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픽션 아카이브 - 장편소설 | 이요마
극장에서 혼자 공포영화를 본 적이 있다. 원체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동네의 평일 저녁시간이기도 했고, 코로나 이슈로 예매율도 떨어져 어쩌다 보니 연출된 상황이었으리라. 다행히도 나는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터라 예매한 맨 뒤 자리에 얼른 앉아서 보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분명 앞쪽 열에 앉은 세 명의 관객을 보았고 그래도 공포영화인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을 했더랬다. 클라이막스까지 다 보고 자리를 고쳐 앉았을 때 내가 극장에 홀로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그때부터 막 소름이 돋더라...
영화의 제목은 <온다>였다. 순전히 주연인 쿠로키 하루 상을 보기 위해서 고른 영화였기에 큰 기대는 안 했지만 퍽 재미있었고, 후에 원작 소설인 <보기왕이 온다>도 찾아볼 정도로 괜찮았다. 극의 내용은 복잡한 듯 하지만 간단하다. 어린 시절 히데키는 외할아버지 댁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난다. "시즈상 계신가요?" 엉겁결에 답을 해버린 아이. 그리고 그때부터 그놈이 계속 따라오기 시작한다.
<온다>의 무서움은 '불분명함'에서 온다. 뭔지도 모르겠고, 형태도 가늠이 안 되는 무언가가 자꾸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공포다. 잘 모르겠는 상황들의 연속, 명료하게 결론 나지 않는 이야기는 독자를 미궁으로 끌어들이며 클라이막스에서 뙇! 하고 쾌감 혹은 찝찝함을 남긴다. 이런 여운이 남는 미스터리 장르는 일본에 특화되어있는 것 같고, 아직 한국에서는 잘 접하지 못해(나의 독서량이 부족한 탓도 있다.) 내심 아쉬워하던 차에 오늘 소개할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김희선 작가가 쓴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제목부터 궁금함을 준다. 제목을 나눠서 보면 크게 세 파트다. 무언가 / 위험한 것이 / 온다 즉, 이 이야기는 '무언가' 대개는 불분명한 것을 지칭하는 어떤 것이 '위험한 것이' 위험한 존재이고, '온다' 그 존재가 독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그 위험한 무언가가 무엇일지 상상을 하며 첫 장을 펼쳤다.
S# 1
'평범한 지구인이 화성에서 살해당할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
의미심장한 첫 문장이 내게 펼쳐졌다. 그 위험한 무언가는 외계인인가...?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제목부터 독자에게 의심의 씨앗을 심어놓았다. 아마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그 위험한 무언가는...?'이라는 취재를 하는 기분으로 정보 수집을 하게 만든다. 이야기 중간중간 삽입된 시나리오 극본부터 기자들의 수집한 과거 자료, 등장인물들의 증언들까지 다양한 사건 자료를 펼쳐놓고 이야기의 진실을 맞춰가는 게임 같은 구성을 갖는다. 그래서 결말로 갈수록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며 종국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특수한 재미가 있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의 장점이자 단점은 '정보들의 배치'라고 생각한다. 숨겨져 있는 메인 스토리까지 닿기 위해 서순에 따라 이야기를 읽어야 하기 때문에 표면 이야기들 속에서 맥락을 한 단계씩 찾아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 진실을 찾거나 진실에 휘말리는 인물이 여러 명이기 때문에 한 큐에 몰입해서 읽기는 어렵다.
(작중에 나오는 모든 사건을 다루지는 않고, 예를 들기 위해 몇 개만 씁니다.)
자료 1 : 김영주 기자는 한 노인이 대낮에 전봇대에 드릴을 고정시키고 몸을 날려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자료 2 : 죽은 노인은 극동리 주민 이만호이며, 마을에 들어오는 폐기물 처리장 건설에 반대했다.
자료 3 : 극동리에는 SF영화 <배틀 온 마스>의 촬영이 진행되고 있고, 주민들은 엑스트라로 출연한다.
자료 4 : <배틀 온 마스>의 화성 풍경을 찍어내는 장소는 바이오제네시스 사가 바이오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평지화를 마쳐놓은 땅이다.
자료 5 : 김영주의 부탁을 받은 최는 병원 영안실로 향하고, 검시의에게 이만호의 사인을 알게 된다.
자료 6 : 심마니인 곽과 구는 극동리 노방산에 삼을 캐러 왔다가 우연히 시신을 발견하고, 파출소에 신고한다. 그리고 자율방범대 대장이자 이장인 오구식을 만난다.
