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개인지식관리(PKM)

AI가 답하는 시대에, 왜 개인지식관리(PKM)가 더 중요해졌을까?

by hako

요즘 왜 기록과 PKM이 중요해졌는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모르면 찾고, 찾으면 읽고, 읽으면 내 식으로 정리했다.

조금 느렸지만 마지막에는 꼭 내 머리를 한 번 거쳐 갔다.

정보가 바로 답이 되지는 않았고, 내 안에서 한 번 섞이고 뒤집히고 정리되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생각보다 먼저 AI를 연다.

답을 내가 직접 내려 하기보다 AI에게 묻게 된다.

그리고 꽤 자주, 내가 내놓는 답보다 AI의 답이 더 빠르고 더 그럴듯하다.

어쩌면 더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답을 내야 하는 일이 많다.

나는 오랫동안 그 답을 정리하고 만들고 설명하는 일을 해왔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고, 어떤 방향이 맞는지 판단하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으로 바꾸는 일.

그런데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뭔가.'
'그럼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조금 우스운 일이다.

오랫동안 답을 만들던 사람이, 이제는 자기 역할을 두고 질문부터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전 같으면 내가 한참 붙들고 정리했을 내용이 이제는 AI 안에서 먼저 형태를 갖춘다.

요약도 해주고, 초안도 써주고, 비교도 해주고, 말투까지 제법 그럴듯하다.

가끔은 이 정도면 나보다 덜 피곤한 버전의 나 아닌가 싶다.

심지어 군말도 없다. 착하다.


편리하고 놀랍다. 그리고 조금은 불안하다.

내가 오래 쌓아온 것들이 한 번의 프롬프트 앞에서 금세 비슷한 모양으로 나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반나절 걸리던 일이 몇 분 안에 끝난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야 할지, 내 희소성이 프롬프트 창 앞에서 조용히 재평가되고 있다고 해야 할지,

가끔은 표현이 애매하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더 해보니 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AI는 답을 많이 가지고 있다.

평균적으로 좋은 답을 내고, 그럴듯한 문장도 잘 만든다.

그런데 그 답이 곧바로 나의 답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지나온 시간, 내가 실패했던 방식,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기준, 중요하게 여기는 순서까지 저절로 알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같은 질문을 받아도 누구의 맥락으로 답하느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진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나의 경험이고, 판단이고, 언어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해진다.


기록은 단순히 메모를 남기는 일이 아니다.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두는 일이고, 지나간 경험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일이고,

나도 모르고 쓰고 있던 기준을 문장으로 꺼내 놓는 일이다.

머릿속에만 있을 때는 분명히 아는 것 같았던 것도 막상 쓰려고 하면 흐릿하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무엇을 우선했는지, 어떤 실패를 통해 기준이 생겼는지는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진다.

그렇게 사라진 경험은 분명 내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나도 다시 꺼내 쓰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PKM이 필요하다.


기록이 생각을 붙잡아 두는 일이라면,

PKM은 그 생각을 다시 꺼내 쓸 수 있게 만드는 구조다.

PKM은 기록을 쌓아 두는 기술이 아니라 운영하는 기술이다.

그때그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찾을 수 있게 만들고,

서로 연결되게 만들고, 판단의 근거로 다시 꺼내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 안의 암묵지를 밖으로 꺼내 명시지로 바꾸는 구조다.

어렴풋이 알던 것을 분명하게 쓰는 힘, 감으로 하던 것을 설명 가능한 기준으로 바꾸는 힘.

그 힘이 있어야 AI도 더 잘 쓸 수 있다.


내 안에 정리된 것이 없으면 AI는 그저 보편적인 답을 준다.

무난하고, 친절하고, 제법 똑똑하지만 결정적으로 내 것은 아닌 답이다.

하지만 내가 기록해 둔 경험과 기준이 있으면 AI는 내 생각의 초안을 만들고, 내 판단을 확장하고, 내 방식으로 일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때부터 AI는 나를 대체하는 존재라기보다, 내가 축적해 둔 나를 더 잘 꺼내 쓰게 해주는 도구가 된다.

결국 AI 시대의 PKM은 정보를 모으는 일이 아니다.


나를 남기는 일이다.


세상에 답은 더 많아질 것이다.

어쩌면 너무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더 중요해지는 것은 정답을 많이 아는 능력보다,

어떤 기준으로 답을 고르는 가인지도 모른다.


이제 AI가 답을 잘하는 시대를 인정한다.

대신 그 시대일수록 내게 더 필요한 것은 나만의 경험과 판단이 기록되고 관리되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뻔한 정보가 아니라 내가 살아낸 시간, 내가 통과한 일, 내가 끝내 남긴 문장.

그것이 쌓여 비로소 나만의 것이 된다.


기록은 나를 남기는 일이고, PKM은 그 나를 다시 꺼내 쓰게 하는 방식이다.



지금부터 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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