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봄이 시작되기 전에 나무의 가지를 친다.
죽은 가지를 먼저 정리한다.
이미 제 할 일을 마친 가지들.
더는 자라지 못하는 가지들.
붙어는 있지만 앞으로의 계절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
그다음에는 방향을 본다.
엇나가게 자라는 가지,
안쪽으로 파고드는 가지,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며 엉키는 가지를 잘라낸다.
잔가지도 덜어낸다.
조금 아깝게 느껴져도
힘이 흩어지지 않도록
튼튼한 쪽으로 몰아준다.
선택과 집중.
그 말이 나무에게도 필요할 줄은 몰랐다.
나는 전지를 하면서
사람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사는 일도 비슷하다.
모든 것을 다 붙들고 갈 수는 없다.
이미 끝난 마음을 정리해야 할 때가 있고,
나를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습관을 멈춰야 할 때가 있다.
겉으로는 무성해 보여도
실은 힘만 나누고 있는 관계와 일들도 있다.
살아낸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다른 무언가는 선택되지 못한다.
한쪽으로 힘을 모으기 위해
다른 쪽은 접어야 한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은 늘 조금 단호하고,
조금 미안한 일이다.
우리는 대개 선택한 것의 필요만 말한다.
그래야 한다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세상을 살아내려면 집중이 필요하다.
흩어진 마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고,
아무것도 덜어내지 않으면
정작 키워야 할 것에 힘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선택되지 못한 것들의 슬픔도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
잘려 나간 가지가 모두 쓸모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가지는 단지 자리가 맞지 않았을 뿐이고,
어떤 가지는 이번 계절의 방향과 달랐을 뿐이다.
선택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존재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잘려나간 가지였을지 모른다.
어떤 관계에서는 남겨지지 못했고,
어떤 마음에서는 이번 계절과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까지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함께 있었던 시간에는
분명 그때의 자리와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삶에서도 그렇다.
놓아야 했던 마음,
끝내 고르지 못했던 길,
지금의 나에게서 밀려난 어떤 바람들.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서
선택되지 못했던 나의 자리.
그것들이 틀렸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번 계절의 방향이 달랐을 뿐이다.
그래서 가지를 치는 일은
단순히 덜어내는 일이 아니라
남길 것을 더 잘 자라게 하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남지 못한 것들까지
함부로 의미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 일 같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선택과 집중을 한다.
무엇을 남길지 생각하고,
무엇을 덜어낼지 망설이고,
어디에 힘을 모아야 할지 다시 본다.
그러면서도 잊지 않으려 한다.
선택한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선택되지 못한 것들에도
분명 한때의 마음과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잘려나간 가지였던 적이 있었다 해도,
그 또한 한때 그 나무의 일부였다는 것을.
봄은
아무것도 자르지 않은 나무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남길지 끝내 결정한 나무에게 온다.
나도 그렇게
내게 필요한 것들 쪽으로
조금 더 단단하게 자라가고 싶다.
찬란한 봄이 슬플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