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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an 18. 2022

[2021] 홍학의 자리 | 정해연

K픽션 아카이브 - 장편소설 | 이요마

홍학의 자리 / 정해연 / 2021

*도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이번 편은 없으려고 노력합니다)



'스포 절대 금지'가 주는 기대감 | 이요마


0. 들어가며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숙련도가 쌓여가는 바람직한 모습을 바라지만, 실상 내가 마주하는 익숙함은 부정적인 것들 뿐이어서 더 그렇다. 나이를 먹고 직장에서의 연차가 쌓이면서 나의 생각과 생활방식은 고정되어가는 것 같다. 특히 생각이 굳어가는 것이 무섭다.


다양한 여지를 남기고 상상력을 발휘에 밝은 눈으로 세상을 따라가려 하기보다는, 누가 정해준 것을 요령 있게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강박적으로 레퍼런스를 찾게 되고 새로운 것보다는 편한 것을 찾는다. 애석하게도 내가 요령 있는 인간이 아닌지라 그 길이 쉽지는 않음에도 해온 가닥으로, 경험으로 버티면서 적당히 불편함을 견디는 것을 택한다. 


나를 가두는 습관, 관성에서 편견과 남을 재단하는 나쁜 습관이 나온다. 출판사에서 책을 파는 일을 하면서 든 나쁜 습관이라면 책의 뒷이야기를 넘겨짚는 것이겠다. 원고를 많이 보게 되고, 더불어 출근해서도 퇴근해서도 책을 보고 있기에 대충 이렇게 되겠군 하며 견적을 내본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지고, 일로써 책을 대하게 된다. 한동안 이젠 소설이 재미없어. 난 사실 한국문학 안 좋아하는 것 같아. 라며 찡얼거린 이유는 결말까지 닿기도 전에 판단해버리는 이상한 쿠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K픽션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다시 읽는 재미를 되찾고, 그 마음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목표도 있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재밌게 보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책을 고를 때도 베스트셀러를 먼저 찾아보게 되고, 혹 베스트가 아니더라도 출판사에서 소개하는 홍보자료나 독자들의 리뷰 반응으로 보고 책을 선정하게 된다. 재미를 중심으로 흥미가 돋는 책들을 서치 하다가 만난 <홍학의 자리>는 카드뉴스에 낚여버린 케이스다.


<홍학의 자리> 엘릭시르 카드 뉴스

카드뉴스는 보통 후킹이 되는 책의 줄거리나, 믿을만한 명사의 추천사나, 멋진 문장을 발췌하기 마련일 터인데, <홍학의 자리>는 대뜸 '출판사 직원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충격 반전 소설'이라고 하질 않나, '스포 절대 금지'라고 하질 않나, 그다음에는 원고를 가장 먼저 읽어본 직원들의 증언들로 카드뉴스를 꾸려놓았다.


보통은 출판사 직원들이면 자기 회사 책 재밌다고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증언들이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그래?



1. '스포 절대 금지'가 주는 기대감

책의 초반부를 볼 때는 아니? 이렇게 기대감을 키워놓고 이게 뭔데? 하면서 한 장씩 넘겨갔다. 내심 팔짱을 끼고 '그래 한 번 기대를 충족시켜 보시지!' 하는 방어적인 스탠스로 이야기를 봤던 탓에 바로 몰입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읽다 보니 주요 화자인 '준후'의 시점으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이야기는 채다현이라는 한 학생의 죽음을 두고 '그는 왜 죽었는가?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해서 풀어간다. 채다현의 시신은 삼은호수에서 발견된다. 그는 부모가 없는 고아였고, 며칠 전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갔다는 증언이 접수되었다. 그날 은파고등학교에는 야근을 하던 다현의 담임 김준후와 수위 황권중만이 남아있었다.


준후는 와이프와의 관계가 악화되며 거리를 두기 위해 진평행을 택했다. 시골 학교의 막내 교사로(하지만 45세) 잡무를 처리하며 그날도 일을 하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다현에게 연락이 왔고, 둘은 연인처럼 대화한다. 다현 때문에 이혼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실종 추정일에도 준후와 다현은 은파고의 한 교실에서 수위 몰래 사랑을 나눈다. 다현의 몸 안에 사정을 하고 나서 들키지 않게 헤어져 준후는 교무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 순찰 중이라던 황권중을 만나 자연스럽게 출출해서 실험실을 들어갔다 왔노라며 너스레를 떤다. 자연스럽게 수위실로 가 함께 라면을 먹는다. 다현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라면을 나눠먹고 교무실로 돌아오는데 평소라면 문자라도 했을 다현의 연락이 없다. 전화를 걸어보니 어렴풋하게 한 교실에서 소리가 들린다. 


