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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May 28. 2018

영화 리뷰 <사다코 대 카야코>

<링>의 사다코와 <주온>의 카야코가 펼치는 세기의 호러 격돌



발단은 만우절이었다. 2015년 4월 1일, 일본 커뮤니티 사이트 '2ch' 게시판에 <링>의 귀신 사다코와 <주온>의 원혼 카야코의 대결을 합성한 포스터가 올라온 일이 벌어졌다. 한 일본 네티즌이 장난삼아 제작한 포스터에 <노로이>, <나고야 살인사건>, <원 컷-어느 친절한 살인자의 기록>을 연출한 시라이시 코지 감독이 "만약에 정말 영화화를 한다면 나에게 맡겨 달라"는 글을 SNS에 올리면서 사건은 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링>의 저작권을 가진 '카도카와'와 <주온>의 판권을 지닌 'NBC 유니버셜 엔터테인먼트'가 관심을 보이면서 사다코와 카야코는 정말로 맞붙게 되었다. <링>의 원작 작가 스즈키 코지와 <주온>의 감독 시미즈 다카시도 제작에 참여하여 두 영화의 세계관이 만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메가폰과 각본은 당연히 시라이시 코지 감독에게 맡겨졌다.


<사다코 대 카야코>는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영상을 본 사람이 무언의 전화를 받게 되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사다코에게 살해당한다는 <링>의 서사와 집에 들어오는 사람은 카야코가 끝까지 뒤쫓아 죽인다는 <주온>의 이야기를 함께 진행하면서 저주 보따리를 풀어간다. 


'링'의 주인공은 대학생 유리(야마모토 미즈키 분)다. 유리는 친구 나츠미(사츠가와 아이미 분)에게 부모님의 결혼식 비디오 테이프를 DVD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오래된 비디오 플레이어를 샀다가 그 속에 있던 사다코의 저주가 서린 비디오테이프를 접한다. '주온'의 사연은 부모님의 사정으로 낯선 동네에 이사를 온 고등학생 스즈카(타마시로 티나 분)가 들려준다. 스즈카는 친구들에게 폐가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괴담을 듣고 난 후 극도의 불안감과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사로잡힌다.



<사다코 대 카야코>는 유리와 스즈카로 진행하던 두 개의 저주가 후반부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를 지녔다. 각기 진행하는 병렬식 구조에서 무게 중심은 '링'에 상당히 쏠려있다. 사다코의 저주를 기반으로 카야코의 원한을 살짝 얹어 놓은 듯한 <사다코 대 카야코>의 구조는 1962년 일본을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킹콩 대 고질라>를 떠올리게 한다.


<킹콩 대 고질라>도 고질라의 소란에 킹콩의 난동을 슬쩍 끼워 넣으면서 "괴물은 괴물로 응수한다"는 전개를 이끌었다. <사다코 대 카야코>는 "저주는 저주로 맞붙는다"고 외치며 사다코와 카야코를 소환한다. 20세기의 빅 매치가 킹콩 대 고질라였다면, 21세기의 한판 승부는 사다코 대 카야코다.


다른 세계에 존재하던 두 영화가 한 편으로 합쳐지면서 설정엔 조정이 가해졌다. <링>에선 저주의 비디오를 본 순간부터 일주일 후에 죽었지만, <사다코 대 카야코>에선 이틀로 시간이 줄어들었다. '속전속결'의 원칙은 카야코에도 해당한다. <주온>에선 집에 발을 들인 사람이 예상치 못한 때에 카야코와 토시오를 만나 죽임을 당했으나 <사다코 대 카야코>는 집에 들어오면 곧바로 응징을 내린다.


'퇴마'의 등장은 <사다코 대 카야코>가 가미한 새로운 볼거리다. 나츠미에게 행해진 퇴마 의식에서 퇴마사와 사다코가 벌이는, <엑소시스트>를 연상케 하는 기의 싸움은 <링> 시리즈에선 볼 수 없었던 신선함이 느껴진다. 강한 염력을 가진 맹인 소녀 타마오(키쿠치 마이코 분)와 뛰어난 퇴마 실력을 보여주는 케이조(안도 마사노부 분)는 <링>과 <주온> 시리즈가 잃어버린 활력을 돋우어 준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세계 극장가를 강타했던 일본 호러 영화의 열기를 이끈 장본인은 <링>과 <주온>이다. <링>은 비디오를 통해 퍼지는 바이러스를 보여주며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의 불안을 포착했다. 저주받은 집의 공포를 감지한 <주온>은 서구에서 '하우스 호러'가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두 영화의 현주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링>은 <링-라센>, <링 2>, <링0-버스데이>를 지나 <사다코 3D: 죽음의 동영상>, <사다코 2>에 이르러 "무감각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주온>도 비디오판 극장판, 할리우드에서 만든 <그루지>, <그루지2>, <그루지 3>란 영광의 시절을 뒤로 한 채로 <주온-원혼의 부활>, <주온: 끝의 시작>, <주온:더 파이널>를 거치며 "무한 반복의 늪에서 허우적댄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사다코 대 카야코>는 <링>과 <주온>이 가진 공포의 교집합을 잘 찾아냈다. "왜 싸우게 되나?"를 풀어가는 전개엔 영리함이 엿보인다. 사다코와 카야코가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킹콩 대 고질라, 늑대인간 대 프랑켄슈타인,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 프레디 대 제이슨이 싸울 때 두 영화의 완벽한 조화를 기대해선 곤란하다. 이런 이벤트는 '만남' 자체로 의미 있는 법.


1990~2000년대 일본 호러 영화를 즐겼던 분이라면 <사다코 대 카야코>란 축제를 마음껏 즐기시길 바란다. 어쩌면 이 영화가 <링>과 <주온>이 보내는 작별 인사일지도 모르니까.


20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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