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헤어지면 돼.
달릴 때 심장의 템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 있다.
대충 120BPM 쯤.
근데 내 심장은 발라드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아마 80BPM 정도.
빠르게 움직이는 몸이 아니라, 느린 문장 쪽에.
오랜 시간 “빠르게” 살았다.
분 단위로 쪼개고, 일정으로 봉합하고,
할 일 목록으로 하루를 밀어붙였다.
그 속도는 꽤 잘 작동했다.
그 속도는 가끔, 삶의 온도를 빼앗는다.
빠르게 살았다는 건 건조하고 감정이 없는 삶이었다.
기분을 묻기 전에 다음 일을 처리했고,
마음을 느끼기 전에 다음 화면을 열었다.
스스로를 “효율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감정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듣지 않았다.
가사가 이유 없이 불편했다.
그냥 연주곡만 들었다.
취향이 아니라 규칙이었다.
모든 사랑 이야기와 이별 이야기는
내 일이 아닌 쪽으로 미뤄두었다.
봄도 여름도 아닌 어느 날
운전 중 흘러나온 한 줄이
세워 둔 규칙에 아주 작은 구멍을 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그 한 줄은 묘하게 내 얘기 같았다.
한때는 분명히 스스로를 믿었던 사람.
따뜻하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
흔들리기 싫어서, 차라리 아무것도 듣지 않기로 했던 사람.
그 문장은 예전의 나를 데려왔다.
가사는 내 이야기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뛸 때, 발라드를 듣는다.
내 호흡은 빠른 비트보다, 느린 문장에 더 잘 맞는다.
박자가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가사가 데리고 간다.
“조금만 더”라는 한 줄이 나오면
속도를 한 칸 올린다.
속도 버튼이 아니라, 마음의 버튼이 눌리는 느낌으로.
발라드는 박자보다 온도를 먼저 맞춰 준다.
빠른 비트처럼 등을 떠밀지 않고,
느린 문장으로 숨을 먼저 고르게 한다.
결과적으로 박자를 맞춘다는 건
오늘의 온도를 맞추는 일이 된다.
이제는 발라드 템포에 맞춰서 살아가 보려고 한다.
느리게 가 아니라, 다정하고 따뜻하게.
마음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두는 방식으로.
심장은 여전히,
그 느린 노래에 맞춰 뛰고 있으니까.
조련사가 내 얘기에 공감했다.
본인도 가사가 가끔은 불편하다고.
마음이 바빠서 그런 거라 했더니.
나보고 T가 아니고 F라 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다정하게 살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