 사람의 진심은 언젠가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가장 원망했던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죽음, 그 너머에서 찾았던 것처럼 말이죠. 인생길을 걷다 보니 유독 어머니와의 에피소드가 가장 많았던 건 아무래도 당신과의 추억이 가슴 속에 많이 남았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