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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09. 2023

이요마는 무슨 일을 하는가

이요마 작업물 아카이브 프롤로그

위키피디아 - 로베르트 발저

Before 이요마

브런치, 인스타, 얼룩소, 팟빵... 이곳저곳에 콘텐츠와 콘텐츠를 가장한 잡글을 뿌려온 게 어언 7년째다. 7년이면 한 분야만 우물을 파도 맨틀까지는 닿았을 텐데 나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돌이켜보면 끊임없이 나는 인정을 갈망했고, 채워지지 않는 인정에 좌절하고 '어차피 이런 걸 누가 보겠어.' 하고 집어치우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꿋꿋하게 버티며 외길인생을 걸어도 모자랄 판에 관뒀다 시작했다를 반복했으니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여기저기 일을 벌였다가 엎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내게는 우울증이 찾아왔다. 회사는 물론이고 친구들과 함께 하던 독립출판이나 팟캐스트, 온라인 콘텐츠 프로젝트들을 다 포기하고 방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냥 잠을 자고, 또 자고, 일어나서 빵 쪼가리 먹고 또 자기를 반복. 계속해서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눈을 감고있는 동안은 도망갈 수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자는 게 너무 지겨워졌다. 아니, 낮에 너무 많이 자서 밤 10시에도 눈이 말똥말똥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게다. 집에 있기는 싫어서 근처에 뭐라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에코백에 책 한 권을 넣어서 밤산책을 나갔다. 내가 사는 동네는 산업단지였고, 오후 7시만 되어도 왠만한 가게들은 다 문을 닫는 유럽같은 곳이었기에 걸어도 걸어도 주변은 캄캄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회사들 사이에 있는 작은 무인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이 동네에 흔치 않는 24시간 카페였다.


자판기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뽑아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져온 책을 읽었다. 아마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1》이었을 것이다. 뭐라는 지 모르겠는 긴 러시아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사교계에서 활동하는 부분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조금씩이라도 다시 시작 해보고 싶다. 책을 덮고 생각했다. '근데 무엇을?'


돌이켜보면 지난 6~7년간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하면 내가 가장 많이한 일은 책 읽기였다. 거창하게 '독서'라고 하기도 뭣한게 책과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출판업에 종사했고, 퇴근 후에 대학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했고, 주말에 시간을 내서 독립출판을 했고, 마음 속 한 편에 여전히 소설가라는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자기계발서부터 만화, 어린이책, 그림책, 문학, 인문/교양, 경제, 트렌드책까지 가리지 않고 1년에 150~190권 정도의 책을 읽어온 것이 들고 있는 걸 다 버리고 도망친 내게 남은 유일한 자산이었다. 할 수 있는 건 읽고 기록하기밖에 없어보였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파서 노는 기간 원없이 인풋하는 계정을 만들자고, 그냥 읽고 보기만 하지 말고 기록으로 남겨 언젠가 써먹자고 다짐했다. 참 오랜만에 찾아온 '하고 싶은 일'이었다. 인스타에 로그인 하려니 그 사이 참 일을 여러개도 벌이고, 엎긴했는지 계정이 벌써 3개나 있었다. 본명을 건 본계정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기에 제일 팔로워가 적은 계정 하나를 밀어버리고 이름을 바꾸려했다.


근데 이름을 뭐로하지? 전부터 써오던 닉네임이 있긴 했다. 하지만 왠지 싫었다. 새로운 출발이 필요했다. 기존의 관계는 다 버리고, 다 지우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을 고민하다가 문득 대학시절 만들었다가 방치해둔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이요마였다.




이요마?

'이번에 요구한 건 (내일까지) 마감이야.'

마감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던 작은 이름. 동글동글한 모음이 많고 받침이 없어 부르기도 편안한 이름. 그래 이거면 되었다 싶더라. 그렇게 급하게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이 하코 이요마(@hako_eyoma)다. 프로필 사진은 마쓰다 코우스케의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 등장하는 '해리스 제독'. 그 캐릭터처럼 '해리스 임팩트'를 위해 노력하는, 말하자면 잘못된 방향성 때문에 이상한 결말로 흐르더라도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지난 2년 여간 꾸준히 읽고 보고 기록하며 300개의 게시물을 돌파했다. 매일을 조급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한 주 한 주 기록하며 살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그만큼 쌓여있더라. 어느 순간부터는 인스타에서 기록들이 휘발되는 게 아까워 브런치의 작가명을 바꾸고 기록을 남겼다. 바로 [주간 이요마 인풋 노트]다. 글이 메인인 브런치에서는 '해리스 임팩트!'보다는 좀 더 진중한 느낌을 내고 싶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사진으로 프로필을 바꿨다.(발저는 외롭고 진솔한 이야기를 써서 좋아한다.)


