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1-

그림 그리는 삶이 내게 남긴 것

by 하꼬방


나는 ‘하꼬방’이라는 필명을 쓰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해 짧게 설명하자면, 삽화를 그리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의뢰를 받아서 그림을 그릴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색과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칭하고 싶다. 나 또한 나만의 색깔이 담긴 그림으로 나의 그림이 필요한 이곳저곳에 쓰이는 그림을 그리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딘가에 소속되기보다는 대부분 혼자 일을 한다.

프리랜서의 삶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장단점이 뚜렷하다.

장점은 평일 한낮에 카페를 갈 수 있다는 점, 혼자 일을 하니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크게 없다는 점(제로는 아님), 내가 일을 벌리고 스스로 처리하며 다양한 경력치를 쌓을 수 있다는 점 등등.


단점은 일은 있다가도 없다가도 없다는 점, 자기 통제력을 잃으면 건강을 잃는다는 점, 여유롭다는 건 지갑 공간도 여유롭다는 점,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점, 일이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불평하기 어렵다는 점.

(이 모든 사항은 진리의 사바사입니다.)


장단점의 가짓수를 따져보면 단점이 더 많다.

그럼에도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좋아하는 일이라는 차원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무엇이 계속 이 삶을 이어가게 했을까.



하꼬방?


하꼬방은 판잣집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상자라는 의미의 일본어 ‘箱(하꼬)’와 우리나라 말인 '방'을 합친 단어이다.

부정적인 의미의 이 단어를 필명으로 쓴 계기는 엄마의 말버릇이었다.

엄마는 여행이나 친척 집에 다녀오시면 자주 이런 말을 하셨다.

‘하꼬방이어도 우리 집이 제일 좋다~.’

당시에는 하꼬방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크게 궁금하진 않았고 ‘집에 와서 좋으신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대부분 필명을 쓰길래 나도 자연스레 어떤 이름으로 지으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이름을 생각하다 문득 ‘하꼬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단어를 검색해 보니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었지만, 이 단어 말고는 더 이상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집순이에게 이보다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발음도 귀엽고... 그래,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지(후후).’


'상자처럼 작고 허름한 집'을 의미하지만 나는 ‘작지만 그 어느 곳보다 마음 편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그 의미는 내가 그리는 그림의 지향점이기도 했다.

먹고살기 팍팍한 거친 세상 속에서 눈과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귀엽고, 가끔은 투덜대고, 헛소리도 하고,

남들은 안 웃기지만 나는 재밌는, 소박하고도 소중한 작고 작은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나의휴식.jpg

엄마에게서 나에게로, 그리고 내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로 이 마음이 전달되기를,

잔뜩 의미 부여해 본 나의 필명이다.

(엄마는 금시초문일 테지만)



황태 같은 일러스트레이터의 삶


대략 3년 좀 넘게 지내온 일러스트레이터의 생활은 이러하였다.

'개인 작업 + 외주 + 굿즈 제작 외 등등'

개인 작업을 하고 외주를 받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생활하고 다시 개인 작업을 하고

외주가 안 들어오면 굿즈도 만들어 팔아보고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그 돈으로 다시 개인 작업을 하고 무한 반복.


불안함과 성취감의 반복이었다.

매일 같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혼돈 속에서 얼리고 말리고를 반복하는 황태가 된 기분이었다.

불안함에 피가 마르다가도 작업을 하면서 맘에 드는 그림이 나오거나 외주를 무사히 끝내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고통과 기쁨이 반복될수록 진하고 맛 좋은 황태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잔인해)


그런데 맛 좋은 황태의 삶이 지금 나에게 잘 맞는다는 것이다.

고통을 즐기는 변태도 아니고...


대체 나는 왜 이 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을까.



잘 맞는 자리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열정적인 타입의 사람이 부러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었고 경쟁을 극도로 싫어하고 소심하고 겁은 너무 많았다.

하지만 사회는 나와는 정반대인 ‘활발한, 의욕적인, 빠릿빠릿한, 유도리 있는’ 사람을 선호했고

조용하고 느리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겁 많은 아이는 수많은 콤플렉스를 지닌 채로 성장하게 되었다.


나의 성격과 성향들은 학생, 아르바이트생, 회사원을 거쳐 가며 어느 정도 사회화가 되었지만,

속으로는 사회를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으며 결국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정의내렸다.

‘나는 살아가는 데 도움 되는 성질을 하나도 갖지 못하고 태어났을까’라는 생각 속에

두 발은 땅에 붙지 못한 채 계속 둥둥 떠다니는 기분으로 살아갔다.


생각머리.jpg


어린 시절,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특출난 정도의 그림 실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칭찬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다른 칭찬을 받은 기억이 딱히 없었을 수도 있고, 그림 그리는 게 재밌었을 수도 있고, 아무튼 이 기억 하나로 내 마음속엔 그림이 자리 잡게 되었다.


미대에 가고 싶어 고2 때 입시 미술 학원에 갔다가 친구의 그림과 옆에 있는 n수생 언니들을 보고 피어나는 열등감과 불안감을 버티지 못하고 경쟁 시스템에 기가 눌려 3개월 정도 다니다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어찌저찌 대학도 나오고 회사에 다니게 됐지만 자신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은 수년간 찾지 못한 나는 한계에 도달했다.

사회에 나가 일을 해보니 나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의미와 재미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자아 없이 선택한 길의 끝에 나의 자리는 없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영원히 내 속은 텅 빈 상태로, 살아도 살아가는 게 아닐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워 이직을 하거나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 그리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결국 2~3개월 버틸 수 있는 돈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 선택은 지금까지 내 삶의 수많은 선택 중에 가장 잘한 선택으로 꼽는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현재 기준이라 하겠다.)


시작은 단순하게 내가 그린 그림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처음엔 내 그림으로 돈을 번다는 것 자체로 뿌듯했다.

그리고 내 그림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보고 신기하고 기뻤다.

때로는 외주가 몇 개월 동안 없어 통장이 바닥나기도 하고, 열심히 그린 그림의 반응이 처참할 때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크게 절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그림 실력은 올라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나의 그림으로 인해 힘을 얻는다며 따뜻한 말을 남겨주었다.

점점 더 잘 그리고 싶어졌다.

탐나는 작품을 만드는 다른 작가들이 부러워졌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었다.

나에게 이런 욕망과 질투심이 있는지 몰랐다.

그 감정들은 느끼며 힘들면서도 조금은 기뻤다.




나는 여전히 느리고 소심하고 겁이 많고 지나치게 생각도 많은 나를 질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바탕이 되어 나의 그림이 되었다.

겁이 나도 내 그림을 사람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어 새로운 일도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느리고 소심한 만큼 세심한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고 인정하게 되었다.

세상엔 나 말고도 겁이 많고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내 그림을 좋아해 주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은 사람이다.

살아가는데 모든 게 문제였는데 이제는 모든 게 괜찮아졌다.

아니, 오히려 나의 결핍들이 세상과 나를 이어주었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가 있다고 한다.

이제서야 나의 자리를 찾게 되었다.

드디어 두 발이 땅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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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 방지 위원회

- 회사를 그만두고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선택했을 때, 아무 준비 없이 그만두지 않았고 이전부터 몇 년간 그림을 그리며 인스타그램도 운영했습니다. 그 후엔 물론 운도 크게 작용하여 현재까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의욕만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라는 점!

-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일을 해야 한다! 같은 신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 없이 시작한 회사 생활에서 결국 자신을 찾지 못해 회의감이 컸을 뿐, 회사원이든 누구든 모두를 존경합니다(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