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도 벅찬데 글은 왜 쓰려고 해
재작년에 ‘마음에 병’이라는 제목의 엽서북을 만들었었다. ‘마음에 병’이라는 주제로 그린 12장의 시리즈 그림을 엮은 엽서북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마음의 병’이라는 말에서 착안하여 ’병‘을 무언가를 담는 ’병‘에 빗대어 다양한 ’병‘의 모습을 그리다 보면
나의 마음에 조금 더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린 그림들이다.
(마음‘의’ 병이 아닌, 마음‘에’ 병이라고 쓴 이유는 마음 안에 있는 병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이다.)
나의 생각들을 어떤 병에, 어떤 장면으로 담아야 할지 그림으로 표현해야 했기에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현재 나의 고민과 관심사는 무엇인지, 왜 화가 나거나 즐거워하고 있는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어떤 모양의 병에 어떻게 표현되었으면 하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싶은지...
이런 생각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정리하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하나씩 적어나갔다.
정리한 후엔 내가 좋아하는 소재, 색상, 텍스쳐, 선과 면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 형태로 그려나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과정에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홀가분해지는 것이었다.
감정을 그림으로 풀어내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그림들을 모아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엽서북을 만들어서 일러스트 페어에 들고 가기로 했다.
만들면서 제일 고민했던 부분은 글이었다.
그림에 대한 내 생각을 함께 보여주면 그림을 보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최대한 글을 배제하는 방향을 선호했다.
하지만 이번 주제만큼은 나의 생각이 중요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계속 떨쳐지지 않았다.
결국 앞면에는 그림을, 뒷면에는 짧은 글을 담은 엽서북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일러스트 페어에 들고 간 ‘마음에 병’ 엽서북은 예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걱정과는 달리, 글을 보며 그림을 더 이해할 수 있고 공감이 간다고 좋아해 주셨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 분이 있다.
엽서북을 천천히 들여다보시다 자신의 얘기를 조심스레 나누어주셨고, 얘기를 하며 눈물이 조금 맺힌 모습에 나도 덩달아 감정이 올라왔다.
시끌벅적한 페어 안에서 생전 처음 보는 두 사람이 그림으로 감정이 연결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를 위해 그렸던 지극히도 개인적인 이 그림들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위로를 주고 그 모습을 보고 나 또한 위로를 받았다.
이 연결이 주는 마음의 치유가 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라는 걸 깨달았다.
이전에는 내가 글을 쓴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리고 쓰고 싶다.
그림을 보는데 방해가 되는 글이 아닌, 글과 그림이 함께 있어 더 마음이 와닿는 것들을 만들고 싶다.
그 이야기가 나처럼 작고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어
큰 세상을 살아가는데 벅차지만 잘하고 있다고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다.
나의 글과 그림이 따뜻한 마음의 연결고리 속 아주 작고 작은 고리라도 되고 싶다.
* <마음에 병> 그림 중 몇 개 올려 보아요.
< 마음에 병 - ‘눈물 어항’ >
내 마음은 워낙 작아서 눈물이 톡톡 금방 차오르지요
물고기 한 마리 살 정도는 되는 것 같아 그곳에 풀어줬어요
이젠 눈물이 나도 조금은 괜찮은 것 같아요
< 마음에 병 - 슬라임 >
흐물흐물 슬라임처럼 녹아버릴 때가 있다
그러다 병 안에 꼭 끼어버렸다
날 힘들게 하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녹아내리는 날 꽉 잡아주는 존재였다
< 마음에 병 - 진짜 나 >
병 안을 꽉 채워주던 물이 쏟아 없어진다 해도 괜찮아
그건 내가 아니니까
진짜 나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하고 있어
instagram | @hakkobang
e-mail | hakkobang.ingy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