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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May 13. 2023

우리는 언제든지 포기해도 된다.

때로는 떠나는 것만이 가장 유일한 답인 거야.


우리는 배웠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라고.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어린 시절 나는 '포기'라는 걸 저지르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 고등학교로 교환학생을 갔었다. 공항을 나서 미국 땅을 처음 밟고 조심스레 고개를 들던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새하얀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던 눈 덮인 세상, 차가운 칼바람이 불었고 콧 속은 순간 얼었다.  


미국 생활은 첫 느낌대로 흘러갔다. 호스트 패밀리는 혜택을 받으려 교환학생을 들였기에, 그 집에서 나는 철저히 객식구로 방치됐다. 유학원은 거액의 돈만 챙길 줄 알았지, 어린 나는 챙기려 들지 않았다. 중학영어 수준의 영어만 구사하던 나는 미국에 온 첫 날부터 얼음 행성에 온 듯 덜덜 떨며 울었다. 


온갖 성추행, 인종차별, 눈칫밥을 버텨야 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떼를 부려 선택한 미국행이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버티고 또 버텨 계획된 1년이 지나고서야 한국에 돌아왔다. 잘한 선택이었다 생각했고, 다 잊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심리상담센터에 앉아있던 27살의 나는 17살의 어린 내가 미국에서 겪었던 수모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잘못된 선택이라는 건 없지만 더 나은 선택은 있다. 17살의 내가 했어야 할 선택은 '포기'였다. 1년 간 좋은 추억들도 있었지만 슬픈 기억이 더 많았기에. 마음의 상처는 꽤 치유하기 힘들다는 걸 알기에. 17살의 내가 그때 미국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걸 갖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1년을 버텨 돌아온 한국 고등학교에서 '복학생'이 되었고, 또래 친구들과 동등하게 보낼 수 있었던 학창시절을 잃었다. 가족들은 내가 미국에 있는 시간동안 내 걱정으로 잠 한숨 편히 자지 못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그렇게 때로는 무언가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포기는 비겁한 행동이 아닌 강인한 행동인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 나약한 행동인 것이지, 해보고 포기하는 것은 용감한 행동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든지 포기해도 된다. 도망쳐도 된다. 때로는 도망친 곳에서 낙원까진 아니겠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이 바라보는 풍경이 지옥같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이제 때가 온 것이다. 인생에서 포기라는 단어를 배추 셀 때 말고도 사용할 때가.


Sometimes giving up is the strong thing
때로는 포기하는 게 가장 강인한 행동인 거야.
Sometimes to run is the brave thing
때로는 도망치는 게 가장 용감한 행동인 거야.
Some time walking out is the one thing
때로는 떠나는 것만이 가장 유일한 답인 거야.
That will find you the right thing 
진정 원하는 것이 뭔지 찾게 될 유일한 답 말이야.

Taylor swift, It's time to go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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