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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Feb 14. 2016

영화 리뷰 <러브 앤 피스>

소노 시온은 사랑의 힘을  믿고 있다


22세에 <나는 소노 시온이다!>라는 단편 영화로 주목받고, 30대에 '도쿄 가가가'라는 퍼포먼스 집단을 이끌던(당시 활동상은 <배드 필름>에 기록되어 있다) 소노 시온은 2002년 <자살 클럽>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러브 익스포져>, <차가운 열대어>, <지옥이 뭐가 나빠>, <도쿄 트라이브> 등을 발표한 소노 시온은 2015년에 <러브 앤 피스>, <신주쿠 스완>, <리얼 술래잡기>, <모두가 초능력자>를 일본에서 개봉시켰다(<더 위스퍼링 스타>는 2015년엔 일본에서 한 개 극장에서 개봉했고, 2016년에 확대 개봉에 들어간다). 폭발적인 창작욕은 10년 전, <기묘한 서커스>, <노리코의 식탁>, <헤저드>, <인투 어 드림>을 한해에 쏟아내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실패해도 좋으니까 새로운 것에 계속 부딪히고 싶다고 말하는 소노 시온의 창작욕의 근원은 무엇일까? 2015년에 내놓은 작품 중에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감독 스스로 “내 영혼의 집대성”이라고 선언한 <러브 앤 피스>는 그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직장에서 낙오자 취급을 받던 스즈키 료이치(하세가와 히로키 분)가 우연히 작은 거북이에 마음을 빼앗기고, 남몰래 사서 ‘피카돈’이란 이름을 붙여 주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러브 앤 피스>는 그동안 발표했던 소노 시온의 영화와 색채가 사뭇 다르다. 금기, 범죄, 에로, 폭력, 죽음 등의 용어로 유명한, 미성년자 관람 불가의 장벽이 굳건하던 소노 시온 월드를 벗어나 처음으로 12세가 관람이 가능한 세계로 진입했다. 직장 동료들이 알아채자 당황한 스즈키가 피카돈을 화장실에서 버리면서 나오는 지하세계는 이전의 소노 시온에게선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이다. 하수도를 따라가던 피카돈은 인간의 무관심과 이기심 속에 버려진 반려동물과 장난감을 보살펴주는 할아버지(니시다 토시유키 분)가 있는 지하세계로 흘러간다. 디즈니의 가족 영화에서 느껴지던 온기와 나카시마 테츠야의 <파코와 마법 동화책>에서 접할 수 있었던 정서로 충만한 지하 세계가 주는 낯설음은 감독의 갑작스러운 변심일까? 그렇진 않다. <러브 앤 피스>는 소노 시온이 26살(소노 시온은 1951년생이다)에 쓴 각본으로, 당시 그는 스즈키처럼 답답한 처지였다고 한다. 어느날, 애완동물 가게를 지나가다가 거북이와 눈이 마주치는 일을 있었는데 이 녀석은 내 마음을 알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고, 당시의 느낌을 바탕으로 삼아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밝혔다. 자전적인 요소가 많지만, 특수 효과 등으로 큰 제작비가 드는 탓인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빛을 보게 되었다.



<러브 앤 피스>에서 ‘피카돈’은 여러 각도에서 읽을 수 있는 존재다. 느린 피카돈의 움직임은 빠른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스즈키의 뒤쳐진 속도와도 같다. 친구이면서 동일시된 대상이었던 피카돈은 지하세계의 할아버지가 준 사탕을 먹으면서 다른 의미로 거듭난다. 말하는 사탕이 아닌, 소원을 들어주는 사탕을 실수로 먹게 된 피카돈에게 할아버지는 주인이 염원하는 소원의 크기나 수 만큼 몸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수가 되어 닛폰 스타디움에서 라이브 무대를 가지는 미래을 꿈꿨던 스즈키의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마치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추함과 악함을 대신 반영했던 초상화처럼 피카돈의 몸은 주인의 욕망에 비례하여 커져 간다.


피카돈은 돈과 명예에 취해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스즈키의 내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일본 사회를 나타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러브 앤 피스>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TV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한편에서 지진에 대한 처리나 원전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자, 반대편은 올림픽은 일본이 다시 부유해질 기회라고 목청을 높인다. 집에서 노래 연습을 하던 스즈키는 거북이에게 이것이 진짜 모습이고, 낮의 자신은 가짜라고 말한다. 그리고 TV에서 원자폭탄을 의미하던 ‘피카돈’을 듣자 그것을 이름으로 붙여준다. <러브 앤 피스>의 이런 설정은 <고질라>와 나란히 보아야 한다. 1954년에 만들어진 괴수 영화 <고질라>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원자폭탄을 맞았던 일본의 공포가 서려 있다.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하던 <고질라>와 달리, 3.11 일본 대지진 이후에 나온 <러브 앤 피스>는 다른 입장에 서있다. <희망의 나라>에서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건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소노 시온은 <러브 앤 피스>에서 피카돈을 통해 진실을 감추던 가짜 얼굴과 회복해야 하는 인간성이란 진짜 얼굴을 건드리길 시도한다. 즉, 자신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3.11 일본 대지진을 겪던 시기에 찍었던 <두더지>는 마지막 장면에 “힘내!”라는 응원으로 가득하다. 다음 작품인 <희망의 나라>를 거치며 그의 영화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대지진의 통증이 감지되고 있다. <지옥이 뭐가 나빠>의 마지막 장면은 감독이 스스로에게 슬픔을 딛고 나아가자는 응원을 보내는 모습에 가까웠다. <리얼 술래잡기>엔 죽음이 드리워진 세계에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녀들이 나오고, <신주쿠 스완>에선 “이 도시엔 욕망이 흐르고 있다. 이름을 바꾸고, 자신의 과거를 버려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란 대사가 들린다. 합합 뮤지컬 영화인 <도쿄 트라이브>도 여진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이유와 폭발하는 에너지는 스스로 영화적 치유법을 찾기 위함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자면 ‘진정한 나를 향해 계속 다가가는’ 영화의 여정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세상의 평화(PEACE)를 위해 부족한 부분(PIECE)은 사랑(LOVE)이라 외치는 소노 시온은 <러브 앤 피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족을 강조한다. 행복한 미래를 암시하는 영화의 끝맺음은 <희망의 나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의 힘을 믿는 두 사람이 희망을 찾아 떠나는 대목과 조응한다. 소노 시온은 사랑의 힘을 믿고 있다.


 웹진 넥스트플러스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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