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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Feb 08. 2023

스스로를 믿는 이지원

학나경 인터뷰 #22

스스로를 믿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잘 알아야만 한다. 무엇에 약하고 무엇에 강한지, 무엇을 가졌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고 있어야 스스로를 둘러싼 수많은 불확실성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믿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지원은 반복적으로 자신을 궁금해하고 또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지원을 스스로를 믿는 사람이다.


로운. 인생의 모토가 ‘속도는 느려도 옳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이 모토를 갖게 되었나. 

지원. 나는 조금 느린 사람이다. 무언갈 습득하거나 완수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 무엇이든 정확히 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속도는 자연히 빨라지더라. 빠른 속도로만 하는 것보다도 방향을 중시하니까 더 멀리 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속도에 연연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커리어든 인간관계든 통용되는 가치관이다.

로운. 가고 있는 방향이 옳다, 틀리다 라는 걸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지원. 꾸준함의 필요 여부와 에너지 소모율. 재미로 시작했다가 끝을 보지 못하면 많이 스트레스 받는 스타일이라, ‘내가 이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서 결국 남는게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근데 이 말이 성과가 대단해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이 엄청 들어도 힘들지 않다고 느낀다면 옳은 것이다. 성과가 커야한다기보다는 그만큼의 정성을 쏟아도 의미가 있다 싶으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운. 그 버팀 끝에 기다리고 있을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기도 하는지.

지원.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머릿 속에서 그 존버 끝에 찾아 오는 것들을 기대하고 확신한다. 지금은 길을 틀었지만 어릴 때 선택했던 길도, 죽을만큼 힘들었어도 미래에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이악물고 하게 된 것 같다. 확신하게 되면 끝까지 버틴다.

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지원은 튼튼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을 궁금해하신다고 했는데 좌절이라는 걸 안 하실 것 같다. 다른사람이 이지원에게 감정이 듬뿍 담긴 다채로운 공감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어차피 그 사람의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데 어설프게 리액션을 해봤자 서로 불만족스러울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 결국 스스로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또 상황이 너무 힘들면 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거나 벗어날 방법을 찾을 법도 한데 이지원은 피하지도 부딪히지도 않고 버틴다고 말하는 것도, 이지원은 튼튼한 사람 같다.

지원. 그래서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키워드도 ‘존버 체질’이다.내 성장을 이루기까지 남들보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대신 그만큼 발전의 폭도 클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존버 체질’이다


로운. 새로운 자극으로 일상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던데.

지원. 올해 나의 바이브를 New experience라고 정했다. 처음 접하는 상황에 면역력이 없는 편이라 매번 새로운 걸 회피했는데 결국엔 아무것도 안 남더라. 안락한 내 세상에 그대로 고여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일’과는 상관 없는 새로운 자극에 날 던져보기로 했다. 학나경 인터뷰도 그 중 하나다.

로운. 뭔가 새로운 걸 한다고 하면, 결과가 걱정이 되는 것인가. ‘새로운 시도로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남들이 봤을 때도 괜찮다고 보여줄 만한 것이냐’ 라고 했을 때 그걸 만들지 못할 가능성 때문에 안한 것인지.

지원. 나는 에너지 투자 대비 성과를 많이 보는 편이다. 하다못해 취미만 해도 돈과 시간 에너지를 들여서 했는데 이게 나중에는 쓸모 없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나. 그러다보니 시도하기 전에 다 계산만 하고 있다. 행동하지 않으니 진짜 웅덩이에 고여있는 잔잔한 수면이었다. 내 나이도 어린데 집 안에서 유튜브만 보고 있으니까 동떨어진 기분이 들정도였다. 그래서 나중에 나한테 스트레스가 되든 안되든 신경 쓰지말고 그냥 일단 해보기로 했다. 지금은 일단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고. 뭔가 새로운 것에 나를 던져보자는 태도다.



