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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스펙트럴>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미군

by 이학후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는 최근 영화,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괴물>, <설국열차>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는 넷플릭스가 제작비 5000만 불을 전액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작품인 <스펙트럴>(한국 넷플릭스에선 '고스트 워'란 제목으로 서비스 중이다)도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영화 중 하나로 감상한 사람들의 호평을 받으며 입소문이 난 상태다.


20세기폭스, 워너브라더스, UPI, 디즈니, 소니, 파라마운트 등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가 내놓은 영화가 아니라고 <스펙트럴>을 비디오 영화나 B급 영화로 오해해선 곤란하다. <스펙트럴>은 넷플릭스가 <고질라>, <퍼시픽 림>,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을 만든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웨타워크숍이 특수효과를 담당한 A급 프로젝트다. 배우로는 <13시간>의 맥스 마티니, <뉴스룸>으로 친숙한 에밀리 모티머,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과 조연으로 활동하는 브루스 그린우드 등이 나온다. 각본엔 <컨트롤러>의 연출과 각본을 담당하고 <본 얼티메이텀>, <라스트 스탠드>의 시나리오를 쓴 조지 놀피가 보인다. 메가폰은 신예 닉 마티유가 잡았다.


<스펙트럴>은 러시아가 점령했다가 후퇴한 '몰도바'에 주둔하던 미군이 반란군과 내전을 치르던 와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작전을 수행하던 미군이 에너지를 파악하는 고글을 쓰면 실체를 볼 수 있지만,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한 '보이지 않는 적'에게 무참히 당하자 군은 무기를 개발하는 연구원 클라인 박사(제임스 뱃지 데일 분)를 현지로 급파한다. 몰도바에서 활동 중이던 CIA 소속의 매디슨 요원(에밀리 모티머 분)은 반란군이 개발한 새로운 '은폐 기술'이라고 규정하지만, 클라인 박사는 희생자의 피부가 타고 장기가 냉동되는 등 부검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면서 판단을 미룬다. 몰도바의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함이 유령을 불러냈다고 믿는다.



'보이지 않는 적'(영화에선 유령 같다는 의미를 가진 스펙트럴(spectral)이라 지칭한다-기자 주)과 미군이 싸우는 구조는 <프레데터>를 연상케 한다. 클라인 박사, 메디슨 요원, 특수부대가 '스펙트럴'과 전투를 벌이는 초반부 장면은 <에이리언 2>의 도입부를 상당히 참고한 인상이다. '스펙트럴'의 공격 속에서 힘겹게 생존하던 아이들이 나오고, 군인들이 그들의 안내를 받아 탈출 지점을 찾아가는 설정이 나오기에 기시감은 크다. 언뜻 <다크 아워>의 장면도 겹쳐진다.


인간이 외계인에게 무력으로 맞서던 <프레데터>, <에이리언>와 달리, <스펙트럴>의 적에겐 총이나 수류탄 등 인간이 사용하는 어떤 무기도 통하질 않는다. 마치 유령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접한 인간은 생각한다. "그것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맞설 것인가?" <스펙트럴>의 흥미로움은 여기에 있다.


<스펙트럴>의 상상력은 웨타워크숍의 기술력을 만나 현실감을 얻는다. 형체가 없는 '스펙트럴'을 묘사한 특수 효과는 단연 일품이다. 미군의 무기와 로봇엔 근미래의 상상력이 입혀졌다. <스펙트럴>은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면서 <고스트 버스터즈>의 밀리터리 버전을 접하는 느낌도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스펙트럴'과 미군의 전투 장면은 FPS 게임(게임 플레이어가 1인칭 시점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슈팅 게임)을 즐기는 세대에게 친숙한 시점을 제공한다.



<스펙트럴>은 시각적인 요소 외에 이야기의 재미와 주제 의식도 겸비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매년 영화화되지 않은 각본 중에 제작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것들을 모아 '블랙 리스트'란 이름으로 발표한다. <스펙트럴>의 각본(IMDB에선 이안 프레드와 닉 마티유를 '스토리'로 표기했다)을 쓴 이안 프레드는 2010년과 2011년에 연속으로 블랙 리스트에 시나리오를 올린 이야기꾼이다. 그의 펜 끝에서 태어난 <스펙트럴>은 '스펙트럴'과 미군이 싸우는 구조 속에 인간의 욕망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를 담고 있다.


<스펙트럴>엔 "전쟁은 좋은 사업이야"란 대사가 나온다. <스펙트럴>은 전쟁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을 유령 같은 형체를 지닌 '스펙트럴'로 실체화해서 주제를 전달한다. 극 중에서 군인이 마치 자신을 닮은 얼굴을 한 '스펙트럴'가 마주하는 순간은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쟁의 비극과 인간의 탐욕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풀어낸 <스펙트럴>은 SF 장르가 2016년에 선사한 수작이다. 또한, 앞으로 넷플릭스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무척 궁금하게 한다. <스펙트럴> 같은 작품이라면 당연히 대환영이다.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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