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학교도전기
차가운 바다에서 나와 더 차가운 바람을 맞아본 사람이라면 제주해녀를 감히 멋있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검푸른 바닷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제주의 그녀들은 내가 본 여성 중 가장 아름답고 강인한 여성이다. 제주의 바람과 변화무쌍한 조류 속에서 내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데 수십 미터를 내려가 숨을 참고 건져 올린 생물들은 해녀들의 목숨과도 같기에 더욱 경이롭게 느껴졌다.
4년 전 네 식구의 보금자리가 제주로 옮겨지며 그동안의 도시생활은 바다와 오름으로 채워졌다. 미술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고향이 포항인 나에게 바다는 언제나 영감의 대상이었고 제주바다는 연고 없는 나에게 따뜻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두 딸을 키우며 해마다 찾았던 제주의 바다는 우리의 놀이터였고 바다수영팀원들과 함께 누빈 바다는 평생 섬에서 살겠다는 다짐을 할 만큼 새 세상을 내어주었다.
바닷속을 여행하면서 ‘해녀’라는 두 글자는 내 볼의 주근깨처럼 점점 진하게 새겨졌다. 어머니가 해녀라고 하는 60대 수영친구, 동네 앞바다에서 뵙는 80대 해녀삼촌, 물질이 좋아 배우기 시작해 여름이면 동그란 수경자국이 지워지지 않는 이웃해녀언니, 작년 여름 캐나다인 감독의 제주해녀 다큐멘터리에 젊은 해녀역으로 데뷔하기까지 밀려오는 파도처럼 서서히 해녀를 꿈꾸게 되었다.
해녀학교 지원을 앞두고 제주해녀의 역사가 단단히 지켜지기를 누구보다 원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국내외 서적을 찾아보고 제주문학관에서 열린 제주해녀문화 강연을 들으며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으로 선정된 여성잠수부들의 업적은 두 딸의 엄마이자 제주도민이자 한국여자인 나를 애국심에 불타오르게 했다.
바다수영 선배들이 한수풀해녀학교에 입학했다는 소문을 듣고 나도 언젠가 입학하겠다는 먼 꿈을 꾸었고 학교 앞바다에서 열린 바다수영대회를 2년째 완주하며 그 꿈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두 딸에게 내 한계를 넘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스스로와 싸우며 2km를 헤엄친 27분은 그동안 잠들어있던 내 이름 세 글자가 귀덕리에 울려 퍼지는 듯 기뻤다. 매주 곽지에서 한담까지 장거리수영으로 체력을 기르고 프리다이빙 AIDA1 자격증을 취득한 '엄마고래'는 '기억이 문장이 될 때'라는 공동자서전에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 첫 출간의 희열을 느꼈다.
바다는 그런 곳이다. 나의 길을 개척해 나가려면 나 스스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바다수영을 계기로 마라톤 10km에도 도전했고 한라산 등반도 해냈다. 40년을 살면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앞에서 끌어준 바다수영팀원들을 통해 4년에 이루어냈고 지금 나는 해녀를 꿈꾸는 고래다. 해녀들도 먼저 가본 상군해녀들이 없었다면, 공동체의식이 없었다면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는 남지 못했을 것이고 나 또한 그 역사 속에서 배우고 싶다.
삶의 기록을 꾸준히 써오며 브런치(brunch.co.kr/@haki1107)에 ‘나의 제주 레시피’라는 타이틀로 제주 토속음식 및 건강식을 연재하고 있다. 전복과 뿔소라, 미역, 보말로 차려진 밥상이 얼마나 건강하고 맛있고 한국스러운 것인지 구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고 바다에서 갓 따온 미역에 귀한 성게알을 넣은 미역국, 볶은 톳을 넣은 톳김밥, 보말과 고사리를 넣은 오일파스타, 뿔소라를 큼직하게 썰어 넣은 비빔국수까지 직접 따고 만드는 영상을 통해 생생한 해녀문화를 널리 전파하고 싶다.
할머니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딸로 내려오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제주해녀 문화의 존귀함을 한수풀해녀학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내가 꿈꾸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