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선생 '님' 판타지
* 간단히 단상을 메모합니다.
* 스포일러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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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이십 후반에 만화책에 맛을 들렸다. 밤에 일찍 자려고 누워도 만화책을 펼치면 두세시간이 훌쩍 가버리는 것이... 왜 진즉에 이런 재미를 몰랐을까 하는 마음을 요즘에야 느끼고 있다.
암살교실은 말하자면 <본격 선생 '님' 판타지>라고 할 수 있겠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이따금 학창시절 얘기를 하게 된다. 저마다 살아온 배경, 시간, 지역이 다르기에 같은 수는 없지만 의무교육이라는 국가적인 제도아래 '학창시절'은 공통의 경험이 되는지 다른 주제에 비해 쉽게 공감대가 형성된다.
애석하게도 그 공감대는 은사님과의 좋은 기억보다는 선생에 대한 나쁜 기억과 트라우마들이 확률적으로 더 높았다. 저마다의 이해관계와 실적과 감정들 사이에서 학교는 내가 성장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나를 남과 비교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3-E반은 낙오자들의 클래스다. 현실에서는 우열반을 나눠서 '우등생 반'을 밀어주는 모양새가 많지만, 만화속 중학교에서는 '열'반에게 패널티를 줘서 나머지 학생들이 우월감을 만드는 학교 구조를 보인다. 이 책은 학교 차원에서 버려진 카드들이 패널티를 딛고 일어나 당당히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의 성장에는 선생'님'이 있던 것이고.
게임을 하다보면 마주하는 상황들. 어쭙잖은 패들 100장보다 괜찮은 패 1장이 승리에 더 유리하다는 것. 제대로 된 에이스 하나에 모든 경험치와 자본을 몰빵하면 외려 성적이 더 잘 나오는 효율.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다만 나는 학교에 있는 수백 장의 패 중에 하나였고, 애석하게도 어쭙잖은 패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재수를 하고 쓸만한 패가 되어 돌아오자 그제야 나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는데 그 상황이 너무-도 같잖았다. 나는 그래서 선생에 님자를 붙이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모두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저마다의 달란트가 있어서 각자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암살교실의 학생들은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며 경험을 쌓아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더 나은 방법을 물색한다. 창의나 창조는 지금부터 요이땅하면 시작하는거야! 해서 나오지 않는다. 평소에 생각하고 고민하는만큼 나온다. 그 과정에서 성장도 하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교는 '성장'을 하는 곳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들이 성적을 떠나 사람으로 잘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곳이고.(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을 싸잡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그래서 더 손을 놓지 못하고 줄줄줄 읽어간 것이 아니었을까. 괜히 씁쓸해져서. 약간의 길티플레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