로운. 누가 물어보지 않더라도 먼저 사람들과 깊이 있게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지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고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큰 편이다. 그게 일이든 인간관계든 능숙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다. 그래서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만한 실수를 했을때 쉽게 자책하고 좌절감에 빠져버린다. 이 때 누군가가  해주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라는 말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서 나 스스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잠시 시간을 갖고,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솔루션을 내린다. 때때로 이게 정확한 솔루션인지 확신을 갖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너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 같냐’ 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로운.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의심스러워질 때 좌절감을 느낀다. 나는 자기확신이 강한 편이라, 나 스스로 나를 굳게 믿는만큼 내 의지와 생각들이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내가 자신있어하는 영역에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에 실패하면 좌절감이 몰려온다. 예를 들자면, 내가 기획하는 이벤트들을 진심을 다해 준비했는데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싶을 때 매우 좌절하는 식이다. 당연히 내 감각과 감성이 재미있고 먹힐 것이라고 믿는데, 결국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게 된다면, 내 자존감의 근간인 자기확신이 흔들리는 꼴이라 좌절한다.

지원. 두 번째는 인간관계에서의 선이다. 바운더리 안과 밖의 사람들을 구분짓는 선의 기준이 궁금하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면 알게 모르게 서로의 선을 의식하게 되더라. 그래서 쉽게 이 주제를 꺼내지 못했었다. 아주 가까워진 후에야 들을 있는 선에 관한 대답은 항상 흥미롭다. 나의 경우엔 이 ‘선’의 기준이 꽤 명확한 편이다. 조금이라도 내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가, 결이 같은 사람인가, 함께 있을 때 시너지 효과가 나는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도 아깝지 않은가 등의 기준이 있는데 이에 따라 관계의 거리감이 결정된다. 사람마다 선에 대한 기준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난 이 사람을 내 바운더리 안으로 들인 적이 전혀 없는데 상대는 가깝다고 생각하고 계속 다가오는 경우가 그렇다.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인간관계만큼은 선택과 집중을 택하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회피한다. 이렇게 보니 세상 냉정하긴 한 것 같다.

로운. 간단하다. 세상을 같이 사는 사람인지 혼자 사는 사람인지로 나뉜다. 생각보다 세상을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이용하려 하고, 어떠한 수단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강하게 배척한다. 설령 어느 정도는 진심으로 대하고 어느 정도는 도움을 여기더라도, ‘도움을 받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은 내 바운더리에 들어올 수 없다. 한 개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생각이 없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을 똑똑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타인에게 도움을 받아가며 사는 방식이라고 해도, 본인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사람들이 불편하다.

지원. 나는 좀 보수적인 편인 게, 나는 내 바운더리에 속하지 않으면 에너지와 내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예 선택과 집중으로 내가 에너지를 투자하고 오래 가고 싶다 한 사람들만 챙긴다. 그래서 결이 안맞는 사람이랑도 만나긴 만나는 로운이 신기하다.

로운. 일단 거절을 잘 못하는 게 크다. 보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편이라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차라리 나를 긍정도 부정도 아닌 사람으로 봐줄 수 있다면 좋겠다. 누군가가 나한테 본인과 결이 안 맞으니 연락 안하고 지냈고 싶다고 하면 상처는 받아도 존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세상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런 사람들로부터 어떤 말이 돌지 모르니까 그 부분을 걱정한다.

지원. 솔직히 말하면 나만 챙기기도 힘들다. 이렇게 말하니 약간 이기적이고 오만한 것도 있는 것 같다. 내 기준에서만 사람을 평가하고 생각하는 면은 약간 오만한 거라는 생각도 있다. 근데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상대방 입장에서도 나보다 더 잘 맞는 사람을 찾아서 서로 스트레스 받을 일 안 만드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로운. 나는 오히려 속으로 누군가를 어떻다고 생각하는 건 괜찮다. 한 사람 안에서만 반짝했다가 가라앉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평가를 표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오만하다고 본다. 생각은 자유지만 그 판단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마음대로 이것을 전달해도 전달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거고,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신경 쓰지 않고 전달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나는 그런 사람들이 진짜 오만한 것 같다. 입 밖으로 내놓는 것에 무게감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이 보인다.



