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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May 15. 2023

빨리 날씬해지고 부자가 되고 싶은 우리에게

우리에게는 빨리 날씬해지거나 부자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씨를 뿌렸다. 하룻밤이 지났다. 나무가 되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새싹이 움을 트고, 줄기가 올라오고, 잎들이 자라나고,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지고. 그런 시간들이 있어야만 나무가 되는 것일 텐데 하룻밤 만에 나무가 된다니 의심스럽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는 예상외로 쉽게 속는다. 2주 만에 10kg 감량하기, 3개월 만에 1억 벌기 등등 의심해야 마땅할 결과물에 대해서 의심하지 못한다. 인터넷 세상은 이렇게 주렁주렁 열매가 맺힌 자신의 나무를 자랑하는 사람들로만 가득해서, "하룻밤 만에 나무가 자랐다!"라는 신화가 현실이 되는 곳이니까.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취급을 받게 된다.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가 되고, 열심히 일하며 한 달에 세후 200을 버는 것이 놀림감이 된다. 가끔 늦잠도 자고, 운동을 빼먹기도 하고, 마라탕에 중국 당면 넣어 먹는 건 커다란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일이 되었다.


우리는 조급함,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달리고 달려보지만, 꽃봉오리 조차 틔우지 못한 자신의 나무를 보고 번아웃과 공황, 불안 증상에 시달릴 뿐이었다. 무엇이든지 빨리 결과를 보아야 더 가치가 크다는 인식이 세상에 당연해지면서 우리의 나무가 병들어 버렸다. 


우종용 작가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는 회양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 높이 자라서 멋진 그늘을 만드는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 하지만 빨리 자라서 크게 가지를 뻗는 속성수일수록 그 속은 단단하지 못하다. 성장하고 꽃피우는 데 모든 것을 소모한 나머지 내실을 다질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런 나무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몰라도 생명이 다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회양목은 나무의 직경이 한 뼘 정도 되려면 최소 5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나무라고 한다. 대신 그 속은 긴 시간 동안 단단해져, 도장으로 쓰일 정도의 훌륭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나무가 회양목인 것이다. 단단해지기 전에는 잘 다듬어진 모습으로 정원의 조경 역할을 톡톡히 한다.


느림은 게으름과 나태함이 아니다. 빨리빨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 오히려 속도를 잃고 무기력에 빠져버린다. 이유 없이 힘들고 지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룻밤 만에 나무가 자라는 가상현실을 벗어나야 한다. 지금, 여기로 돌아와 하루하루 조금씩 나무가 자라는 이곳에서 느림이 주는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느림은 여유있고 단단하다. 서두르지 않고 깊숙한 곳까지 뿌리를 내리며, 불필요한 수분에 매달리지 않고 내면의 힘을 강하게 결속시킨다. 또한 느림은 침착하고 집중한다. 싹을 틔워내야 할 때는 온 힘을 다하고, 에너지를 비축해야 할 때는 모든 잎을 버린다. 


자연은 늘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빨리 날씬해지거나 부자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걸. 무엇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우리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깊숙이 뿌리를 내린다면, 다른 사람들의 영웅담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유행하는 드라마는 꼭 챙겨 봐야 하고, 인스타에 올라오는 맛집은 꼭 가봐야 하고, PT나 필라테스 중에 하나는 꼭 해야 하고, 가끔 와인바나 오마카세도 가줘야 한다는 마음은 어쩌면 텅 빈 내면에서 오는 두려움이 아닐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안다면, 화려하진 않아도 단단한 내가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내가 처한 상황을 바꾸기 힘들다고 느껴질 수도, 이미 많이 지치고 힘에 부쳐 어쩔 줄 모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우리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선택하자.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넷플릭스를 해지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시를 넷플릭스로 들었을 뿐, 습관적으로 보던 디지털 기기와 멀어져보자. 


우리는 절약된 시간에 휴식을 취할 수도, 방정리를 할 수도 있다. 산책을 가도 좋고, 독서도 좋은 선택이다. 그리고 하루 10분은 모든 집중력을 발휘해서 원하는 삶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자기 계발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진정 내가 원하는 삶으로 향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동을 해보자. 


매일 10분이 별 볼일 없는 작은 노력처럼 보이지만, 일주일이 쌓이면 한 시간이 된다. 그런 노력들이 쌓이면 하루 10분이 어렵지 않게 하루 1시간으로 바뀌게 된다. 단지 우리는 넷플릭스를 해지했을 뿐인데, 취직을 할 수도 이직을 할 수도 독립을 할 수도 책을 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저 낙엽을 떨궈내고 겨울을 버틴 나무들이 봄이면 꽃을 피워내듯, 우리도 그렇게 버려야만 가능한 일들이 있는 거니까. 봄이 오고 원하는 삶을 살게 됐을 때 넷플릭스를 다시 구독하면 된다. 그런데 그때가 오면 넷플릭스보다 더 재밌는 일들이 생겨 굳이 구독할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 아, 넷플릭스 주식 팔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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