https://brunch.co.kr/magazine/inputeyoma


중간에 몇 주씩 비는 기간도 있지만, 어느새 60주를 돌파해 1년 넘게 기록이 쌓이고 있다. 거북이 걸음으로 나아가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산을 옮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인풋 노트를 채우다보니, 인풋이 넘쳐 이젠 아웃풋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기록하는 일만 해왔는데 갑자기 반도체 공정을 한다거나 음식점을 차릴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정제된 책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얼룩소라는 채널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병행해서 연재하는 [이요마 리뷰 아카이브]다.


https://brunch.co.kr/brunchbook/eyomareview


리뷰를 쓰다보니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때부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가디언즈 프로젝트〉라는 장편소설을 절반 정도 써서 미완원고도 받는 공모전에 응모했고 본심에 올랐다. 밀리의서재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플랫폼 밀리로드에 〈화개〉라는 제목의 환상소설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했고(현재는 잠시 중단), 다시 용기를 내어 도망쳤던 콘텐츠 팀 M.D.LAB 복귀했다.(작가 덕질 아카이빙 잡지 《글리프》시리즈와 대화집 《대화들》에는 에디터로, 비건지향 레시피북 《베지 컬러스》편집으로 참여했다.)


계약이 지지부진 했던 여름, 개인사가 겹치며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냈고 다시 스물스물 우울감이 올라왔다. 지금의 마음은 지금 이 순간만 기록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쓰다보니 동해에 가서 글을 쓰던 이야기, 식물을 키우는 이야기 같은 신변잡기한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있지만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그 과정을 거쳐 미래의 내가 있을테니까.


https://brunch.co.kr/magazine/favoritenothing


지난 2년간 최선을 다하며 살지는 않았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기록하다보니 침대로부터 한 발자국 정도 걸어나올 수 있던 것 같다. 2년 뒤의 나는 아마도 저 멀리 상상도 못한 곳에 위치할 테고, 지금의 순간이 담긴 이 기록을 보면서 내가 이런 여정을 거쳐왔구나 되돌아볼 것 같다. 세상에 서사없는 인간은 없다. 다만 기록하느냐, 기록하지 않았느냐 차이만 있다고 생각한다.



이요마는 무슨 일을 하는가

이런저런 콘텐츠를 쓰면서도 정작 내가 누군지, 뭐하는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는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신비주의 컨셉은 아닌데 나를 드러내는 게 두려워서 닉네임 뒤에 숨은 것도 없지 않아 있다. 여전히 나를 정의할만한 용어, 이를테면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거나 '소설가'라거나 '북 리뷰어', '에디터' 같은 이름을 정하지는 못했다. 그보다는 '이요마'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자체로 명함이 되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긴하다.


이 매거진에서는 내가 참여하거나 완성한 작업물들을 기록할 것이다. 좋게 말하면 포트폴리오나 팝업 스토어(글 팔아요), 달리 말하면 '에이 내가 뭐라고, 뭐 한 게 있다고 이런 걸 기록해...' 하며 누락하던 것들을 모으는 작업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기록습관의 연장선 상에서 나를 내보이는 공간 하나 마련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여전히 면구스럽고, 숨고 싶은 마음이 그득하다. 그렇지만 다가오는 2024년부터는 나를 더 내보이고, 많은 것을 욕망하고, 쟁취하고 싶다. 재미있는 작업들을 많이해서 이 매거진이 풍성해지길 바란다. 자주 만납시다. 나중에는 해온 일들로 이 섹션이 가장 넓어지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 해온 일

엠디랩(@m.d.lab.press) 에디터

- 작가 덕질 아카이빙 잡지 [글리프] 1~5호, 7호 기획, 글, 편집 참여

- 비건지향 레시피북 《베지 컬러스》1~2호 편집 참여

- 대화집 《대화들》 1호 대화, 편집 참여

- 밀리의서재, 이달의작가 김영하 기획 참여(이달의 작가 김영하와 떠나는 독서여행 (millie.co.kr))

- 리디북스, 조예은 소설 《입속 지느러미》부록 〈처음 만난 세계, 웰컴 투 조예은 월드〉 기획, 글, 편집 참여(입속 지느러미 - 소설 - 전자책 - 리디 (ridi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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