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겨울 페이지
주말만 되면 여름에는 바다로, 겨울에는 산으로 자연을 즐기러 나가자고 딸들을 꼬셨다. 제주시와 서귀포를 부지런히 데리고 다닌 지 3년이 되어가자 이제는 여름만 되면 강정천을, 눈발만 날리면 1100 고지를 가자고 노래를 부른다. 한라산으로부터 내려온 18도, 1 급수의 강정천에서 얼음장 같은 여름을 맞고 눈이 쌓인 날에는 중산간으로 찾아가 땀이 나도록 눈썰매를 탄다.
한 겨울이 되어 한라산이 하얗게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우리 집 강아지들은 눈놀이가 하고 싶어 안달이다. 오랜만에 큰 아이와 둘만의 시간이 주어져 김밥과 간식을 챙겨 어리목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차갑고 깨끗한 공기에 눈이 떠지고 눈꽃이 핀 설산을 보고 마음이 열렸다. 어승생악 탐방로에 아직 남아있는 눈 때문에 미끄러울 수 있으니 아이젠을 차고 오르기 시작했다. 장비를 차니 마음껏 눈에서 뛰어놀 수 있단 생각에 아이는 들떴다.
“승연아, 눈이 많이 녹았네?”
“그래도 좋아. 이만큼 쌓인 눈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네가 좋다니 엄마도 좋다.”
상고대가 펼쳐진 풍경은 아니었지만 아직 녹지 않은 눈 덕분에 아이의 하얀 웃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렵지 않은 코스지만 눈길이라 조심조심 걸었다. 아이젠을 준비 못한 가족이 줄을 붙잡고 엉거주춤 내려오시길래 먼저 지나가길 기다리고 서있었다. 본인도 미끄러울 텐데 눈길에 발자국을 파며 딸에게 아빠가 밟은데 밟으라고 앞서 내려와 주시는 모습에 내 마음이 다 따뜻해졌다.
그분도 성인이 다 된 딸이 아직 아기처럼 보이시겠지?
옷이며 장갑이며 짐이란 짐은 다 나에게 넘기며 볼이 빨개지도록 눈 만지느라 바쁜 뒷모습을 나는 또 기꺼이 짐꾼이 되어 넋 놓고 바라본다.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고 정상에 오르자 눈꽃을 입은 백록담은 어느새 우리 옆에 와 있다. 집 마당에서 멀리 보이는 한라산을 이렇게 가까이와 굽이굽이 넘어가는 능선을 보고 있으니 솜털처럼 곱게 앉은 눈이 손에 닿을 듯 아련하다. 하산하는 길, 집에서 싸 온 사과와 오이를 꺼내니 ‘엄마, 색깔이 크리스마스네?!’ 하며 사과를 하나 집어 내려간다. 하얀 눈 위에 초록과 빨강이 유난히 선명한 오늘, 우리의 겨울은 또 한 장의 페이지가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