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건.

그것만으로 충분한 날들이 있다

by hako

생일 카드에만 존재하는 문구가 있다.
너무 예뻐서 오히려 현실에서 잘 쓰지 못하는 말.


“존재해 줘서 고마워.”


대부분의 감사는 조건을 달고 온다.
도와줘서, 함께해 줘서, 버텨줘서,

웃게 해 줘서.
감사는 보통 ‘무언가를 해준 것’에 붙는다.
그래서 ‘존재’만으로 감사하는 건

문장으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비슷한 내용을 만났다.
사람의 가치는 성취나 역할로 증명되는 게 아니라,
그보다 먼저 ‘있음’으로 성립한다는 이야기.
그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좋은 말”로만 지나갔다.


그 문장이 나중에 다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에,
그냥 문득.


우리는 사람을 자주 기능으로 기억한다.
내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내 시간을 얼마나 채워주는지,
내 기분을 얼마나 관리해 주는지.
관계는 어느새 성과표처럼 굴러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계산이 멈추는 관계가 있다.


많이 대화하지 않아도,
계절이 몇번 지나도,
특별히 무엇을 해주지 않아도,
그냥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 한쪽이 조용해지는 존재.


그 존재는 나에게
무언가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그에게서 무언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저 서로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
관계가 성립하는 느낌.


그때서야 생일 카드 문구가
현실의 언어가 되었다.


감사는 사건이 아니라

감각일 수 있다는 것.
무언가를 ‘얻어서’가 아니라
무언가가 ‘있어서’ 생기는

감정이라는 것.


감사의 기준을 조금 바꿔본다.

잘해줘서 고맙다, 보다 먼저
그냥 그렇게 존재해 줘서 고맙다.


그 말은 거창한 사랑 고백도 아니고,
관계를 과장하는 선언도 아니다.

그냥 내가 세상을 조금 덜 계산적으로

살고 싶어서 선택한 문장이다.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그리고 어떤 감사는
그 충분함을 알아차렸을 때 조용히 시작된다.



존재 자체가 공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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