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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센티한 새벽에 쓰는 일기와 같다. 두괄식으로 적자면, 세상을 안다고 생각해서 세상을 떠나고 싶은 적이 있었고, 세상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니 겸손을 배우는 입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친한 지인에게 배신당했을 때 번개탄을 1박스 산 적이 있다. 1박스나 산 이유는 그리 비싸기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알루미늄인지 철인지 모를 번개탄 피우는 그릇(?)도 함께. 그걸 3년간 가지고 있다가 버리면서 바닥에 검댕이가 떨어지고 닦으면 까맣게 번져서 많이 힘들었었다. 오래된 이야기다.
자살을 하던 뭐던 배우고 또 알아야 피해를 주지 않는다. 자살을 할 때 투신을 하면 안 된다.
절친한 경찰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살을 해도 조사를 해야 하니, 자살 용도로 구입한 영수증과 유서를 꼭 같이 놔두라고 했다. 역시 친구는 친구구나 하면서도 궁금한 사안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니 참 고마웠다.
그리고 자살의 이유를 알고 싶어 조사하다 보니, 여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정신과 상담과 심리 상담을 거쳐 자살 충동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았다. 수 백개의 문항과 질문을 합치면 천 단위가 넘어갈 것이다. 거기서 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정상인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생각을 실천하느냐 마느냐에 있다.
여러 가지를 털어놓으며, 대상인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정상이라고 했다. 그 정도 일을 겪고 그런 마음이 안 드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하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면 범죄자가 되고, 생각만 하면 일반인으로 살 수 있다고 했다. 지극히 논리적인 말이었다. 나에게는 이룬 가족이 있었다. 상담을 거치며, 가족이 있음에도 나를 이용하고 배신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생을 마감하려는 생각을 가진 내가 참 부끄러웠다. 그러나 마음이 가라앉아지지 진 않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내부고발 포함해서 정말 다양한 일을 해 나갔다. 일을 해 나갈수록 좌절감을 느끼는 상황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래도 자살하겠다는 생각은 확연히 줄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나의 정신이 단단해져서가 아니었다. 몸이 많이, 그리고 계속 아프고 아파졌기 때문에 어차피 늙으면 죽는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우주가 있다는 것을 안 지금은 사실 전생 이야기에 큰 흥미는 없다. 다만, 매 순간 느끼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자살도 틀렸고, 죽음에 대한 생각도 틀렸다. 살아보니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배운 것과 다른 것이 너무도 많았다. 아니, 어찌 보면 왕이 왕을 죽이고 수많은 전쟁의 기록이 쓰인 역사서를 내가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만 해도 왕은 1명이었고, 나머지는 왕이 똥을 누는대도 보고 있어야 했고, 누군가는 대신 똥을 닦아 주어야 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 현대의 모습이 크게 다를 바 없다. 사극을 보며 재미있는 부분, 연애하는 부분만 보는 편협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트루먼쇼의 현실판일지도 모른다.
심각한 생각을 하다가도 아이들과 놀아줄 때면,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그리고 나의 생각들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냥 꿈만 꾸며 살다 가도 더 잘 사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이 또 추정한 것이 수 없이 틀릴 때 나는 겸손함을 배운다. 내 분야에서는 배우기 힘들다. 그래서 내 분야를 벗어나서 배우고 그것을 내 분야에 적용해 보니 삶이 생각보다 많이 편해졌다. 겸손의 반대가 경솔은 아니겠으나, 그런 상태인 경우 사람을 이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겸손을 배운 이후에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하려고 한다. 물론, 그것도 일부이긴 하지만 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 겸손을 다 배우지는 못했다. 다만, 행동을 유사하게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눈치는 가지게 된 것 같다.
돈이 된다고 해서 겸손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겸손을 배우는데 돈이 든다고 한다면
10억 정도
로 책정하고 싶다. 실제로 내가 손해 보고 쓴 돈을 환산했을 때 이 정도 되고 또 외우기도 쉬운 단위다. 그 상황에서 좀 더 겸손했다면, 내가 이 돈을 잃지 않았겠지 하고 하나하나 계산해 보았다. 지난 결정들을 보면, 세상을 안다고 생각해서 독단적인 부분이 많았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다가 끊으며 담배의 심각성을 알지만, 누군가는 한 번도 안 펴보고도 안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그냥 삶 자체가 겸손한 사람은 이미 10억을 번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10억은 단순히 은행에 쌓여 있는 돈이 아니라 옷이나 액세서리처럼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라 쉽게 보인다. 아무리 명품을 둘러도 10억을 몸에 차고, 두르고, 들고 있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일상에서 말이다.
그리고 겸손과 글을 좋아하는 것은 비례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강패나 조폭, 양아치 혹은 몸에 위협용 문신 두르고, 스포츠카, 집, 명품 자랑하는 사람과 활자가 가까운 것은 상상이 안 가기 때문이다. 겸손은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르지만 글을 가까이 함으로써도 터득이 가능한 이유가 되겠다.
나는 프로젝트를 하며,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뭔가가 되었기 때문에 겸손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겸손은 팀을 이룬다면,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베이스가 되기 때문에 겸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더라도, 또 언젠가 돈을 많이 잃더라도 겸손을 잃지 않았다면, 10억은 늘 들고 있는 셈이라고 전해주고 싶다. 블록체인과 코인 분야에 있다 보니 돈으로 환산하는 습관이 된 것 같은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특성 같기도 하다. 다만,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돈과 관련되지 않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최대한 돈 이야기는 안 하려고 한다. 어느 정도 뭔가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돈 이야기는, 그 대화 주제 자체가 겸손과 거리가 있어진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배울게 참 많다. 나도 언젠가는 겸손을 배워 10억을 두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