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연구일지 12

16년 04월 19일

by hakaw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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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길 따라가다 보면 언덕이 나오는데, 그 언덕이 생각보다 경사가 높아 숨이 가빠온다. 함께 간 친구와 이야기를 중단할 만큼 힘든 경사를 올라서서 다시 한참을 헤맨다. 골목길 따라 들어가면 자취방인지 시장촌인지, 힘겹게 살았던 흔적 사이에 너무나도 어색한 카페 '오랑 오랑'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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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오랑 오랑'의 이색적인 분위기는 로스팅하는 기계도, 블랜딩도 드립 하는 관경도 아니고 친절하고 자상해 보이시는 사장님도 아니다. 그저 투박함 아무것도 꾸미지 않았는데 묘하게 이쁜 분위기가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많은 카페들이 도색을 하지 않거나 인테리어 콘셉트를 투박하게 잡을 수 있지만, 여긴 그런 생각조차 안 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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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시선은 책, 책 조차 가지런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올려놓았지만 그마저 뭔가 계획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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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벽에서 카페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는 오디오가 있다. CD 플레이로 돌아가는데, 아무래도 MP3보단 음질이 좋아 보인다. 깔끔하고 세련된 피아노 소리가 빨리 커피 한잔 마시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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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선의 사진이다. 의자도, 탁자도 냥 네모네모 하다. 탁자를 세우면 스탠딩 바가 될 것 같고, 의자는 키에 앉은 키에 맞춰 세우든 눞이든 앉으면 된다. 무엇보다 위치도 손님이 계속 앉아 있는 듯 그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엔트로피와 예술"에서 혼돈 속에 질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지금 딱 그런 분위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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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문한 건 코스타리카 따라주 핸드드립. 싱글 오리진으로 마셨다. 사장님께서 바에 계시는 손님과 이야기하느라 커피를 만들 생각을 안 하셔서 서비스로 티라미수 케이크를 받았다. 지금까지 먹어본 티라미수 중에 최고인 맛이었다. 부드럽고 살살 녹는 치즈 휘핑크림을 지나 달달한 빵 부분까지 도착해 초코 가루를 함께 긁어 머금어 한입에 넣으니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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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지도 보고 찾아가기도 힘든 곳이고, 그래서 정말 조용하게 수다를 즐기고 싶은 친구가 생겼을 때 또 가보고 싶다. 나처럼 애연가라면 옥상에서 달빛과 별빛 보며 한 껏 들이마시겠지. 튜닝의 끝은 순정이다. 때론 아무것도 건들지 않은 순수함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 이곳은 그런 곳이고 앞으로도 그럴 곳이 될 것 같다. 부디 오랫동안 적당히 사람 손 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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