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현상으로 남는다.
마음'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걸까?
마음이 정말 존재하는지,
나는 가끔 의심한다.
내 안에 존재한다고 하기엔
너무 자주 내 뜻을 배반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다면, 분명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심장처럼 무게가 있거나, 뼈처럼 형태가 있거나, 최소한 위치라도.
그런데 마음은 늘 애매하다.
없다고 하기엔 너무 선명하고,
있다고 하기엔 너무 만질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을 가슴에 둔다.
심장이 빨리 뛰면 “마음이 놀랐다”라고 말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지면 “마음이 무너졌다”라고 말한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우리는 그 반응을 마음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마음은 장기가 아니라,
몸이 만든 현상 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냥 신경과 호르몬과 기억의 합성어일까.
‘합성어’라고 부르기엔 마음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불안하다.
아무 일도 없는데 마음이 먼저 경보를 울린다.
“괜찮아”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마음은 논리를 모르고, 설명서를 읽지 않는다.
그런 순간, 나는 마음이
“나와 별개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내가 내 안에서 타인을 만나는 기분.
마음을 조정하려고 할 때마다
마음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더 단단해진다.
마음을 다스리겠다.
마음을 정리하겠다.
마음을 비우겠다.
이 문장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마음을 '내가 다룰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다.
마음은 내가 조정하려고 손을 뻗는 순간,
더 멀어진다.
“왜 이래?”라고 묻는 순간, 마음은 더 커지고
“이제 잊어야지”라고 결심하는 순간,
마음은 더 오래 남는다.
이런 가설을 세워본다.
마음은 ‘존재’가 아니라 ‘현상’이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우리는 바람을 직접 보지 못하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방식으로만 안다.
마음도 그렇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흔들리는 방식이 있다.
말투가 달라지고,손이 차가워지고,
어떤 문장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때 나는 마음을 발견한다.
마음 자체를 본 게 아니라,
마음이 지나간 자리를 본 것이다.
마음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이런 질문과 같이 한다.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는가?”
마음은 통제보다 반응으로 먼저 나타난다.
늘 한 박자 빠르다.
그래서 나를 당황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궁금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을 택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없다면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침묵이 하루를 흔들고,
끝난 일인데도 같은 장면이 재생되고,
말 한마디가 몸의 온도를 바꾼다.
그건 단순한 정보 처리로는 부족하다.
거기에는 ‘나의 의미’가 개입한다.
마음은 내가 세상에 붙여둔 의미들의 총합이다.
의미가 쌓이면 무게가 되고,
무게가 생기면 방향이 생긴다.
그 방향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보다,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마음은 존재한다.
다만 고정된 자리로 존재하지 않는다.
흔들리며 생기고, 사라지고, 다시 생긴다.
어쩌면 마음이란
내가 나를 완전히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러니 마음이 말을 안 듣는 날은
이렇게 생각해도 좋겠다.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살아 있어서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은 대체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너의 마음은 어떤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