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의 기억법

낭만은 젖은 채로 남는다

by 김하종

비는 늘 같은 방식으로 내리고,

헤어진 뒤의 나는 늘 같은 방식으로 젖는다.

우산을 펴도 가려지지 않는 이름을, 빗소리가 다시 데려온다.




나는 비를

우울이라 불렀다


회색의 무게가
어깨에 먼저 내려앉는 날씨


너는 비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낭만,
둘이면 충분한 날


우산 아래가 아니라
우산 밖에서
우리는 더 많이 웃었다


눈썹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툭, 떨어질 때



너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고
나는 그 말에
하루를 맡겼다


옷은 금방 젖고
마음은 늦게 젖었다


그래서 알게 됐다
함께라면
폭삭 젖어도
행복은 남는다는 걸


헤어진 뒤로
비는 늘 혼자 오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마다
너는 더 선명해지고
나는 더 조용히 무너진다


우산을 펴도
가려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비는 몸을 적시는 게 아니라
너를 한 번 더
내 안으로 데려온다


나는 비가 올 때마다
너에게서 돌아오지 못한 몸으로
조용히 젖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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