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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Sep 01. 2021

 여기 보아요, 여보

문-마경덕

Image.Pinterest/바다와 쪽문




             마경덕


문을 밀고 성큼

바다가 들어섭니다

바다에게 붙잡혀

문에 묶였습니다

목선 한 척

수평선을 끊고 사라지고

고요히 쪽문에 묶여

생각합니다

아득한 바다가, 어떻게

그 작은 문으로 들어 왔는지

그대가, 어떻게

나를 열고 들어 왔는지









   이게 얼마 만인지...
펜을 들고도 겨울눈 내리는 벌판 한가운데 얼은 나무처럼 한참을 서있네. 매일 쪽지 글을 써 호주머니에 슬쩍 넣어주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일까 했었는데.


기 좀 아요, 여보.

아니,  좀 아요.

그럼 나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건가.


   <당신과 여보>라는 말 둘 다 써본 적 없는 나. 

거리감 때문이었지. 뭔지 모를. 가까운 우리 사이에 놓아두기엔 고지식한 말이라 여겼던 거지. 그런데 그 고루한 말을 쓰지 않았다고 우리 둘 사이가 더 가까워졌는지를 묻는다면 글쎄, 꼭 그런 것도 아닌 듯해.

   '나와 함께 떠나고 싶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작고 어렸지. 스리랑카... 어떤 나라인지 몰라 서둘러 여기저기 찾아보았던. 그때 난 그보다 더 먼 곳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세상 어디든 대수롭지 않았지. 단 한 명으로 충분했으니까.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니까.

시애틀 다운타운애서 바라본 5월의 태평양 바다


   미국에서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지.
무한히 깊고 넓은 태평양 바다. 당신은 그 바다를 닮은 비밀. 그 우주 같은 비밀은 아이들이 나고 자라는 속도를 따라 함께 커져갔지. 먼 말을 쓰지 않았는데도 우리 사이를 더 좁히지는 못한 채 어느 날 미궁 속을 헤매이는 <나>를 보았지. 실 끝을 붙잡지 않고 무모하게 뛰어들었으니 빠져나갈 방도를 알 턱이 있겠나.

   그러나 당신은 미궁이어서가 아니라 거친 바다여서가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물이어서 무서웠어, 난.
물속에 손을 집어넣고 휘저으면 찰랑거리는데 손가락으로 집어 올릴 수는 없는. 보이지 않는 공기와 내 손의 열기로 이내 흔적도 없이 마르기만 하는 물. 차라리 차가운 얼음이라서 윤곽이 보일 때가 더 좋구나 했지만 얼음은 이내 물로 흩어지고 그 물은 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동안에도 감쪽같이 증발해버리곤 했지.

사는 일,
산다는 것 말이야,
내 고독과 당신 고독을 보는 일 같아.
당신이라고 외롭지 않았을까.
나는 가닿을 수 없는 거기.
각자의 독존獨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한 사람과 한 사람으로
남는 일,
그게
산다는 것 아닐까 말야.


나는 여전히 <여보, 당신>이라는 말 어색하기만 해.
한 사람으로 남을 나, 내가
한 사람으로 남을 너,를 칭하는 말로는.
당신은 나, 니까
당신은 자기인 거야.

나란히 걷는 길,
세월의 강을 사이좋게 나누어
맞잡는 두 손 그 사이
높임말, 당신 대신
여봐요, 하며 불렀다던 어른들의 말 대신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이니
난, 자기로 부를래.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어려워.
그래서 정작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지 몰라.
하여 사랑에 다시 빠지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해.
여기를 떠나게 될 그 순간까지,
그 모습 그대로.


뒷마당 문





                        조앤


문을 엽니다.
바다가 들어올 수 있게

고요히 쪽문에 기대어
헤아립니다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내 발 앞에
닿으려 애쓰는
아득한 마음을

그대가
밀려올 수 있도록
작은 문,
열어둡니다

Image.Pinterest


In the universe, there are
things that are known, and
things that are unknown,
and in between, there are DO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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