자료 7 : 극동리의 이장 오구식은 귀농을 했고,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청년 농부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
책은 정보의 경중을 정리해서 순차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사건을 관통하는 정보와 노이즈를 동시에 제공하기에 독자는 끝없이 의심하며 진실이 무엇일까. 몇몇 인물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찾아가야만 하는 능동적인 위치에 선다. <역전재판>류의 게임이나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서사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야기에 빠져들어 진실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기도 하지만, 위의 자료 7개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투머치한 정보가 병렬적으로 또 여러 화자의 입장에서 진술되기 때문에 완전히 몰입하지 않으면 독자가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극동리에 사는 한 노인의 자살 사건을 기점으로 사건 배후의 '무언가 위험한 것'의 정체를 밝혀가는 여정'이라는 포인트를 잘 쥐고 읽기만 한다면 특이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될 것이니, 혹 중간에 포기하고 리뷰를 보러 온 분이라면 재도전을 권한다.
*약 스포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이야기는 극동리에 사는 한 노인 '이만호의 자살 사건'을 축으로 양파처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해가는 이야기다. 외지인인 기자 김영주와 최의 시선에서는 이만호의 죽음이 '폐기물 건설장 반대'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독자들은 이미 수없이 매립지, 송전탑, 해군기지, 재개발 등 지역 주민이 원치 않는 개발/건설 이야기에 익숙하다. 현실에선 대개 약자들이 패하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야기가 종결되곤 한다.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자동완성되곤 한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이러한 편견(혹은 독자들의 경험 데이터)을 이용해 이야기를 화성으로 보내버린다. 이야기 속에서 촬영 중인 영화 <배틀 온 마스>는 지구 밖 외계의 이야기다. 애석하게도 거대 제작자본에 휘둘려 '그래도 인간은 승리한다'는 식의 'K신파 외계 재난영화'로 풀릴 운명이지만, 작품 안에서는 '외계인'이라는 키워드로 은은하게 영화 밖 촬영지인 극동리와 커넥션을 만든다. '어쩌면 외계인이 사람을 조종해서 머리를 뚫게 만드는지도 몰라'라는 상상력은 사실 70년 전 로스웰 사건 때나 써먹을 법한 외계인 정신 지배 괴담이긴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느 날 사라지고,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연달아 발견된다면 또 모른다. 정말로 외계인의 소행이 아닐까 하고 의심이 들 수밖에. 책의 뒤표지에도 적힌 카피도 그 의심을 확신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이야기가 외계 행성(화성)과 관련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저 카피 바로 옆에 있는 발가벗은 청색 생물이 그 확신을 더하게 만든다. 와 이건 외계인 이야기이군! 하고 말이다. 제목에서, 또 뒤표지에서도, 서점에 걸린 소개와 보도자료까지도 끊임없이 빌드업하는 정보 속에서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동완성을 하고 만다. 이 책은 '외계인 이야기군!'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바이오제네시스 사의 노이균 회장이 깔아놓은 화성이라는 판은 외계인의 탈을 쓰고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오게 만드는' 공작을 하기에 충분한 불분명함이다. 경험해본 적 없던 새로움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가? 하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가 깔아놓은 화성 빌드업 속에서 이만호 노인이 죽기 전 벌인 술잔치의 의미. 1987년 벌어졌다가 유야무야 묻었던 노방산 일가족 변사 사건, 과거에 경찰이던 우광일이 목격한 영안실 시신들의 모습과 이름 모를 노인 그리고 삼헌광업과 바이오제네시스의 커넥션까지. 이 책의 이야기는 파면 팔수록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문단의 인물들, 사건들을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다. 외계인 빌드업처럼, 작가의 빌드업을 절반 이상 따라가고 나서야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는 부분들이니까.
진실이 무엇일지는 독자 여러분이 직접 마주하기를 바란다. 이 이야기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단서를 모으고 추리하면서 마지막 장에 도달하면, 읭? 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 하는 지난 사건들의 전말을 알 수 있을 게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제목부터 마지막 장까지 명료하지 않다. 그렇기에 상상할 여지가 많다. 여백을 독자가 메워가며 읽는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만한 책이다. 다만 독자들이 이 책을 즐기려면 한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책의 결말은 작가가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나서 결정한 단 하나의 루트라는 것이다.
일부 시간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이야기는 단 하나의 결말을 위해 달려가지 않는다. 작가가 빌드업해놓은 세계와 인물들이 비단 책의 결말을 향해 움직이며 그쪽으로 나아가지만, 다르게 인물을 움직여보고 세계를 바꿔보는 상상을 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작가만 자동완성을 깨는 빌드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경험을 하기에 최적의 소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를 한 번 읽어보시라. 처음의 불편한 전개만 넘어선다면 이런 게 아닐까? 저런 게 아닐까? 의심하고 고민하고 사건을 풀어가다 보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에 닿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