로운.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살기위해 실천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지원.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삶을 살고싶다. 작은 변화를 계속 쌓아둬야만 큰 기대를 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반성문같은 다이어리를 6년째 쓰고있다. 다이어리에는 대인관계, 사소한 습관들에 대한 두서없는 지적과 솔루션이 가득 적혀있는데 카테고리는 크게 3가지다. 인간관계, 커리어, 내 성장. 정리 안 된 생각도 적혀있다. 정리 안된 생각들은 쓰면서 정리를 한 번 더 한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라면 힘든 상황을 두서 없이 다 써놓고, 뒤에서 맘에 안드는 것 몇 가지를 적고, 그래서 어떻게 대응할지 몇 가지 방안을 잡고 나면 명확해진다. 그러고 나면 결정을 할 수가 있다. 힘든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그래서 다이어리 보면 별게 다 있다. 욕도 있고 자아 성찰도 있다.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지를 엄청 고민한다.

로운. 그게 일적인 성장인가, 아니면 인간적인 성장인가?

지원. 일적인 성장이 70프로라면 내적인 성장은 30% 정도로 보지만 근데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 짓기도 좀 애매하다. 사실 내적인 성장에도 일적인 요소가 다 포함돼 있으니까. 일이든 인간관계든 좀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내가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일단 자기 확신이 강하고, 요령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웃풋도 좋다. 그리고 자기 상처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라, 이제 일이든 인간관계든 나도 그런 면에서 발전했으면 좋겠다.

로운. 다이어리를 쓰고 나면 다시 읽기도 하는지.

지원. 가끔 읽는다. 이때는 이런 일도 있었구나, 이때는 이런 결론을 내렸었구나 하기도 하고 그때 당시에 원하던 걸 이뤘나도 보고. 그 때 고민하던 인간관계의 끝은 뭐였는가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한창 고민할 때 내가 했던 선택들이 예상한 대로 대체로 이루어지는 걸 곱씹고 나면, ‘역시 한결 같아, 역시 나는 날 알아, 잘 해왔구나.’ 하면서 뿌듯하다.

로운. 본인이 되고 싶은 모습의 이상향이 있다면?

지원.  근거 있는 자신감과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고싶다. 정말 그 사람이 잘났건, 안 잘났던 간에 자신감이 있으면 한번 더 보게 되고 리스펙 하게되는 것 같다.

로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는지.

지원. 엄마. 인간관계든 뭐든 불같은데 컨트롤을 잘해서 자기 편으로 만들고, 노하우를 나에게 이야기해주시는데, 그대로 해보면 그게 맞고, 무슨일을 하든 자기 가치는 저 위에 있는데 이일을 한다라는 프라이드가 있다. 그래서 빛난다. 그리고 말 한마디 한마디하는 것도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공격을 당하면 가차없이 밀어붙여서 기를 눌러버리고, 그런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고 멋있다.

로운. 이지원이 되고 싶은 지혜로운 사람이 어머니인 것 같다.

지원. 엄마와 미주알 고주알 이런 얘기 다 안 하지만,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이 기분이 드는 게 당연한 건지 여쭤보면 나에게 필요했던 걸 다 얻을 수 있어서 항상 만족한다. 정신적인 공감도 나는 필요해서 엄마한테 전화하는 건데, 거기에 엄마는 현실적인 방안까지 덧붙여주신다. 말하지 않아도 지혜롭게 대답을 주시는 게 되게 멋있다.


로운. 공식 질문이다. 학나경을 제외하고 자기소개를 한다면

지원. 의미 과몰입러. 의미를 찾아야 재미를 느끼고, 재미를 느껴야 여기에 시간을 쓸 가치를 느낀다. 그래서 의미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한다. 나는 의미 과몰입러다.


이지원은 밀도 높은 시간을 살고 싶어 한다. 본인의 시간 속에 의미를 담고, 그 의미를 온전히 채우기 위해 곱씹고 또 곱씹는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 위에서 삶을 만들어가는 중인 그의 신념은 충분히 깊다. 그 여정 속에서 지혜로워지고싶어하는 이지원의 모습이 점점 기대된다.


작성자 손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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