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을까.
사진이 멋져 보였다.
아니, 사진이 아니라 사진 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 모습이,
세상을 “찍는” 게 아니라 “골라내는” 것처럼 보여서.
그게 왠지 멋졌다.
그래서 나도, 멋짐을 장착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전공과는 다른 길로
사진으로 나의 첫 사회생활을 열었다.
잡지사 사진기자로, 프리랜서로
뜨거운 20대를 보냈다.
그러다 인터넷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때부터 피사체가 바뀌었다.
사람에서 컴퓨터로.
표정에서 오류창으로.
그 뒤로 쭉 나는 컴퓨터와 싸우고 있다.
셔터는 누르지 않고
엔터는 하루에 수백 번은 누른다.
순간을 잡던 손이
이제는 “새로고침”을 잡는다.
사진은… 아주 오래전 첫사랑 같다.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먼저 두근거리는데,
막상 다시 대면하자니
갑자기 극히 현실적이 된다.
가까운 사람이 말한다.
“사진 다시 해봐.”
나는 그 얘기를 계속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정확히는… 듣는다.
다만, 실행이 없다.
마음이 아직 로딩 중이다.
사진은 마음을 쓰는 일이다.
몸도 머리도 아닌
마음을 쓰는 일.
헌데 마음을 너무 오래 쓰지 않았다.
먼지가 가득한 마음이다.
다시 돌리면 삐그덕거릴 게 분명하다.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사진은 피사체에 마음을 담아
순간을 그려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오랜 시간
입력-처리-출력,
0과 1만 있는 세계에 살았다.
거긴 마음이 종종 “불필요한 값” 취급을 받는다.
감정은 옵션이고, 공감은 플러그인 같다.
가끔은 업데이트도 안 된다.
그래서 자꾸 묻게 된다.
다시 피사체에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
담을 마음이 남아 있을까?
물음표만 백만 개다.
그 시절에는 이랬다.
피사체의 순간을 잡고,
어두운 작업실로 돌아와
필름을 현상하고,
확대기에 필름을 넣고,
인화지를 꺼내
필름 속 순간을 인화지에 옮기고,
현상액에 담갔다가
서서히 떠오르는 장면을 꺼낸다.
그리고
딱 원하는 순간을 고정시켜
완성한다.
몸이 기억하는 건 오래간다.
잠깐 떠올렸을 뿐인데
작업 순서가 필름처럼 돌아간다.
마음보다 손이 먼저 기억하는 게
놀랍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완전히 잊진 않았다는 뜻이니까.
첫사랑과 마주할지는
아직 고민이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나는 사진을 잊은 적이 없다.
그냥… 너무 오래
다른 세계에 접속해 있었을 뿐이다.
내가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