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오고 나서 처음 월세가 아닌 전세로 계약한 집이 지금의 망원동 반지하방이다. ‘반지하’여서 전세로 계약할 수 있었겠지 싶겠지만 그 당시 부동산 시세로 반지하임에도 1억 원이었다. 말하자면 망원동은 내가 들어올 수 있는 동네가 아니었다.
“학준아, 니 혹시 반지하라도 괜찮나?”
이사가 필요하던 시기에 상분이 누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서울에서 알게 됐지만 둘 다 고향이 같아서 더욱더 친해진 누나. 누나는 본인이 소유주인 건물에 반지하방이 나왔는데 너만 괜찮으면 리모델링까지 해줄 테니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지하방밖에 보여줄 수 없는 지금을 누나는 되레 미안해하기까지 했다. 나는 가보았더니 생각보다 층고가 높고, 또 시세보다 훨씬 싸게 들어올 수 있어서 입주를 결심하게 됐다.
원래도 누나는 서울 다른 곳에서 살았지만 내가 입주할 즈음 육아를 위해 더 멀리 고향으로 내려갔다. 가기 전에 부탁 한 가지를 남겼는데 다름이 아닌 건물과 담벼락 사이에 고양이 사료를 자주 뿌려달란 거였다. 우리 건물 바로 곁엔 사람 키만 한 담이 하나 서 있다. 건물과의 거리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데, 거기에 사료를 뿌려놓지 않으면 망원동에 많은 길고양이들이 하나둘씩 화장실로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그랬다.* 듣고 보니까 누나의 부탁은, 길고양이들을 위한 일이자 반지하에서 살게 될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내 방 창문을 열면 바로 담벼락이고, 고양이들로부터 피해를 입더라도 내가 가장 빨리 입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신발장 근처엔 그래서 항상 고양이 사료 포대가 놓여 있다. 5kg 한 포대를 다 비우고 벌써 두 번째이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다. 한 날은 매캐한 냄새가 올라와 창밖을 내다봤더니, 누나가 예고한 것대로 어질러진 바깥. 나는 장갑과 마스크를 낀 채로 담벼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길고양이들의 화장실을 없애야 했다. 여행을 갈 때면 절대 마음이 안 놓였다. 내가 집을 비우는 사이 녀석들이 창문 밖을 화장실로 만들어 놓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잔디를 심듯 촘촘히 사료를 뿌려 놓고 떠나는 일밖에 없었다. 녀석들을 챙겨주고 싶어도 챙겨 줄 수 없는 경우도 생겨났다. 바로 요즘 같은 장마철에 말이다. 한 움큼씩 쥐고 창밖에다 사료를 던져 보지만 곧바로 비 맞아버린 사료를 녀석들이 먹으러 오진 않는다. 그치지 않는 장맛비를 바라보며 혹시나 배를 곯고 있지는 않나 녀석들을 걱정해야만 했다. 처음엔 누나의 부탁으로 시작된, 반지하에 사는 나를 위해 시작한 길고양이들의 사료 챙기기가 이제는 내 하루 일과가 돼 버렸다. 오늘도 창문을 열고 어제 뿌려준 사료가 얼마큼 줄어들었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나는, 딱 길고양이들의 눈높이이다.
*고양이들은 본인들이 밥 먹는 곳, 배변하는 곳을 따로 분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