다현은 천장에 목을 맨 채로 목에 피를 흘리며 죽어있었다.


준후의 멘탈은 무너져 내린다. 어린 연인의 죽음보다 앞서는 걱정은 자기 자신이다. 이대로 둔다면 살인 용의자가 될 것이고, 여차의 추레한 증명을 통해 범죄 누명을 벗는다 해도 다현의 몸에 남아 있는 자신의 흔적이 그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는 기지를 발휘해서 황권중 몰래 다현의 시신을 갖고 가 삼은호수에 유기한다. 호수에서 시신이 언젠간 떠오르겠지만 그런 건 생각할 때가 아니다.


<홍학의 자리>는 유력 용의자이자 시체유기자 김준후의 사이드와 이를 수사하며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가는 경찰 강치수 형사의 사이드를 오가며 '채다현 사망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간다. 재미있는 부분은 채다현을 둘러싼 과거사들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해(?) 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현의 부모와 원한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준후의 부인이 외도를 알고 복수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 수위 황권중이 음모를 벌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경찰을 제외한 모든 인물을 의심하게 만든다.


때문에 '스포 절대 금지'라는 말이 다른 무엇보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한 챕터를 넘길 때마다 좁혀지는 사건과 더불어 체크해야 하는 인물들이 많아지며 그래서 다음은 뭔데? 하면서 읽는 것을 멈추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다음 다음 다음 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인 20챕터에 다다른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 이거 반전 있다! 반전 있다고! 가 주는 압박과 실망감도 체크


개같이 멸망한 포스터의 예 <이니시에이션 러브>

어떤 영화나 책은 사전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하고 보았을 때 최고의 재미를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거 반전임! 최고의 반전영화임! 하면서 밑밥을 사전에 깔아놓은 이야기들은 그 부담감을 이겨내야만 한다.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언제 반전이 나오지? 나올 때가 되었는데~ 하면서 기대감 컨트롤을 할지 언데 정말 잘 쓰인 이야기가 아닌 이상 빌드업 시간 동안 기대감이 너무나 커져 결말에 실망하는 경우도 생긴다.


개인적으로 최악의 포스터를 뽑는다면 <이니시에이션 러브>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5분의 충격적 반전이라니 이런 스포가 또 있겠는가. 관객들을 마지막까지 긴장감 있게 보게 하려고, 또 관심 어그로를 통해 한 명이라도 더 보게 하려고 내린 묘수겠지만, 차라리 포스터를 보지 않았다면 더 신선하고 재밌게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더라.


그만큼 <홍학의 자리>도 마케팅-홍보를 '진짜 진짜 재밌는 이야기이고, 절대 스포하면 안 되는 책'으로 설정한 것은 양날의 검이다. 냉정하게 그냥 <홍학의 자리>라고 띡 놓았을 때보다는 훨씬 손이 가는 전략이긴 하지만 알라딘 기대평에서 갈리는 0점 아니면 5점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는 어쩌면 '낚였다'는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다. 


완독을 하고 나서 든 생각은 이 전략은 유효했다고 본다. 사전에 깔아놓은 기대감을 충족시킬만한 결말이었는지는 독자들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겠지만, 그 마무리를 향해가는 과정이 충분히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개연성이나 뿌려놓은 떡밥을 회수하며 뒤로 갈수록 퍼즐이 맞춰져 가는 구성은 오랜만에 만나는 짜임새 있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야기였더랬다. 다만 반전과 전말을 알았으니 2회독을 할 것 같지는 않다.



3. 나가며

'읽는 재미'는 참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특히 부담 없는 분량으로 깔끔하게 사건을 매조지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보통 추리 소설이나 살인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외국 장편들은 겁나 두꺼운 경우들이 많다. 재미가 있으니 페이지터너라는 말이 나왔겠지만 그 부담을 뚫고 선뜻 책을 잡은 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페이지 수가 안 보이는 전자책으로는 몇 번 시도했었더랬다.)


'그래서 누가 죽였는데?'라는 확실한 화두 속에 모든 인물들이 그에 맞게 움직인다. 그에 따라 독자도 계속 그 질문에 갇혀 상상과 추리를 한다. 내가 편견에 젖은 인간이었구나 생각하게 하며 머리를 띵! 하게 만드는 반전도 이 책의 재미다. 엄청난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반쯤 읽었을 때 넘겨짚으면서 대충 사이즈 나오네~ 하면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면 책을 잡고 있는 동안은 재미있는 추리극 한 편을 집중도 있게 볼 수 있을 게다. 읽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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